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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찐방을 유명케 한 심순녀씨
안흥찐방을 유명케 한 심순녀씨 ⓒ 박도
안흥찐빵은 국민의 찐빵

안흥찐빵 마을은 행정상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로 아주 자그마한 면소재지 시골 마을이다.

안흥면은 인구가 3천명도 안 된다. 이런 작은 마을이 전 국민의 입에 익게 된 것은 바로 이 고장의 명물 ‘안흥찐빵’ 때문이다.

필자도 2년 전에 강릉에 다녀오면서 이곳을 지나다가 일행 중에 한 분이 안흥찐빵 마을에 한 번 들러보자고 해서 알았다.

횡성 IC를 빠져나와 애써 이 마을을 찾은 끝에 무려 두 시간 남짓 기다린 후 찐빵 두 상자를 산 적이 있었다(둔내나 새말IC로 빠져나온 게 찐빵마을과 더 가깝다).

요즘 같은 불황에도 안흥찐빵은 주말이나 피서 철이 되면 몇 시간씩 기다려서 맞돈을 주고 사야한다.

마을 들머리에는 ‘안흥찐빵 마을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이, 면사무소 앞에는 ‘안흥찐빵은 국민의 찐빵’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면사무소가 있는 장터(관말)마을에는 “옛날, 본가, 토속, 솔잎, 시골, 전통, 유명한, 예전, 원조, 시조…” 등 20여 곳의 찐빵가게가 들어서 있다.

필자가 이 마을에 온 뒤, 몇 집을 기웃거리면서 1천원어치(3개)씩 사서 찐빵 맛을 비교해 보았는데 대체로 맛이 비슷비슷했다. 가게마다 안흥지방의 본래의 찐빵 맛을 지키려는 노력도 역력히 보였다.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안흥찐빵’

수소문 끝에 안흥찐빵을 가장 먼저 시작한 ‘심순녀안흥찐방’ 주인 심순녀(60)씨를 몇 차례 연락하여 어렵게 만났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심씨는 젊은 시절 밀가루 반죽을 너무 많이 하여 요즘 관절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고 사과했다.

안흥 마을 들머리에 있는 ‘심순녀안흥찐빵’ 가게에서 심순녀씨와 마주 앉았다.

“37년 전인 23살 때부터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안흥지서 앞 노점에서 호떡을 부쳐 팔았어요. 그러다가 찐빵, 만두, 어묵 등 가짓수를 늘렸지요.

그때는 하루에 두 번씩 쌀을 팔아서 식구들의 양식을 했지요. 아들 딸 모두 5남매를 뒀는데, 세 끼 밥 먹기도 엄청 어려웠어요. 그래서 자식들에게 모두 공부를 제대로 못 시킨 게 부모로서 늘 미안하고 아직도 한으로 남아 있어요.”

심씨는 당신이 살아온 얘기가 소설 한 권은 더 될 거라고 했다. 지서 앞 노점에서 월세 4천원짜리(1970년대) 가게로 옮긴 뒤, 기존의 메뉴(먹을거리)에다가 핫도그, 김말이, 튀김 등을 덧보태 팔았다.

‘안흥찐빵’은 일일이 손으로 빚기에 맛있다고 한다
‘안흥찐빵’은 일일이 손으로 빚기에 맛있다고 한다 ⓒ 박도
그때는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이라 안흥은 서울에서 강릉을 가는 길목이요, 중간 지점인지라 유동인구도 많았고, 안흥 장도 무척 컸다고 한다. 거기다가 안흥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서 장사가 곧잘 되었다.

거기서 다시 면사무소 앞으로 가게를 옮겼다. 장사가 잘 돼 밤 1, 2시까지 다음날 장사 준비를 해야 했다. 지금 관절에 이상이 간 것은, 그때 너무 혹사해서 그런 것 같다면서 심씨는 긴 한숨을 쉬었다.

‘안흥찐빵’으로 이름이 나게 된 것은 불과 10년도 안 됐다고 했다. 군인 한 분이 당시 50원하던 찐빵을 5천원어치 사갔다. 그 얼마 후에 다시 만원어치를, 다시 얼마 후에는 1만5천원어치를 사갔다.

그제야 영문을 묻자, 군인은 식구들과 친척들에게 사다주었는데, 맛이 좋다고 하기에 집에 갈 때나 친척집에 갈 때면 늘 사간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2만원, 3만원어치도 사갔다. 그 후 그 빵을 먹은 분들이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사갔다고 한다. 안흥찐방은 순전히 입소문으로 번져나가 유명해졌다.

지역 경제의 버팀목

1995년 한 지역신문에 ‘맛있는 찐빵 집’으로 소개되자 이어서 전국 신문과 방송들이 앞 다퉈 보도하면서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때의 한 일화다.

한 TV 프로(KBS '세상의 아침')에서 취재하겠다고 협조를 요청해 왔다. 하지만 심씨는 먼 길을 찾아온 PD에게 딱 잘라 거절을 했다. 왜냐하면 방송 촬영으로 인해 하루 종일 장사에 지장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지난 세월을 얘기하는 심순녀씨
지난 세월을 얘기하는 심순녀씨 ⓒ 박도
담당 PD가 자존심이 상했든지 그냥 돌아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손님들이 남들은 로비를 해가면서 방송에 타려고 안달복달을 하는데, 왜 들어온 복을 발로 차느냐고 나무랬다.

하지만 이미 “쏟아놓은 물”이라고 체념하고 있는데, 다시 그 PD로부터 연락이 왔다. 돌아가면서 생각하니 높은 분에게 얼굴을 들 수 없어서 다시 부탁드린다고…. 그래서 취재를 허락했다고 했다.

그 방송이 나간 후 더욱 외지 손님이 몰려들었다. 신지식인으로 뽑혀서 면장, 군수, 도지사 등 여러분에게 표창과 아울러 격려를 받았고, 1999년에는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으로부터 표창과 금일봉까지 받았다.

지금 ‘안흥찐빵’은 전국은 물론 미국 캐나다까지 수출되고 있다. 찐빵으로 전국을 제패하고 이제 세계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무엇이 그 원동력일까 그 비결을 물었다.

“맛에 있습니다. 제 집 찐빵은 맛이 담박합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맛 그대로예요. 그래서 아무리 먹어도 입에 물리지 않아요. 팥소의 재료는 이 지방에서 나는 팥만 쓰고 있어요.”

마침 가게 뒷방에서 찐빵을 만들고 있다기에 그곳으로 가서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일일이 손으로 찐빵 모양을 빚은 후 방에서 한 시간쯤 숙성한다. 그 후 솥에서 쪄내면 ‘안흥찐빵’이 완성된다. 일하는 한 부인에게 맛의 비결을 여쭤보았다.

“‘안흥찐빵’의 맛은 손끝에서 나와요.”

심씨는 “평생을 남의 집에서 보냈기에 내 집 내 가게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면서 “면사무소 앞 가게에서 이곳 안흥2리 단지골 들머리로 장소를 옮겨 ‘심순녀안흥찐빵’ 간판을 달았다”고 말했다.

당신이 밤늦도록 반죽하느라 너무 고생을 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일만은 면하게 해 주려고 최근 반죽하는 일만은 기계가 한다고 굳이 필자에게 공개했다.

찐빵을 사려고 기다리는 고객들
찐빵을 사려고 기다리는 고객들 ⓒ 박도
지금 같으면 남부럽지 않게 오남매 공부를 시켰을 텐데…. 그 시절에는 먹고살기도 힘들었다고, 자식 공부 못 시킨 걸 다시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게를 나왔다.

"성공한 사람은 우직함에 있다"고, 한 여인의 노력이 고장을 빛내고, 지역 경제도 살렸다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했다. 애써 이룬 '안흥찐빵'의 이름을 안흥찐빵 가게 모든 이들이 다함께 지켜가기를 안흥면민의 한 사람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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