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송승헌씨에 대한 병역연기 탄원으로 비난여론을 받고 있는 우상호 열린우리당 의원이 29일 "한류의 확산을 위해서 병역문제의 큰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아량을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우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www.woosangho.or.kr)에 <송승헌씨 문제와 관련해서>라는 글을 통해 자신이 송씨 병역연기 탄원에 나서게 된 배경과 지금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 글에 따르면, 우 의원은 지난 25일 국회 문광위 위원장실을 찾아온 관계자에게 "드라마만 찍고 입대하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슬픈 연가' 드라마는 송승헌씨 출연을 전제로 일본에서 30억원 투자를 받았고, 이후 일본과 동남아, 이집트에서 방영될 예정"이라는 문건을 받았다고 한다.
우 의원은 "송씨가 드라마 출연으로 받은 3억원의 수익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했고, 또 드라마 촬영을 마치면 바로 입대하니까 이 정도는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탄원 배경을 설명했다.
우 의원의 이같은 판단은 지난 8월 일본과 베트남 방문 당시 한류열풍에서 받은 충격에 기인한다. 우 의원은 "일본에서는 '겨울연가' 때문에 교포 여학생에 대한 공격이 사라졌고, 베트남에서는 일주일에 4∼5편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한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전했다.
우 의원은 이에 대해 "드라마 한 편이 수십년간 수백, 수천억원을 들여도 하기 힘든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 의원은 그동안 상임위나 국감 기간동안 "국가가 한류를 본격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네티즌들의 비난에 대해 우 의원은 "네티즌들이 (나를 보며) 병역 기피 범죄자를 감싸는 정치인을 떠올렸다"며 "당황했다"고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우 의원은 "정치인이 추진하는 정치행위나 정책이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국민의 법 감정이나 보편적 정서와 충돌할 수 있으며,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다"며 씁쓸한 심정을 나타냈다. "문광위 내에서 종합적인 공론을 벌이지 못하고, 원칙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시키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우 의원은 "송씨를 비롯한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고의적으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분노했고, 스타들에게도 병역면제 혜택을 주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병역기피에 대해서는 강경한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다음은 우상호 의원의 해명글.
송승헌씨 문제와 관련해서
10월 25일 오전 10시 50분쯤, 이해찬 총리가 대독한 대통령 시정연설이 끝나고 여야 간사회의를 하기 위해 나는 이미경 문화관광위원장실로 올라갔다. 이미경 위원장은 본회의장 앞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우상호 의원님이시죠? 저 아무개라고 합니다."
"아 그러세요?"
"지금 이미경 위원장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안 계시니까 의원님께라도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예. 무슨 일이신데요."
그리고 위원장실 입구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저, 송승헌씨가 병역 기피문제로 이제 신검을 받고 입대를 해야 하는데요. '슬픈 연가'라는 드라마…."
나는 순간적으로 병역을 면제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했다.
"아, 그 문제요. 그건 안 됩니다. 병역면제는 불가능하지요."
"아니요. 면제시켜달라는 것이 아니고요. 드라마만 찍고 입대하게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2, 3장짜리 문건을 보여주었다. 요지는 일본에서 30억을 투자받아서 제작하려는 '슬픈 연가'라는 드라마인데, 송승헌씨가 출연하는 것을 전제로 투자가 들어온 것이고, 이 드라마는 일본과 동남아, 이집트까지 방영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한류!'
이번 여름 8월에 일본과 베트남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 여행을 통해서 대단한 충격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한류가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겨울연가 때문에 난리가 아니었다. 툭하면 발생하던 교포 여학생에 대한 공격(이지메)이 사라졌다고 했다. 한국어 배우기 붐이 일어서 NHK는 월 20만부씩의 한국어 교재를 판매하고 있었다. 일본 주부들이 저금통을 깨서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실제로 연간 3천명 수준이던 남이섬('겨울연가' 촬영지)에 연간 20만명이 넘는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최지우씨 이야기를 꺼냈고, 후쿠다 관방장관은 자기 부인이 욘사마 팬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베트남도 놀라울 정도였다. 장동건, 김남주씨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최근에 '유리구두'가 방영되면서 소지섭과 김현주씨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정도였다. 일주일에 4-5편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는데, 이 때문에 한국은 좋은 나라, 가보고 싶은 동경의 나라가 되어 있었다. 김남주씨가 모델을 한 'LG 드봉'은 프랑스나 일본 제품을 누르고 최고의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었다.
국정 홍보처, 외교부, 문화관광부의 해외문화원 등이 국가 홍보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드라마 한 편이 수십년간 수백, 수천억원을 들여도 하기 힘든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귀국한 이후 나는 가는 곳마다 한류의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상임위원회, 국정감사 기간에도 자주 언급했다. 이제 한류문제를 국가의 정책 테이블에 올려놓고 본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문제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송승헌씨가 출연할 한류 드라마의 완성을 위해서 2개월 정도만 입영 시기를 조정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은 검토할만한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송승헌씨를 비롯한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고의적으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나는 분노했었다.
더구나 일각에서 스타들에게도 병역면제 혜택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제기되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모두가 황금 같은 시기를 희생해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어떤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개월 정도라면?
나는 잠시 생각했다. 송승헌씨가 드라마 출연으로 받은 3억의 수익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했고, 또 드라마 촬영을 마치면 바로 입대하니까 이 정도는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송승헌씨는 군대에서 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고있고, 입대 전 그가 찍은 드라마를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검토해 볼 테니 문건만 놓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 때 이미경 위원장이 문광위 위원장실로 들어섰고, 여야 간사회의를 위해서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도 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미경 위원장께 말씀드릴 테니 돌아가시라고 했다. 여야 간사회의를 마치고 이미경 위원장께, 이 문제는 도울만한 문제인 것 같은데, 공문을 하나 보내서 우리의 의견을 병무청에 전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건의했다.
이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당황했다. 흥분한 글들이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나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다. 병역을 면제시켜 주자는 것도 아니고 2개월 정도 드라마를 찍을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그 정도의 아량을 베풀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선배 의원이 말했다.
"요즘 힘들지? 우리나라에선 조심해야 할 이슈가 두 가지인데 병역문제와 입시문제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면 안돼. 좋은 경험했지?"
내가 한류의 확산을 위해서 병역문제의 큰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아량을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 네티즌들은 병역을 기피한 범죄자를 감싸는 원칙없는 정치인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정치인이 추진하는 어떤 정치행위, 혹은 특정 정책이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국민의 법 감정이나 보편적 정서와 충돌할 수 있으며,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중요한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더불어, 문광위 내에서 여러 기준을 반영한 종합적인 공론을 벌이지 못하고, 원칙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시키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창조력은 세계적 경쟁력이 있고,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대단히 높은 수준에 있으며,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과 문화 산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2004년 10월 29일 우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