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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헌은 내원에 있었다. 그것은 갈인규가 이 손가장의 손님이 아니고 식구임을 뜻했다. 더구나 아담하지만 꾸며놓은 모양이나 장식 등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가의 최고급품임을 짐작케 했다. 그들이 소규헌에 들어갈 즈음 이미 소식을 전해 들은 손불이가 합류했다.
“갈가야…이 무슨 변고냐…하루만에 두사람이 죽다니….”
손불이는 탄식했다. 지금껏 한번도 없었던 일이 하루 사이에 두 번이나 일어난 것이다.
“마음을 가라 앉히게. 그런다고 달라질 일이 있겠나.”
갈유는 친구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손불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시체는 서가 옆 휘장 뒤에 뉘여져 있었다. 스물 남짓으로 보이는 시비 차림의 소녀였다. 동그란 얼굴에 귀엽다고 생각할만한 여자였다. 그녀의 부릅떠진 동그란 두눈엔 경악스런 기색이 담겨져 있었다.
“누군가?”
갈유는 손불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 많이 본 아이인데… 아취…? 아교(娥嬌)…? 아화(娥花)…?”
주인이라고 시녀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일은 안주인이 더 잘 아는 일이다. 그렇다고 몸이 약한 경여를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손불이가 누군가 부르려 하자 전연부가 그 행동을 제지했다.
“손대인. 잠깐만…나중에 부르시지요.”
그리고는 갈인규에게 시선을 돌렸다.
“갈소협…이 사체는 언제 발견하셨소?”
갈인규는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저는 오늘 점심을 들고 담형님이 계시는 곳에 갔다가 뭔가 중요한 무공을 익히는 것 같아 이쪽으로 왔습니다. 아마 미시(未時) 말 쯤이 아닌가 하는데… 저 쪽 탁자에서 좀 쉬다가 어릴적 추억이 나서 이것 저것 살펴 보았지요.”
어릴적 갈인규의 물건은 이곳 고가의 가구나 장식에 어울리지 않게 모두 보관되어 있었다.
“헌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이쪽 저쪽을 들쳐 보았지요.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 죽은 쥐가 있는게 아닌가 해서 말이죠.”
갈인규도 의원이다. 그도 냄새에 민감하다.
“건들지는 않은 것이죠?”
“그렇습니다.”
전연부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나 옷끄나풀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어 방안은 아무래도 불을 켜야 했다. 전연부는 일단 주위부터 먼저 살피고 나서 갈유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갈대인께서 또 보셔야겠습니다.”
“그러지. 자네들은 좀 저쪽 탁자에 가있지 않겠나?”
민망스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다. 전연부는 능숙하게 시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벗기기 전에 이미 치명적인 상처가 보였다. 오른쪽 젖가슴 밑에 치명적인 장인(掌印)이 흐릿하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마 기문혈(期門穴)이 으깨어져 죽은 듯 했다. 그 외에도 그는 옷을 들추며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갈유의 눈도 더욱 매섭게 빛났다.
“죽은 시각은 어제 밤 정도로 추정할 수 있지만 실제 죽은 시각은 오늘 새벽이나 아침이라 봐야겠지?”
관절의 강직과 시반현상, 그리고 피부의 반응 등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아마 소규헌을 청소하다가 당한 것 같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햇볕이 드는 곳이라 아마 일찍 부패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더구나 내장이 상해 피가 입안까지 고여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각이라 보여집니다.”
사망시각은 거의 여섯시진 전이다.
“시체는 저기 서탁을 정리하다가 돌아서는 순간 장력을 맞았고, 죽은 표정을 보니 손을 쓴 사람과는 아는 사이로 보이는군요.”
“시체를 옮긴 것인가?”
“이 여자 것으로 보이는 옷끄나풀이 마루 바닥에 걸려 있었습니다. 약간의 혈흔도 깨끗하게 닦아 냈군요.”
갈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살펴볼 건 모두 살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시신의 가슴 아래 희미한 장인에 가 있었다. 장인(掌印)에 칼로 헤집어 놓은 듯한 상처가 나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살인자는 아주 가볍게 시전한 것 같은데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즉사했군.”
“연관이 있을까요?”
두 죽음 사이에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이 사람...자네가 알아야 할 일을 자꾸 내게 물어보는군. 어쨌든 시기적으로 비슷하게 발생했으니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겠나?”
어찌 보면 전혀 불합리한 말이었다. 하지만 전연부는 시녀의 옷깃을 여며 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군요.”
그 때 손불이가 머리를 탁 치더니 다가오며 시신을 다시 보았다.
“맞아…. 이 아이는 아연(娥嚥)이야. 요사이 안 보이더니… 근데…?”
손불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그렇군. 이 아이는 죽은 수화의 시비였어. 맞아….”
“어제 밤에 죽은 언씨의 시비는 아취라 하지 않았나?”
“내 기억으로는 틀림없어. 아마 무슨 일인가 있어 수화의 시비가 아취(娥翠)로 바뀐지 두어달 되었을 거야.”
아연이란 시비가 언수화의 시비였기에 기억할 것이다. 만약 내원에 있는 시비였다면 잘 보지 못할테니 손불이는 모를 수 밖에 없다. 연관이 있어도 공교롭게 연관이 있다. 언수화와 그녀의 시비였던 소녀가 단 하루 사이에 죽었다. 전연부의 얼굴색이 급격하게 변했다.
“손대인. 이곳은 이미 모두 조사했습니다. 이곳은 정리하라고 하시고 우선 급한 일은 아취라는 시비를 찾아 주십시오.”
더 이상의 희생이 생기면 안된다. 수화가 죽고 전 시녀가 죽었으니 앞으로 살인이 일어난다면 아취라는 소녀도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살인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아직 그 이유를 아직 모를 뿐이다. 다만 그 중심에는 일단 수화라는 여인이 있다.
“일단 이 시체는 처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작은 마나님은 좀 더 두시구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장례절차도 다르다. 그래도 소실이라면 정상적인 장례를 치르게 되지만 시비의 경우에는 그저 관에 넣어 뒷문으로 나가면 다행이다.
“입막음이었나…?”
전연부의 자책같은 독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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