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의 화두로 '못생긴 것'을 붙잡고 살아가지만 단지 못생겼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못생겼다고 하는 것들 안에 내재해 있는 아름다움을 보자는 것이니 결국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이 회자됩니다만 이른 새벽 아침햇살에 활짝 피어난 호박꽃을 본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한번쯤은 취했을 것이요, 갓 태어난 아가들의 얼굴에 난 솜털을 달고 있는 듯한 호박꽃의 몽우리를 보았다면 그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얼짱'이니 '몸짱'이니 겉모습에 관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그 속내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면 이내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빛을 발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심산유곡의 햇살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는 산토끼꽃과의 솔체꽃을 만날 것이라 생각하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 솔체꽃은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행운처럼 내게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지는 모습이 아니라 막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절기상으로 가을의 초입이 되었을 때 그 곳을 찾았지만 '아직은 아니다!'하는 듯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 동부지역에 내린 폭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가운데 오름의 등산로도 훼손되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못 보나 했죠.
발걸음을 돌리고 오길 서너 번 끝에 등산로가 복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곳에 달려갔습니다. 섬잔대, 참취, 절굿대, 산비장이, 야고, 나비나물, 며느리밥풀꽃, 가시엉겅퀴, 산박하가 여기저기서 손짓을 합니다.
"고맙다, 이렇게 또 화들짝 피어주어서 고맙다."
그러나 솔체꽃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막 몽우리를 맺어가고 있는 산부추를 보면서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는가 했는데 정상에 올라서니 보랏빛 솔체꽃이 여기저기서 손짓을 합니다.
막 피어나는 솔체꽃을 보면서 '참 도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이면서도 밉지 않은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우려면 이 정도는 아름다워야지."
과하지도 않을 정도의 희소성으로 피어나 보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꽃이고 보니 도도할 만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담 없이 다가가 입맞춤을 할 수 있는 꽃이니 그 속내도 참으로 예쁜 것 같습니다. 간혹 예쁜 꽃들 중에는 가시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역겨운 냄새를 내기도 해서 가까이하려면 감내해야 할 아픔들이 있기도 하거든요.
솔체꽃의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또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미 님의 <한국의 야생화>에는 솔체꽃과 관련된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어있습니다.
서양의 솔체꽃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 온다. 옛날 어느 마을에 양치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 해인가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온 마을 사람들이 죽어 갔고, 소년은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산에 올라갔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예쁜 요정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정이 소년에게 약초를 먹여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 소년을 사모하게 된 요정은 약초를 모아 소년이 온 마을 사람들을 다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소년은 약초 덕분에 목숨을 구한 마을의 예쁜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요정은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고 슬퍼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이를 불쌍히 여긴 신은 요정을 예쁜 꽃으로 피어나게 했는데 그 꽃이 바로 솔체꽃이라고 한다.<이유미의 한국의 야생화 pp.355-356>
요정이 꽃으로 피어났으니 그렇게 예쁜 것인가 봅니다.
우리가 동화책이나 전설 속에서 만나는 요정들 치고 예쁘지 않은 요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정은 신의 심부름을 하는 이들이니 어쩌면 신들에게 부탁을 하면 그 소원을 쉽게 이뤄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사랑에 관한 것만큼은 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사랑하게 되면 맨 처음에는 좋은 것만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이 더 커지면 단점도 덮어줍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열매 안에는 아픔도 들어있습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
때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도 있는 법이라서
헤어짐도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
그러나
슬퍼하지 말아라
끝없이 사랑만 하다가
손가락질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사나이도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그를 사랑한다는 이들에게 그 아버지의 이름으로
십자가에 또 못 박히고 있으니......
<자작시-솔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