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는 지금의 '미국스러움'을 만든 미국의 역사 200여 년을 유쾌하게 헤집는 책이다. 저자 케네스 데이비스의 서술은 이런 식이다. 저자는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은 누구일까 묻는다. 답은 아주 간단하다.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훨씬 전에 시베리아로부터 걸어서 들어온 인디언이 최초 거주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냥 유쾌하지는 않다. 신대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유럽인들의 살육과 배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를 용감한 탐험가로 만든 것은 미국의 국경일과 교과서다... 콜럼버스의 카리브해 도착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무자비한 사건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콜럼버스는 황금을 찾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원주민들을 재빨리 노예화했다. 바야흐로 학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34-35쪽)
저자는 이런 질문도 던진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왜 아무런 구제책도 펴지 않았을까? 저자의 답은 이렇다. '철저한 개인주의'를 강조했던 후버 대통령은 공공 정책은 사회주의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도 매카시즘에 휩쓸린 미국의 한 시대가 겹쳐진다.
"일부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은 대공황 울타리 저편에 속한 사람들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곧 보게 된다... 대공황이 극에 달하던 1932년 여름... 이들은 살기 위해 국가가 약속한 보너스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구제를 원하는 이들의 간청은 묵살되었다. 후버나 의회나 사법부나 언론이 보기에 그들은 퇴역병이 아닌 '빨갱이 선동자들'이었다. 후버는 보너스 군대 대장을 만나는 대신 군대를 소집.. 허름한 남녀 떼거지에게 최루탄, 탱크, 총검으로 공격을 퍼붓게 했다."(400-404쪽)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전쟁이 전쟁이 아닐 때는 언제일까?"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대통령이 전쟁이 아니라고 할 때와 의회가 그것에 맞장구를 칠 때."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자의 유쾌하고 명쾌한 문답인 것이다.
하지만 유쾌함은 곧 걷힌다. 전쟁이 아닌 전쟁을 만들어가는 존슨 대통령과 의회의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나친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평화 유지를 위한 이라크 파병'을 이야기하는 우리의 대통령과 의회를 떠올렸다. 전쟁이 전쟁이 아닐 때는? 대통령이 전투병이 아니라고 할 때와 의회가 그것에 맞장구를 칠 때?
여기서 사족 하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1828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이다. 고아에 서부 개척지 출신이었던 그는 이른바 동부의 귀족 정치인들을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이런 배경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새롭게 포장했던 것 같다.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젊은 세대는 흑인과 여성과 인디언을 배제한 정치를 생각한 잭슨을, 인디언을 제거하고 빼앗은 땅을 투기용으로 사용한 잭슨을 새로운 미국 정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잭슨식 민주주의'로 새로운 미국을 연 인물이 된 것이다. 그와 관련된 신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인디언들에게 '예리한 칼'이라고 알려진 인물로 인디언 소탕 작전을 벌인 장본인이었다. 인디언들을 자신의 땅에서 강제로 내몰아 '눈물의 행렬'을 만든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는 미국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잭슨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있지도 않은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한국사'의 한 구절이 멋대로 떠올랐다.
"2004년 한국에 대통령이 있었다.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던 그는 오랜 시간 기득권을 행사했던 서울대 출신의 정치인을 물리치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런 배경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새롭게 포장했던 것 같다.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젊은 세대는 신자유주의를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나라의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몬 그를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는 유쾌하고 불편한 책이다. 줄곧 지켜지지 않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헌법의 문구와 미국의 팽창을 위해 '기꺼이'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문득 문득 우리의 모습이 스쳐가기 때문이다. 미국인 케네스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미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로 지지된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립서비스를 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 전체를 통해 그리고 기업 후원으로 유지되는 현행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 미국은 특정 권익의, 특정 권익을 위한, 특정 권익에 의한 정부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