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지나 가을.
"선생님, 낙엽비가 내려요. 헬리콥터처럼 빙빙 돌면서요. 바람 때문에 낙엽비가 오는 거죠? "
오늘, 가을바람에 낙엽들이 정말 비처럼 내렸다. 소리까지 사그락사그락 거리면서. 꽃비, 낙엽비, 살구비, 감비, 낙엽비. 하늘에서 여러 개가 땅에 떨어지는 것들에 비라고 이름붙이는 내 습관처럼 어느 새 아이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선생님, 그러니까 오늘 고구마 캐요. 고구마 잎에 나뭇잎 비가 쌓이면 숨 막혀요."
성은이의 바람에 아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빨리 고구마를 캐자고 한다.
봄날 유치원 구석에서 연하게 잎나던 고구마를 물에다 담궈 두었더니 날마다 조금씩 줄기가 뻗어 나갔다. 처음엔 관찰하라고 두었는데 무성하게 뻗던 잎이 몇 개씩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게 안타까워서 놀이터 한쪽에 자갈돌과 풀을 뽑고 밭을 만들어 늦은 봄 비온 후에 심었다.
그 때만 해도 아이들이나 난 이렇게 가는 줄기에서 고구마가 달릴 줄 몰랐다. 그냥 줄기라도 더 무성하라고 심었던 것이다. 고구마는 누운 것처럼 심어야 한다는 것을 학교 아저씨께 배워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니
"선생님, 누워서 고구마가 알을 낳는 거예요?"
한다.
땅이 모래와 자갈로 되어 있고 플라타너스 나무 때문에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곳이라서 고구마가 들었으리란 기대는 안했다. 그래서 "누구 고구마 줄기가 제일 큰지 재어 보자! 잎에 벌레가 먹은 구멍이 몇 개 있는지 세어 보자!"하면서 혹시 고구마가 없을지도 모르는 허탈함을 미리 보상하기 위해 한참 딴전을 부리고서 고구마를 캤다.
다경이가 제일 먼저 자기 손가락만한 실고구마를 캤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정도만 나와 줘도 아이들 고구마 캐기 재미는 쏠쏠할테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자기 고구마 줄기를 걷고 흙을 파더니 여기 저기 탄성을 쏟아낸다.
"있다! 고구마! 정말 있었다! 여기 또 있다."
"선생님, 눕혀줬더니 고구마가 알을 낳았어요."
"와, 크다. 고구마가 공 같아요. 내 것은 세 개 있어요. 나는 다섯 개인데…."
중희와 다경이는 고구마들이 쌍둥이 같다면서 비슷한 크기 모양 찾기에 나서고 하나만 캐도 모든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자랑하고 다닌다. 캘 때 고구마가 다치면 아프니까 조심하라고 했더니 주미는 돌 밑에 박힌 고구마를 캐려고 주변에 큰 구덩이를 파고 있다.
내 고구마가 없다면서 속상해 하는, 새로 전학 온 재만이를 위해 민재가 자기 옆자리를 슬그머니 내준다. 낙엽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바탕 축제처럼 고구마를 캐서 오다보니 중희가 밭에 여전히 앉아있다.
"선생님, 고구마 줄기가 너무 불쌍해서 다시 태어나라고 심어주고 있어요."
중희의 이별의식에 모두 함께 하고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아이들이 고구마를 씻어서 삶았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도 하고, 형들이랑 운동회 연습도 하고 들어와서 간식으로도 먹었다. 봄부터 심어 놓고 놀다가 심심하면 들여다 보고
"선생님, 정말 이 속에 고구마가 알을 낳았을까요?"
하고 묻고 묻던 의문이 아이들 입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난 여전히 의문스럽다. 그 가느다란 줄기가 누워 어떻게 저렇게 큰 고구마를 낳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