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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고 여 선생님들의 오카리나 합주
ⓒ 정일관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 주변의 가을은 점점 비어갑니다. 황정리 들판의 나락들은 모두 베어져 들판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으로 너르게 안식하고 있고, 감나무의 감이며 모과나무의 모과도 그 단물과 향기를 사람들에게 선사하고는 나무를 가볍게 하였습니다.

새벽엔 거의 어김없이 안개가 흐르고, 열정적인 사랑의 일교차는 활엽수 잎사귀들을 못 견디게 하여 단풍물이 온전히 드는 10월 29일, 10월의 마지막 밤은 아니지만, 원경고등학교는 소박하고 작은 축제를 가졌습니다.

▲ 클라리넷, 튜바, 오카리나 합주
ⓒ 정일관
11월 4일, 제 2회 대안학교 대동제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한 원경고등학교 아이들의 서투른 몸짓들을 '작은 축제'라는 이름으로 리허설을 가진 것입니다. 이전에는 자체적으로 원경 가을 축제를 화려하게 열었습니다만, 대동제가 생기고 나서는 대동제를 본 축제로 삼고, 대동제 리허설을 작은 축제로 만들어 소박한 잔치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난 오후 7시, 기숙사 내 5층 강당에는 작은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연극 <하늘 학교>를 준비하기 위해 연기자들은 4층 방에 모여 분장을 하고, 관악 합주부 학생들과 지도 선생님, 오카리나 합주를 해 줄 여자 선생님들, 그리고 조명을 제대로 맞추기 위해 대본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의 떨림들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울린 색소폰 연주
ⓒ 정일관
교장 선생님, 학교운영위원장님, 학생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이윽고 막이 오르자, 여자 선생님 세 분이 무대에 올라가 오카리나를 합주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강당을 채우며 작은 축제의 분위기를 열었습니다.

이어서 원경고등학교 관악합주부의 관악기 연주가 있었습니다. 원경고등학교 관악부는 지난 5월에 발대식을 가져서 아직까지 모든 악기의 합주는 할 수 없었고, 클라리넷과 색소폰 정도의 악기로 낮은 수준의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클라리넷과 튜바, 그리고 오카리나가 함께 하여 영화 타이타닉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연주했습니다. 학생 둘과 선생님 둘은 색소폰으로 대중가요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들려주었습니다.

▲ 연극 <하늘 학교>의 한 장면
ⓒ 정일관
비록 그 기량이 뛰어나진 못하다 해도 원경고 모든 식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떼는 아기의 걸음마처럼 그 소중함이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연극 <하늘 학교>는 자살한 학생들이 죽고 난 뒤 얼마동안 하늘나라에 머물면서 억압과 차별과 두려움으로 죽음을 택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천국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이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들을 그러나 어둡지 않는 정서로 이끌어가는 연극인데, 이 연극 작품을 올리기 위해 학생 7명과 교사 2명의 연기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 캠프파이어-치솟는 불길
ⓒ 정일관
작년 대동제에 <방황하는 별들>을 작품으로 올려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원경고등학교는 올해도 본격 연극을 대동제에 출품함으로써 다른 대안학교에서 시도하지 못하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으며, 사실 불모지와도 같은 대안학교 연극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렇게 작은 축제 1부 공연을 마치고, 2부는 운동장으로 옮겨 캠프파이어를 하였습니다. 여름 태풍에 쓰러진 나무 가지들을 모아 운동장 가운데에 모아 세워놓고 불을 지폈습니다. 운동장 한 켠의 무대에선 돼지고기와 떡을 준비하여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 도서관 벽을 이용한 야외 영화 상영
ⓒ 정일관
그리고 이번에도 도서관 흰 벽을 이용하여 야외 영화 상영을 하였습니다. 지난 번 <효자동 이발사>보다 더 역동적인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상영하여 아이들을 더욱 신나게 하였습니다.

달은 휘영청 밝게 비치고, 운동장에선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야외 대형 화면에 담겨 흘러가는 영화 때문에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사위어 가는 모닥불에 고구마를 던져 구워 먹으며, 대동제 리허설 겸 원경고등학교 '작은 축제'는 막을 내렸습니다.

소박하고 서투른 우리들의 몸짓이지만, 모든 원경고등학교 가족들이 하나 되는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달은 높이 솟아올랐고 느티나무 그늘은 더욱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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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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