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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국회 문광위의 KBS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10월 18일 국회 문광위의 KBS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0월 4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총 3주에 걸쳐 진행된 이번 국정감사 기간중 토요일 일요일 부산영화제 참석 등의 일정을 빼고 국정감사를 한 날을 세어보니 꼭 14일이더군요. 이 기간 내내 하루도 맘 편하게 머릿속을 비워본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질의가 있는 날이든 없는 토요일, 일요일이든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과 스트레스는 꿈속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얼마 전 꿈을 꾸었는데 미나리를 키우는 논에 차가 빠지고 가방을 잃어버려 택시를 붙잡고 국감장에 가자고 하는데 택시기사가 웬 사설을 그리 늘어놓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애원하다 잠을 깨기도 했습니다.

아침 7시에 대문을 열고 나와 새벽 1시, 2시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아이들과 아내는 눈을 뜨고 아빠를 맞이하는 일이 드뭅니다. 대개의 경우 국감일정은 약속이나 한 듯이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밤 10시경에 끝나는지 의원회관에 들어오면 밤 11시경입니다.

밤 11시에 회관에 돌아오면 잠시 인터넷 검색을 할라치면 보좌진들은 줄을 서서 내일 질의용지를 들이밀곤 했습니다. 파악이 끝난 내용도 있지만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내용도 있습니다. 아직 인지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 설명부터 들어야 합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것은 진지하게 말해야 하고 이것은 꼬치고치 따져야 하며 말이 빠른 편이니 말 속도를 늦추어서 해야 하고... 해당기관 질의서를 작성한 비서들은 본인들이 애써 준비한 질의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고 저는 그것을 촌음을 아껴가며 핵심내용을 순간 포착해 가며 이해가 되지 않거나 궁금한 점을 족집게로 집어내듯 되물어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만 질의서를 한 번도 앵무새처럼 그대로 읽어내려 가지 않았습니다. 어투나 호흡이 정확하게 나와 맞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내용이나 핵심 단어 문장이 내 체질에 안 맞는 경우는 과감하게 고쳤습니다.

그렇지만 총 165건의 질의 꼭지를 14일간 소화하기는 물리적으로 전혀 불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세어 보진 않았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질문 내용을 가다듬어 질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첫 날 문화관광부 본부 국감시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우리당 언론개혁법에 반박 논리를 준비해 와서 기자실에 보도문을 뿌렸습니다. 긴급히 그에 대한 대응을 해야했는데 제가 차출되어 제 질의시간 15분중 10분을 조목조목 예정에 없던 언론개혁 입법안에 대한 정당성 취지와 방향 언론시장의 실태, 주요 입법 내용 등을 설명하는데 써야 했습니다.

프로 게이머 임요환 선수를 아시나요?

게임산업 개발원 국감시에는 스타 프로게이머에 대한 지원과 국가경쟁력제고 방안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즉석에서 필요한 자료를 뽑도록 주문하고 그 자료를 읽으며 질의 내용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 날은 질의 순서가 맨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었기에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황제 임요환선수의 예를 들며 중국에서의 외화 획득 방안에까지 나름대로 의미있는 질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는 게임 매니아가 5000만명이나 되고 임요환 선수가 경기를 할 때는 인터넷 동시 접속자 수가 100만명이나 됩니다. 임요환 선수의 팬클럽 회원은 가수 이효리보다 훨씬 많은 60만명이나 가입해 대한민국 통 털어 최고의 팬들을 확보한 셈이고 임 선수는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내 최고의 한류 스타인 셈입니다.

하루에 한 명의 의원에게 배정된 질의시간은 대략 15분 정도입니다. 제 경우는 직접질의, 서면질의, 현장 즉석질의를 포함해 약 200여건을 한 셈인데 이를 14일로 나누면 하루에 14건 정도 질의를 한 꼴입니다.

이번에 해보니까 한 꼭지 질의를 하려면 대략 최소 시간 5분 정도는 할당해야 하는데 이를 충분히 소화하려면 하루에 제 경우 70분 정도는 필요하겠더군요. 모든 의원님들이 저와 같다면 제가 속한 문광위 소속 의원들 22명 곱하기 70분하면 1540분이 나오고 계산상 25.7시간이니 24시간을 모두 쓴다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겁니다.

밤 1, 2시에 질의서를 갖고 의원회관을 빠져 나올 때면 거의 모든 방이 불이 켜져 있고 경비원들도 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의원회관 복도를 걸어 나올 때 불꺼진 방은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보게 되는데 부럽기도 하고 '무슨 배짱일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집에 가서 한 번 더 사인펜을 들고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하다가 잠에 곯아 떨어지곤 했는데 영락없는 수험생 꼴이었습니다.

이번 국감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정부 부처를 국감했다기보다 그들이 저의 의정감사를 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그 방면에 전문가들이고 저는 이제 풋내기 신입생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정말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은 내용은 질문하기가 두려운 적도 많습니다.

괜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문광위 소관 32개 단체와 운영위에 속한 청와대, 중앙인사위, 기획예산처 등 국감대상 기관을 모두 주워 섬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웬만한 마이너 부처는 풀네임을 외우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국감은 저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학습의 장이요 수련의 장이 되었습니다. 국가 행정부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대략이나마 파악하게 되었답니다. 그것을 이 글에서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국감을 마치고 난 후의 느낌은 마치 성년식을 치르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요? 안도의 한숨, 해방감과 함께 밀려오는 포만감 같은 것도 분명 있습니다.

정책 대안은 끝까지 추적한다

여러 가지 후일담 중에서 한 가지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바로 국감에 대한 언론의 평가입니다. 사실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국감의 내용은 역시 언론을 통해서입니다. 언론에서는 대개의 경우 '국감 구태 여전', '16대와 달라진 것 없어', '정책 국감은 없고 정쟁 국감만 난무' 등 국감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가 '구태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의원들은 17대 국회가 16대 국회와는 판이하게 다른 '내용있는 국감'이라는데 이견이 없지만 의원 따로 언론 따로 국밥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언론은 객관적인 평가자이고 국회의원은 주관적 주체이기 때문에 평가가 상이한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국감에 임하는 의원들의 태도도 16대와는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문광위의 경우 이석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점심식사 비용은 피감기관과 동등하게 밥값을 냈고 피감기관의 특별한 호의는 받지 않았습니다. 봐주기성 질의는 거의 없었고 여당이라고 정부 부처를 일방적으로 감싸주는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보기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치열하게 논쟁적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는 이런 부분만 집중 부각되어서 지면과 전파를 타고 이슈화되더군요. 뉴스 가치와 가시성을 생각했을 때 언론으로서도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겠지만 참으로 아쉬운 대목입니다.

중국의 역사 왜곡과 고구려 영문표기 혼란상, 독립기념관 민족정신 고취 및 경영문제, 행정수도 이전시 서울시 녹색청사진 문제, 해외 여행객 안전 관리 시스템 점검, 미군 주둔지 문화재 보존 및 문화재 지표조사 문제, 해외 홍보원 정비, EBS 유아대상 프로그램 페스트 푸드 광고 문제, 언론인에 대한 과도한 특혜지원 문제, 방송 작가에 대한 열악한 환경, 3대 대기업(특히 CJ엔터테인먼트) 영화산업 장악 문제, 영상물 등급 위원회의 무성의한 심의, 상하위직 공무원 정년퇴직 기간 차이 및 기능직 일반직 직급조정 문제 등을 많이 제기했지만 이런 부분들은 정치적 이슈에 가려진 비운의 주제들입니다.

정치적으로 빛나는 이슈들은 아니지만 4년 내내 이러한 문제들을 추적해 가며 끈질기게 집착해 보겠습니다. 특히 주한미군 파주 스토리 사격장 문제를 비롯한 미군 공여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방안에 대해 연구하겠습니다. 또한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과 활성화 방안, 게임산업에 대한 관심,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문화 발전소로 개발하는 문제, EBS 발전방안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러한 국감의 와중에 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안 중에서 언론 관련 분야를 담당하느라 몸과 마음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기자들에 맞서 보안을 지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내용을 1분 1초라도 빨리 알려고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언론개혁 입법안을 발표하는 지난 금요일 전야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방 앞에 죽치고 있지를 않나, 휴대폰이 뜨거울 정도로 전화를 하질 않나, 자기가 말해 놓고 맞냐 틀리냐고 묻지를 않나, 정말 죽을 맛이더라구요. 그렇지만 끝내 보안은 지켜졌습니다. 내용을 가다듬는 일 못지 않게 그것을 발표장에서 흘린 정보 없이 말할 수 있기까지는 정말 국정원 못지 않는 인내심과 포커페이스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던진 말은 내가 실천할 말이다

국감 끝 무렵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이 났습니다. 국감을 모두 뒤덮는 가히 메가톤급 대형 이슈가 터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폭탄이 국감초기에 터지지 않았다는 면에서 국감은 국감대로 진행된 점일 겁니다. 상상속에나 있는 아니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관습헌법'을 제정해 성문헌법을 단죄하고 국회의 권능을 무력화시킨 헌재정치가 국내의 모든 정치이슈를 잠재우고 국회를 헌재 보자기로 감싸버렸습니다.

국회의 죽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새로운 충격적인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처럼 부지불식간에 와서 기존 질서를 뒤덮고 가지만 그 질서 속에 새로움이 디밀고 온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봅니다. 초선의원으로서 처음 경험해 보는 국감에서 배우고 익히고 느끼고 수련했듯이 그래서 더 넓은 눈을 떴듯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환경은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의 전진을 열어제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국감 후기를 마치면서 국감 기간내에 있었던 일들과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방송위 국감 때 제가 했던 말중 '정곡을 찔러 답변해 주세요'는 앞으로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정곡을 찌르는 질의를 해야겠지요. 방송과 신문의 공공성과 공익성 투명성은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는 내내 간직해야할 정신입니다.

'언론 길들이기'라는 한나라당 공격에 저는 언론은 길들일 수 없고 길들여지지도 않는다. 언론은 코끼리, 원숭이, 강아지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언론은 길들일 수도 길들여지지도 않습니다. 내 자신도 언론의 보도 행태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국회의 관습에도 길들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사형선고를 당했는데 박수치며 환호하는 부모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문제도 정서상, 논리상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나라당이 찬성해 통과된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이 헌재에 의해 위헌 판결이 났는데 한나라당은 환호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뇌 구조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는 연구과제로 남겨두겠습니다.

오늘 보좌진들과 국감 평가 회의를 했습니다. 저의 국정감사에 대한 소화능력과는 다르게 제가 평가하는 저희 보좌진들의 국감보좌는 모두 훌륭했습니다. 제가 초선이듯이 저희 방에 있는 모든 보좌진들도 모두 초짜들입니다. 그러나 저희 방의 식구들은 어느 방에 뒤지지 않는 성실함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고 완벽에 가까운 팀플레이를 했습니다.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출근해 보니 달랑 담요 한 장 깔고 자고 있더군요. 옛날 총학생회실의 풍경처럼 말입니다. 저를 위해 헌신한 방식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그동안의 노고를 안주 삼아 한 번 취해 볼랍니다. 앞으로 오늘의 경험을 되살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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