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가 보수성향의 자사 사설 논조와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칼럼' 격인 고정 만평을 두 차례나 누락시켜 특정 정치세력 봐주기가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만평누락 사태로 인해 편집권 행사를 둘러싸고 편집국 데스크와 일선기자들 사이에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가운데, 노조 일각에서 '편집국장 불신임'까지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전국언론노조 문화일보 지부(위원장 오승훈)는 지난 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보수단체 집회만 허용하는 서울시를 풍자한 이재용 화백의 만평을 누락시킨 데 이어 어제(7일)도 한나라당의 '색깔몰이 국감'을 비판한 이 화백의 만평을 3.5판부터 뺀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노조공보위 "만평이 2번이나 연속 누락된 것은 창간 이래 처음"
노조 공정보도위는 8일 소식지인 <공정보도>를 통해 "김종호 편집국장이 7일 오전 11시쯤 이재용 화백의 만평을 3.5판부터 뺄 것을 지시, 3면 하단이 긴급히 경제부 출고기사로 대체됐다"며 "김 국장은 지난 5일에도 이 화백의 만평을 빼고 < am7> 사진광고로 대체시켰다"고 밝혔다.
이 화백은 5일자 만평에서 서울광장을 '우익광장'으로 표현하면서 서울시가 '서울광장 정치집회 불허' 방침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단체들에게만 서울광장 집회를 허용하는 이중잣대를 꼬집었다.
문화는 5일자 3면 하단에 '오늘 문화만평은 쉽니다'라고 알리면서 만평 자리를 경제기사로 대체했다. 문화는 인터넷판에서도 5일자 만평은 뺐다.
이재용 화백은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만평이 두번이나 빠져 가슴이 아프다"고 심경을 피력하면서 '만평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그림으로 설명하는 거니까 만평 그대로만 봐달라"고 짧게 답했다.
만평 누락사태와 관련, 백무현 전 시사만화작가회의 회장(<서울신문> 화백)은 "문화가 최근 도올 김용옥의 연재 집필중단 사태를 겪고 난 이후 급격히 우경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사장이 바뀌면서 논조가 조선일보를 따라잡는 형태로 급격히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백 화백은 이어 "만평은 칼럼인데 사설과 맞지 않다고 누락시킨 것은 편집권의 오만"이라며 "화백의 만평을 편집권으로 침탈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식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문화는 지난 8월 19일자에서도 박상주 사회부 차장의 데스크 칼럼을 빼고 마감직전 외부칼럼으로 대체한 바 있다. '논조가 사설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식지는 "화백의 만평이 2번이나 연속 누락된 것은 문화일보 창간이래 처음있는 일"이라며 "최근 벌어진 일련의 문화일보 편집국 내 기사누락과 축소편집 사태를 계기로 편집권의 주체와 행사방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지는 이어 "무슨 기준으로 문화일보 편집이 이뤄지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며 "특히 간부와 현장기자 사이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장 "극단적 비아냥거림 수용 불가"
한편 오승훈 노조위원장은 소식지에 실은 '호소문'을 통해 "이제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좌냐 우냐'라는 선택을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강요당한다는 것"이라며 "지금 우리 언론계는 물론 온 사회가 이분법에 포획돼 있는데 우리 신문의 내부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근 <문화> 편집국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수시로 편집방침이 내려오고 순식간에 신문의 모양새가 바뀐다. 기자들과 데스크들이 알아서 자기검열을 하는 지경에 이르었다. 중도, 중간, 조정, 타협 이런 류의 단어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기자로서의 직업적 자긍심이 위협당하고 있다."
오 위원장은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공론의 장들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며 "앞으로 신문 전체의 통일성을 갖추기 위한 내부합의 과정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종호 편집국장은 만평 누락사태와 관련해 "이명박 서울시장이 시청앞 광장을 보수단체 집회에만 빌려줘 우익광장이 됐다고 표현해 국보법 폐지 반대집회를 극단적으로 비아냥거렸다"며 "서울시의 다른 잣대를 비판한 것이란 (이재용) 화백의 설명을 수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고 노조 소식지는 전했다.
노조 일각, '편집국장 불신임론'까지 대두
또한 소식지는 만평누락사태 등 최근 <문화>의 논조변화와 관련 입사 5년차 기자에서부터 입사 20년차 부장의 목소리를 담아 눈길을 끌었다.
입사 20년차의 한 부장은 "편집국장이 사장실에 다녀와서 (편집)방침이 정해지는 게 지금 문화일보의 현실"이라고 지적하면서 "발행인이 신문제작에 깊숙이 간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병규 사장의 취임 이후 "문화일보의 논조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는 외부의 지적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즉 이 사장이 최근 문화의 편집방향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
또 입사 12년차 한 차장은 "사실과 주장이 구분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 뒤 "국보법이나 수도이전에 대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전달하지 않거나 축소한다면 우리 신문 스스로가 편협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신문이 입장을 가질 수는 있지만 공정한 토론의 장은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사 5년차 한 기자는 "만평 누락과 국보법 폐지 찬성 관련기사를 싣지 않겠다는 결정은 충격적"이라며 "문화일보 편집국이 겪고있는 총체적 난국을 한방에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라 가뜩이나 일선에서 힘들어 하는 기자들의 사기를 한층 더 꺾어놓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편 노조 일각에서는 "편집국장이 공정성을 잃을 경우 노사간에 체결된 편집권에 관한 협약에 따라 불심임을 가결할 수도 있다"는 '편집국장 불신임'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문화>는 노사간에 체결된 '편집권에 관한 협약'에 따라 편집국장이 편집·제작의 공정성을 잃을 경우 기자조합원 3분의 1의 발의와 5분의 3의 찬성으로 편집국장 불신임을 결의할 수 있다.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회사는 10일 이내에 새 편집국장을 임명해야 한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이번 만평 누락사태와 관련, 김종호 편집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 | "연속된 누락... 창작의욕 꺾여" | | | <문화> 공보위 소식지에 실린 이재용 화백 일문일답 | | | |
| | | ▲ 이재용 화백 | ⓒ오마이뉴스 남소연 | 8일 발행된 <문화> 노조 공정보도위 소식지인 <공정보도>는 만평 누락 사태와 관련 이 화백의 인터뷰를 실었다. <공정보도>는 이 인터뷰 기사에서 "이재용 화백은 연속된 만평누락으로 창작의욕이 꺾이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화백은 또 "사설과 만평이 100% 일치하는건 우습다, 요즘은 지방지를 포함해 굳이 논조를 일치시키려하지 않는 신문이 많다"면서 "좋은 그림에 대해 고민하기 이전에 스스로 아이디어에 제약을 받는 것같다"고 피력했다.
이 화백의 일문일답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누락경위는?
"지난 5일 9시50분쯤 마감을 마치고 출력해서 4층에서 김종호 편집국장에게 보여줬더니 '이거 안된다, 오늘 신문 사설제목 보지 않았느냐, 회사방향과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리 창작이라도 작가 맘대로 할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조중동 외에는 작가의 창작자유를 존중해주는 게 추세 아니냐'며 항의했으나 소용 없었다. 7일에는 3판에 들어갔던 만평을 처음에는 바꾸자고 했다가 결국 뺐다. 만평 우측 상단에 있던 '색깔몰이'라는 제목을 '신종 소몰이' 정도로 바꾸자고 해서 답을 안했더니 그런 것같다."
- 편집권 행사가 정당했다고 보나.
"사설과 만평이 100% 일치하는건 우습다. 요즘은 지방지를 포함해 굳이 논조를 일치시키려하지 않는 신문이 많다. 의욕도 상실되고, 좋은 그림에 대해 고민하기 이전에 스스로 아이디어에 제약을 받는 것같다. 모 유력일간지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은 적도 있지만, 문화일보의 분위기가 좋아 월급에 관계없이 즐겁게 일하고 있었는데 요즘같아선 정말 피곤하다."
- 만평에 대한 간섭은 이번이 처음인가.
"요즘은 매주 한번꼴로 수정요구를 받고 실제 수정이 이뤄진다. 지난 8월 25일과 8월 27일 국보법과 관련된 2개의 만평을 그린 뒤 부쩍 간섭이 심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수정을 요구하고 '뺄 수도 있다'고 얘기하더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