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는 천지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는 천지 ⓒ 김형태
우리 겨레의 혼과 얼이 담긴 백두산을 중국 사람들은 창바이산(장백산)이라고 불렀다. 조선족인 가이드는 어떤 때는 백두산으로 불렀다가, 또 어떤 때는 장백산이라 칭했다.

우리를 위해 가이드는 백두산에 대해 자기가 아는 지식을 쏟아 놓았다.

"이 백두산은 길림성 동남부에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안도현을 중심으로 한 총면적 19만km의 백두산 자연보호구 내에 있는 휴화산입니다.

또 정상에 그 유명한 천지가 있는데, 이 천지는 칼데라 호로, 수면은 2194m 높이이며, 천지의 둘레는 13.11km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천지의 물은 용천수로서 지하에서 나오며 산천어 등 다양한 물고기도 서식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곳 천지의 물은 쑹화강, 압록강, 도문강의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백두산은 환태평양 화산대의 일부분으로 화산 폭발 때 생긴 흰색 부분으로 인해 꼭대기가 사시사철 희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백두산은 중국의 명산 중의 하나로도 손꼽힙니다(이 부분의 설명에 심히 거슬렸다. 백두산을 중국의 산이라고 하다니…).

백두산은 옛날부터 성지로 받들어졌습니다. 청나라 때는 지배민족이 만주족이었던 관계로, 민족의 발상지라 하여 특별시되어 1677년 강희 16년, 1776년 건륭 41년 두 번에 걸쳐 입산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하였습니다.

백두산 관광은 기본적으로 6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로, 가장 좋은 시기는 7월과 8월입니다. 백두산 연평균 기온은 영하 8도로 연중 눈과 비가 내리는 날이 많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 약 90일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운이 좋아야 천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랬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을 비롯한 주변 말갈족, 여진족, 만주족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숭배되어온 영산이다. 1597년, 1668년, 1702년의 화산 분출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은 항상 국경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안내책자를 보니,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청나라는 백두산을 조상의 발원지로서 장백산이라 봉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봉금정책을 실시하였단다.

봉금령 해제와 더불어 조선 이주자들이 크게 늘어나자 이를 염려한 청나라가 1712년 일방적으로 백두산 분수령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그러나 내용 가운데 토문강에 대한 해석이 난해해 1883년 조선은 어윤중에게 정계비를 조사하게 했다.

이에 청나라는 '토문강'이 '두만강'이라 우기면서 백두산 일대의 간도지역을 청나라 소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조선과 청나라간의 영토분쟁이 발생하기에 이르렀고 양국간 해결 없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청일전쟁 후 일본은 1909년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획득하는 대신 조선과 문제가 된 간도땅을 청나라에 이양한다는 내용의 '간도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로 인해 두만강이 중국과의 국경선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두산은 현재까지도 중국과 북한의 영토로 양분되어 있는 상태이다.

천지 아래 주차장, 저 모래언덕 너머 천지가 있다.
천지 아래 주차장, 저 모래언덕 너머 천지가 있다. ⓒ 김형태
듣자니, 백두산 천지는 그 신비하고 화사한 모습을 잘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년 365일 중 270일은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고 눈이 내린다고 한다. 비싼 여행비를 들여 백두산에 올랐다가 구름이 끼여 천지를 못 보았다는 사람과 일기불순으로 정상에도 접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숱하게 많다고 한다.

따라서 백두산 천지를 본 것은 큰 행운이며 복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3대가 덕을 쌓아야 맑은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산 아래에서 그렇게 맑던 날씨가 정상에 오를수록 웬일인지 구름이 조금씩 드리우고 있었다. 순간 천지를 못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일었다. 한국인 가이드인 서 사장이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기 어렵다고 여러 차례 언급을 해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우리는 지프차에서 내려 제법 스산한 날씨에 맞춰 긴 옷을 덧입고 있는데, 어느새 먼저 뛰어 올라간 하 선생님이 천지가 보인다고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순간 일행들은 모두 누구랄 것도 없이 천지를 향해 정말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었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는 약 50m 정도 높이일까? 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발 딛는 곳이 길이었다. 아무리 고산지대라도 있어야 할 풀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 땅이 모래밭처럼 되어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나와 아내도 정신없이 뛰는데 숨이 막히고, 다리가 뻑뻑해서 움직이기 힘들었다. 달린다고 달렸는데도 모래흙이 아래로 밀려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운동을 좀 해온 터라 이 정도에 지칠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아마도 지대가 높다보니 산소가 희박한 데다 워낙 급경사고 또한 모래언덕이라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급경사의 모랫길을 간신히 올라서자, 이번 여행의 목적지, 천지가 드디어 눈앞에 펼쳐졌다.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멎을 것만 같았다. 천지를 보고 감격해서가 아니고 너무 급하게 뛰어 올라와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하늘이고 모두 노랗게 보였다.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우리는 입에 거품을 문 것처럼 경박한 모습인데, 민족의 성수, 천지는 너무 고요하고 잔잔했다. 해발 2700m 높이의 고요한 천지에 햇살이 비치어 마치 보석이 반짝이는 듯 했다.

백두산 천지비, 중국 측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르고 있다.
백두산 천지비, 중국 측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르고 있다. ⓒ 김형태
백두산 천지는 용문봉, 지반봉, 백운봉, 옥주봉, 제운봉, 와호봉, 관면봉, 화개봉, 천문봉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북한 쪽에 있는 백운봉이 최고봉이고 중국 쪽에는 기상대가 있는 천문봉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러한 봉우리들이 천지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천지는 동서로 3.35km, 남북으로 4.85km에 이르며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312.7m나 된단다.

천지 아리랑

기러기처럼, 연어처럼
젖 먹던 힘 다하여 찾아왔네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죽을 힘 다하여 찾아왔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동굴 밖으로 나온 곰순처럼 신단수 아래 서자
떨기나무 아래 선 모세처럼 마음의 신발 벗자
가슴 열고 얼싸안는 어머니
어머니의 품에는 하늘이 숨쉬고 있었네
나의 원형질, 나의 고향집, 나의 태백산
나의 에덴, 나의 가나안, 나의 젖무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내가 한을 풀어 안개꽃 피우자
더 크게 꺼이꺼이 울음짓는 어머니
눈물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네
언젠가, 언젠가는 기쁨의 눈물이
하늘로 땅으로 분수되고 폭포되어 흘러 넘치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천지와의 상봉 후 시라는 형식을 빌린 나의 작품이다.

천지는 가이없이 맑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것이 산에서의 날씨라고 했던가! 구름이 벌써 천지의 한 쪽 면을 덮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천지가 구름에 덮이기 전에 사진 한 컷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면서 표준렌즈라 천지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정상에서는 중국인들이 와이드카메라를 이용하여 12컷 사진을 찍어주며 4만원을 받고 있었다. 보니 전문사진가도 아닌 젊은이들이었는데 폭리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름에 덮이기 전에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야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 일행 모두 사진을 찍었다.

정신없는 30분이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숭엄한 느낌을 받기보다 사진 찍기 바빴다는 자탄이 나왔다. 천지 주변 봉우리들은 절벽이 많아 위태로운 데도 보호 시설이 전혀 없어서 위험했다. 진작 광각렌즈를 준비해 갔으면 12컷 4만원이라는 폭리를 허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곳에는 중국 공안원들이 나와 있어 어떤 정치적인 발언이나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고 현지 가이드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해서 우리는 고지식하게도 아무런 준비 없이 천지에 올랐다.

그러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보였다. 한 젊은이는 태극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온 것이다. 그 젊은이가 잠바의 자크를 열자 태극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부럽다는 생각과 더불어 나는 왜 저 생각을 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일이 바로 8·15 광복절인데! 우리는 애국가 한 번 부르지 못했다. 그저 천지 넘어 저쪽이 북한 땅이려니 하는 생각에 휴전선 앞에 서있는 것처럼 분단의 아픔을 아로새겨야만 했다.

하루 빨리 통일의 날이 와야 할 텐데. 그 전에라도 이렇게 먼 이국땅을 돌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북한 땅을 밟고 천지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했다. 정말 북한도 금강산만 개방할 것이 아니라 이 백두산을 개방한다면 북한 경제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터인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