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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이 삼세 가량?
소녀라고 하기엔 이미 여인이 된 그녀의 미모는 청초했다. 갸름한 얼굴에 반듯한 이마와 선연한 아미(蛾眉) 아래에는 초롱초롱한 두 눈이 맑았다. 옅은 자의(紫依)의 앞가슴엔 막 피어날 것 같은 흰색 연화(蓮花) 한 송이가 자수돼 있어 그녀의 청초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옆에는 역시 그녀보다 두세 살 어린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시비라고 보였지만 그녀에게 다른 특이한 기질이 있었다. 약간 풍만해 보이는 몸매와 둥그런 얼굴은 오히려 그녀의 원래 나이보다 더 성숙하게 보였다.

특히 눈(目).
옛날부터 색(色)에 있어 으뜸이라는 삼백안(三百眼)이다. 눈동자 아래까지 흰자위가 보인다 하여 부르는 삼백안은 보통 색기가 넘쳐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특이했다. 요사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녀의 두 눈에선 기이한 빛이 영롱하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삼백안이되 그 흰자위는 흰색이 아니라 수시로 다른 빛을 내뿜는 보석 같았다. 그녀의 눈과 청초한 여인의 눈이 주시하고 있는 것은 한 사내였다.

삼십대 후반에 접어든 듯 보이는 잘생긴 중년의 사내. 선이 뚜렷하고 이목구비가 시원스럽다. 그 중년의 사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 중으로 보였다. 그 사내의 머리 위로 영롱한 다섯 개의 환(環)이 맺히는 것 같더니 그의 머리 위로 내려앉으며 사라졌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오기조원(五氣造圓)의 경지다. 다섯 개의 환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곧 삼화취정(三花聚頂)의 단계에 오를 것이다. 이 정도의 수련은 선가(禪家)에서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말한다.

이 단계를 넘어선 등봉조극(登峰造極)이나 육식귀원의 경지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아직 그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없다. 만약 있었다면 그는 신선(神仙)이 되었거나 해탈(解脫)하였을 것이다.

무림에서 말하는 화경(化境)이나 신화경(神化境), 조화경(造化境)이란 말들은 오기조원의 초입에 든 것을 의미한다.

“….”

그 사내의 두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리고 입술이 떨어졌다.

“오래 기다렸겠구나, 운령(蕓玲).”

하루 열두 시진 동안 그는 그 자세로 있었다. 운령이라 불린 청초한 여인의 눈에 안도의 미소가 걸렸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더니 대성(大成)을 축하드려요.”

말은 청초한 여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여인은 옆에 있는 삼백안의 여인의 손바닥에다 글을 쓰고 삼백안의 여자는 그대로 말을 하고 있었다. 삼백안의 여자는 그녀의 입인 셈이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맙다. 역시 불완전한 염화심력(念火心力)은 한계가 있구나. 한번 사용하면 혼절할 정도에까지 이르니 내 능력을 헤아리지 못한 불찰이야.”
“이번에 왜 그리 무리를 하셨나요?”
“나도 모르겠다. 그 자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 내가 가진 염화신력을 모두 쏟아 부었으니까.”

그는 바닥에서 일어나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그의 막내사매다. 그리고 그가 가장 믿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당연히 상대는 온 혈맥이 터져 죽었겠군요.”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버티어 내더구나. 풍운삼절(風雲三絶)을 꺽은 인물이니 그리 간단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신력이 대단하더구나. 그는 염화심력 속에서도 조금씩 내게로 다가왔어.”

그녀의 얼굴에 잠깐 놀람의 기색이 흘렀다.

“호오, 나이도 아직 젊다고 들었는데 사형의 염화심력에서도 움직일 수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시간만 더 있었다면 그의 혈맥을 산산이 찢어 놓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구양휘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야.”

“좌우산인(左右狻人) 가지고도 힘들던가요?”

산(狻)은 백수의 왕인 사자(獅子)를 뜻한다. 그렇다면 좌우산인은 사자처럼 용맹한 두 사람의 고수를 말한다.

“이 사형이 잘못 판단한 거야. 오히려 처음부터 염화심력을 사용하지 않고 손을 썼다면 모르지. 이미 염화심력을 사용한 상태에서 구양휘와 팽악, 그리고 염화심력을 견뎌낸 자까지 있는 상황에서 좌우산인은 그들을 당해내지 못해.”

그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염화심력을 사용하고 나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는 변명하듯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구양휘와 팽악이었지. 그들이 지키고 있음을 알았어. 그들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들부터 먼저 처리했어야 했는데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 싫었지. 그래서 조용히 염화심력으로 그 자를 없애고 송하령을 잡아 올 생각을 하였던 거야.”

그 생각은 그 젊은 인물에 의해 깨졌다. 풍운삼절을 꺾고 송하령을 지켜냈다는 그 자.

“좋은 경험을 하셨군요. 사형. 그 덕에 사형은 완벽한 단계에 오르셨잖아요.”

“버려야 얻는다는 옛말이 맞다. 그동안 내 마음 속에는 염화심력에 대한 믿음과 함께 자만이 있었던 거야. 그것을 모두 버리고 나니 이렇듯 새롭게 다시 채워지는구나.”

“사형이 계셔 우리는 우리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녀석, 나는 네가 있어 그럴 것 같구나.”

그는 사매가 자랑스럽다. 그와 나이 차이가 거의 이십년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막내사매로 받아들이자고 한 것은 그다. 그녀의 신분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형제가 될 만한 능력이 있다.

“그건 그렇고, 정주의 일은 어떠냐?”
“그 일은 실패할거예요. 오히려 우리의 눈과 귀만 잃게 되겠죠.”
“손가장은 중요한 곳이다. 그곳만큼 무림정세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손가장은 손님이 많다. 무림인 뿐 아니라 모든 부류의 인물들이 모여들고 퍼져 나간다.
무림 뿐 아니라 중원 정세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는 손가장만한 곳도 드물다.

“일곱째가 고집한 일이냐?”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꼭 대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일곱째는 능력은 출중하지만 너무 급한 것이 탈이야.”

어쩌면 셋째사형은 또 일곱째사형을 야단칠는지 모른다. 사형제간 꾸지람은 일곱째사형을 위축시킬 수 있다. 셋째사형은 대사형과 둘째사형이 출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수뇌이다. 더욱 일곱째 사형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들은 내일쯤 우리의 눈과 귀를 처리하고 떠나게 될 꺼에요.”
“아까운 일이다.”
“이제는 그녀들을 건들지 마세요. 대사형께서 소녀 생각을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전언(傳言)에 따르면 송하령을 굳이 막을 필요 없다 하셨어요. 오히려 소림에 가도록 내버려 두자는 소녀의 의견이 옳다고 하셨어요.”

그 말에 사내의 얼굴에 복잡하고도 기이한 표정이 떠올랐다.

“대사형은 너무 신중한 것이 흠이다. 신속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너무 숙고하지. 진작 네 생각대로 움직였다면 지금까지의 희생도 막을 수 있었는데….”

송하령과 서가화를 추적하면서 그들의 희생도 컸다. 만물표국의 표사들이야 상관없었지만 강남 서장군가의 위사들과 비밀리에 그녀들을 보호하는 신비 인물들은 절대 하수가 아니었다.

“희생만큼 대가도 있을거예요. 하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요.”

그녀가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 있을 수 있을까? 사내는 기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일은 흔치 않다.

“왜 그토록 귀중한 물건을 조그만 만물표국에 맡겼을까요? 더구나 왜 서가화와 송하령을 내세워 운반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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