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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은 부모는 "하늘이 노랗습니다."

부모를 잃은 아이는 "앞이 캄캄합니다."


'애가 타는 마음'이란 게 이런 걸까? 한 달 전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향하는 지하철 안에는 내 마음을 대변해 주기라도 하듯 '미아 찾기 캠페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 가출하기 전 말티즈 다움이의 모습
ⓒ 정현미
시집도 안간 처녀에게 아이가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나는 지난해부터 말썽꾸러기 말티즈 '정다움'의 '엄마'가 됐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도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날이 있었다. 전날 밤 더워서 열어둔 문으로 다움이가 가출한 것.

순간, 아직까지 대소변을 못 가리는 다움이가 전날 밤 '쉬야'를 하다가 나에게 들키자 눈치를 보며 구석으로 숨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거실 바닥에 찍힌 '노란 발자국'을 가리키며 유난히 많이 혼냈다. '하루종일 혼자 외롭게만 하고 놀아주지도 못했네….'

전단지를 붙여야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며칠간 계속 비를 뿌렸다. 프린트 잉크가 수성이라 비오는 날에는 붙일 수가 없기 때문에 뚫린 듯한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엄마는 굴하지 않는다.

노란 하늘 속에서 하루 종일 떨고 있을 다움이

어디선가 우리 다움이가 비를 쫄딱 맞고 떨고 있을 것만 같았다.

'누가 데려가서 키우는 걸까?', '까탈스런 아주머니가 자식 성화에 못 이겨 키우다가 밥도 안주고 때리는 거 아냐?', '어디 벽 틈새에 끼어서 굶어 죽었으면 어쩌지….', '무식한 아저씨가 똥개인 줄 알고 뒤늦은 복날 잔치를 했으면 큰일인데….'

하루에도 수십 가지씩 새로운 상상을 하며 끔찍해 몸서리칠 때도 여러 번. 어디서 강아지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오밤중에 슬리퍼를 끌고 나가보는 것도 예사가 됐다.

비가 그치고, 나는 남자친구와 매일 밤 전봇대며 담벼락에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다움이가 앉아 있던 텅 빈 쿠션이 왜 그리도 커 보이던지…. 물어뜯던 '개껌', 좋다고 몰고 다니던 '삑삑이 공', 주인 잃고 먼지만 쌓인 빨간 개밥그릇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을 돌리면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다움이가 팔짝 뛰어 올라와 꼬리를 흔들며 내 품에 안길 것만 같았다. 항상 침대 머리맡에서 내 머리카락을 밟고 잔다고 신경질을 부렸는데 다움이와 자리싸움을 하던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김없이 '내일 아침도 또 눈이 붓겠군….' 다움이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질 때면 베개는 그렇게 다움이가 없는 무게만큼 내 눈물을 머금곤 했다.

우산을 받쳐들고 다움이를 찾아다니다가 어디선가 다움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난 곳은 길 건너편 집. 아주머니는 담장에 가려진 강아지를 보여주지 않으려 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음날 밤 남자친구와 나는 그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섰다.

'그 집 불이 꺼지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담장 아래에 묶여 있을 다움이를 구출해 내리라!'

떨리는 가슴으로 유난히 '삐기익~' 소리를 내는 철문을 1mm나 밀었나 모르겠다. 철문과의 사투 끝에 철문 사이로 낑낑대며 기어 나오는 뭔가가 보였다. '쿵쾅 쿵쾅….' 그러나 그것은 갈색 발바리…. 내 머리 위 파란 하늘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 단골 동물병원 앞에 붙은 '강아지를 찾습니다' 전단지들
ⓒ 정현미
밤새 붙여놓은 전단지는 자고 나면 테이프 자국만 남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순 없지. 다움이를 찾는 그날까지 동사무소 아저씨와 우리의 '붙이면 떼가고, 떼가면 붙이는' 승부는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술취한 아저씨와 꼬마의 장난전화로 3번이나 허탕을 쳐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열흘쯤 전 밤에 흥덕사 앞에 목줄 있는 강아지가 서성이길래 경찰서에 갖다 줬어요."
"정말요? 어떻게, 잘, 안 다치고, 건강하던가요? 감사합니다. 목줄 있고…?"

바보처럼 더듬기만 하고, 기쁜 마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비교적 상세하게 강아지의 상태와 발견 장소를 설명해준 그분의 전화는 지쳐 있던 내 마음에 단비를 뿌려주었다.

나는 인턴으로 회사에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처지라, 남자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자친구는 회사에 "강아지를 찾아야 해서 늦겠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대고 나 대신 경찰서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때 처음 알았다. 41분에서 42분으로 바뀌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경찰서에서 K시청 산업·경제과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시청으로 달려간 남자친구는 다움이의 사진을 확인하고도 "담당자가 없으니 내일 오라"는 말만 듣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강아지 관리 잘하세요" "민원 처리도 잘하셔야겠어요"

다음날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는' 내가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을 떴다.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시청의 산업·경제과에서 나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전날 말티즈의 주인이라고 시청에 찾아온 사람이 전화번호까지 남겨두고 가 강아지 한 마리에 주인은 둘이나 나타난 것. 시청에서는 어제 찾아온 상대편 주인이 오기로 했는데 핸드폰을 받지 않는다며 무작정 기다려보라고만 했다.

경찰서에 온 유기동물은 시청으로 옮겨지고, 시청 관계자는 동물병원에 데려가 동물의 상태를 확인한 뒤 성별, 종, 발견일과 장소, 간략한 건강상태 등을 서류에 기재하게 된다. 동물 중 전신에 피부병이 번져 있거나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

반면 상태가 양호하고 분양가치가 있는 동물은 광견병주사를 맞고 유기동물 보호소로 보내진다. 유기동물 보호소는 발견일에서 보름 정도가 지나면 시청 홈페이지에 분양공고를 내고 2주 후면 아무리 건강해도 안락사를 시키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 가출 후 약 3주만에 집에 돌아온 날 다움이의 모습
ⓒ 정현미
시청 관계자 두 명은 중성화 수술을 시킨 수컷이며 녹색 목줄이 있었다는 나의 말에 계속 "분명히 목줄이 없는 걸 확인했다", "암컷이었다"며 포기하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다움이 사진이 붙어 있는 서류 비고란에는 '안락사'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에는 분명히 다움이가 겁에 떨고 있었고, 언제까지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상대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릴 수는 없어 관련 서류 열람을 요청했다. 유기동물의 사진과 간략한 정보를 모아놓은 서류철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데도 시청 관계자가 안 보여주려 했지만 따지고 들어 어렵사리 보게 됐다.

서류철에는 다움이 사진 바로 뒷장에 또 다른 말티즈 암컷이 버젓이 있었다. 그럼 시청 공무원은 서류를 단 한 장도 넘겨 확인해보지 않고는 말티즈가 한 마리니 주인을 가리라고 시간을 끌며 '싸움을 붙였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서류 안 내용. 두 말티즈의 정보와 사진이 뒤바뀌어 있어 멀쩡히 살아 있는 다움이의 사진 아래 '안락사'라고 쓰여 있었다. 만약 내가 포기하고 돌아갔다면 다움이는 1주일 내에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빼앗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간신히 연락이 된 상대편 여자의 말은 지금까지 시청 관계자에게 들은 말과 전혀 달랐다.

"저는 시청 홈페이지에서 유기동물 분양공고를 보고 그 말티즈를 키우고 싶어 찾아갔던 건데요…."

시청 직원은 유기동물보호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강아지 관리 잘하셔야 우리가 고생을 안 하죠"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에 나는 "민원관리도 잘 하셨으면 이렇게 고생시켜드리지는 안았을 텐데…"하고 받아쳤다.

봉고차를 타고 굽이굽이 밭 사이 길을 간신히 달려가니 '유기동물보호소'라는 작은 푯말이 보였다. 하지만 그곳은 보호소라기보다는 죽기 전 잠시 대기하는 곳처럼 음산하고 우울함이 느껴지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작은 강아지들을 몰아넣은 우리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를 알아보고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르는 다움이였다.

시청 직원은 "아, 녹색 목줄이 있긴 있네…"하며 민망해 했다. 흰 배와 다리가 오줌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지만 하나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고, 다움이를 안아드니 눈물부터 났다.

돌아오는 봉고차 안에서 눈물이 털에 말라붙은 다움이를 쓰다듬으니 다움이가 낑낑댔다. 자세히 보니 갈비뼈가 느껴질 정도로 말라 있었고 등에는 주먹만한 피멍이, 뒷머리에는 피가 굳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다움이는 낯선 말라뮤트 새끼와 마주했다. 외로워하는 듯한 다움이를 위해 말라뮤트 여동생을 함께 키우기로 한 것. 다움이는 무척이나 좋은 듯이 좁은 집 안을 뛰어다니며 꼬리를 흔들고는 허겁지겁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사료에는 입도 안대는 '입만 고급'인 녀석이었는데 가출하고 나더니 철이 들었나보다.

다음날 출근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전봇대에 남아 있는 전단지를 떼어냈다. 그러다 여전히 강아지를 찾지 못한 주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 있는 다른 전단지를 보니 나도 따라 가슴이 아팠다. '강아지 한 마리 잃어버려도 이렇게 애타는데….' 앞으로는 미아 찾기 캠페인을 무심코 지나치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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