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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때 바닷가 배 위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썰물 때 바닷가 배 위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 서정일
소라분교와 부설 유치원에 다니는 정은비(8), 김아연(7), 안세연(7)은 순천과 인접한 여수 바닷가 소라면에 산다. 그들에게 이곳 바닷가는 학교에 다녀오면 언제나 들러 노는 놀이터다. 특히 썰물 때가 되어 바닷가에 매어 놓은 배가 바닥을 드러낼 땐 더욱 신난다. 올라가 소꼽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 뭘 찍으세요? 저 해를 찍는 건가요? 우린 하나도 신기하지 않은데…. 우린 날마다 봐요."

멋진 노을에 감탄하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우리를 보고 아이들은 그게 더 신기하다는 듯이 자꾸 "뭐하세요? 아저씨들은 누구세요?"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아이들 눈에는 우리가 더 궁금한 모양이다.

곰 인형이 감기 걸렸다면서 손수건으로 이불을 덮어주고 밥을 먹이는 아이들.
곰 인형이 감기 걸렸다면서 손수건으로 이불을 덮어주고 밥을 먹이는 아이들. ⓒ 서정일
바닷가 가을은 제법 쌀쌀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이 시작되는 시각엔 어른들도 다시 옷깃을 추켜세워야 하는 스산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들의 옷차림은 반소매. 놀이에 빠져 춥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했다.

아이들은 소꿉놀이 도구들을 챙겨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었던 듯했다. 돌이며 굴 껍질들을 모아 놓고 밥상을 차리던 언니뻘인 은비는 곰 인형에게 밥 먹이는 시늉을 한다. 곰 인형이 아프단다. "엄마가 밖에 나가 놀지 말라고 했지! 일찍 일찍 들어와야지, 감기 걸렸잖아!"라고 따끔하게 혼내는 은비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말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바라본 소라면의 일몰은 더욱 아름다웠다.
동심으로 돌아가 바라본 소라면의 일몰은 더욱 아름다웠다. ⓒ 서정일
예쁜 손가방에 손수건으로 머플러를 만들어 한껏 멋을 낸 세연이는 자신을 백설공주라고 소개하면서 앞에 보이는 섬이 백설공주가 사는 섬이라고 했다. "저 섬 말이니? 그런데 어떻게 육지에 나왔어? 배 타고 왔니?"라고 묻자 깔깔깔 웃으면서 "아저씨, 저 섬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어요. 아저씨도 낼 모레 와 보세요. 그럼 들어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곤 "아저씨는 바보래요, 바보래요" 합창하듯 놀려댔다.

참 커다란 놀이터를 가진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노을을 매일 보는 아이들, 썰물 때면 몇 km씩 생겨나는 뻘 위를 걷는다는 아이들, 평소엔 섬이었다가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된다는 섬을 놀이터로 갖고 있는 아이들, 배가 자가용이라는 아이들….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심지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넓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늘 보는 석양이지만 우리 오늘은 아저씨들과 함께 볼까?"라는 말에 "좋아요"하면서 서쪽으로 뉘엇뉘엇 넘어가는 해를 함께 바라보기 시작했다. 깨끗한 마음의 아이들과 함께 바라본 석양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맑고 깨끗한 동심으로 돌아간 소라면으로의 여행엔 은비, 아연, 세영이라는 어리지만 큰 말 동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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