메뉴 건너뛰기

close

당나라로 끌려가는 의자왕가와 백제 유민들의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당나라로 끌려가는 의자왕가와 백제 유민들의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 오창경
유왕산 추모제는 나라를 빼앗기고 원통하게 당나라로 볼모로 끌려갔던 백제 왕가의 한풀이를 하면서 지역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도착했을 때 마침, 실제 백제시대 의상을 입고 의자왕과 왕비로 분장한 이들이 당나라 군사들의 의해 압송되는 장면을 재현한 행렬이 면내를 지나고 있었다.

그 뒤로는 백제의 백성들이 곡(哭)을 하면서 의자왕과 왕비를 따라갔다고 해서 실제로 상가집에서 녹음한 곡소리까지 틀었는데, 듣고 있자니 정말 가슴이 미어질 듯했다.

전국에 많은 축제들이 있지만 역사적 고증을 거쳐 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의상들을 직접 입고 분장까지 한 채로 영화처럼 현실감 있게 재현한 행사는 드물 것이다. 더구나 이런 행사를 추진하는 주체가 행정기관이 아니라, 순수하게 지역민들이 추진 위원회를 구성해서 주도하고 있다니 놀랍다.

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정은씨는 '유왕산 탄식'이라는 가사를 쓰고 지역 출신의 작곡가인 안창호씨에게 작곡을 부탁해 가요까지 만드는 등 열정을 가지고 이 행사를 벌써 8회째 이어 오고 있다.

당나라로 떠나가는 배
당나라로 떠나가는 배 ⓒ 오창경

ⓒ 오창경
당나라로 끌려가는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을 재현한 행렬이 갓개 포구에서 배를 타고 금강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강 건너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호남평야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수확을 앞두고 저렇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나락들을 놔두고 끌려갔을 1300년 전 이 땅의 백성들의 애통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과연 의자왕이 삼천궁녀와 주색잡기에 빠져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는 패망국의 왕인 탓에 주도권을 잡은 자들의 시각으로 써진 역사에 의해 오해를 받은 대표적인 인물일까?

부여에 살면서 ‘의자왕’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어쨌든 역사가 서린 곳에 살다보니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역사 의식이 강해지는 것 같다.

당나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는 전날 전야제로 진행되었고 재현 행사가 끝나자 주민 위안 공연이 있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불렀던 백제의 가요인 '산유화가' 공연
벼농사를 지으면서 불렀던 백제의 가요인 '산유화가' 공연 ⓒ 오창경
지금까지 전해지는 백제 가요 중에 산유화가와 정읍사가 있는데 산유화가(충남 무형문화재 4호)는 벼를 심어서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을 노래한 농요라고 한다.

부여에는 산유화가 보존회가 있어 그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공연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가사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어도, 공연자들의 몸짓만으로도 순전히 사람들의 협업으로 가능했던 벼농사 과정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계 한 대와 두 사람만 있으면 논 한배미의 벼가 두 시간 만에 바심(탈곡)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농민들이 세월을 넘어 ‘산유화가’를 공연으로 즐기는 격세지감이 거기에 있었다.

실속없고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지역축제가 난립한다는 여론이 높은 가운데 부여 양화면의 '유왕산 추모제'는 지역의 면 단위의 축제였지만 볼거리가 충분했다. 체험을 해봐야 기억에 남는 것처럼 역사를 배우는 초중고생들이 이런 행사에 참관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했지만 시골이기 때문인지, 정작 배고 배워야 할 어린 학생들은 없고 어르신들의 위안잔치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보니, 시대가 빚어낸 또 다른 비애가 느껴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