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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책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한겨레신문사
사람들에게 있어 '성공한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지나치게 '성공'이란 단어에 집착하며 사는 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성공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지를.

책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독자들에게 성공에 대한 의문을 갖도록 만든다. 책은 웃음과 재치 있는 언어의 배열 속에 숨어 있는 '진실한 인생의 의미'를 속속들이 내보인다. 독자들은 그저 책장을 펼쳐 들고 저자 박민규가 이끄는 삼미 슈퍼 스타즈 야구단의 우여곡절과 그들과 함께 격동기를 보낸 한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982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1982년의 사회를 함께 이야기한다. 37년만에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중고생의 두발과 교복 자율화가 확정된 시기. 한국 사회는 이른바 '자유'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물결을 맞이하는 듯했다.

하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1982년은 프로야구가 탄생한 한국 프로야구의 원년으로 기억되는 편이 더 편리하다. 어떤 팀이 자신의 지역과 연고가 되는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던 해. 그 해의 프로 야구를 생각하면, 주인공은 '도무지 삼미 슈퍼 스타즈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야구는 삼미 슈퍼 스타즈의 것이었고, 또 그런 이유로 야구를 꽤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은 2001년. 세상은 그 해의 프로야구에서 19년이나 멀어졌고, 이젠 그 누구도 삼미 슈퍼 스타즈를 기억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를 펼치고 혜성처럼 사라져간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회원일 것이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삼미 슈퍼 스타즈가 위대한 이유는 바로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꼴찌를 감수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항상 일등과 꼴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아마추어와 같은 어설픈 경기를 보여 주었던 삼미 팀. 그들은 승부에 목숨을 거는 야구가 아닌 즐기는 야구를 했기 때문에 지는 것이라고, 주인공은 자기 편리한 대로 생각한다.

삼미에 열광하다가 꼴찌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던 사춘기의 그는 이른바 '성공한 어른'이 된다. 일류대에 입학하여 평범하지만 우여곡절 많은 학창기를 보내고 '괜찮은' 대기업에 취직한 주인공. 그의 신혼 여행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책은 <가정을 버려야 직장에서 살아남는다>이다.

그가 가정보다 직장에 몸바쳐 헌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차 구조조정 대상자가 되어 버린 것은 왜일까? 인천이라는 변두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어디에서도 '프로'급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막막한 현실. 그는 어린 시절 이미 꼴등 삼미 팀과 일등 OB 팀의 엇갈리는 희비, 서울 연고의 주류 팀과는 대조적인 비주류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껴버린 것이다.

삼류이자 아마추어인 주인공의 인생은 결국 삼미 슈퍼 스타즈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그토록 성공하길 희망했던 그가 걷게 되는 길은 가정도 직장도 모두 잃은 실업의 이혼남이라는 허망한 삶이다. 다행스럽게도 옛 친구인 조성훈을 다시 만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제 자리를 찾는다.

그 '제 자리'라는 것은 바로 꼴찌임을 인정하는 삶이다. 지난 날 얼마나 프로이기만을 갈구하면서 일등을 향해 뛰어 왔는가! 성공과 속력, 우승에 집착하지 않는 '정상적인 삶'을 잊어버렸던 주인공은 반성하기 시작한다. 그 반성의 출발점에는 삼미 슈퍼 스타즈의 느리고도 아름다운, 승부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는 모습이 담겨 있다.

프로 야구팀의 출발과 함께 유행처럼 번져갔던 '프로'라는 단어. 이것은 사실 사람들로 하여금 앞만 보고 내닫도록 독촉하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이다. '맛에도 프로가 있다, 프로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 얼마나 많은 '프로' 명칭들이 우리의 삶을 각박하게 몰아갔는가 생각해 보라.

"그 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 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야구를 했던 삼미 슈퍼 스타즈.

이 얼마나 적확한 표현이란 말인가. 그러나 거기서 파생하는 또 하나의 의문. 확실히 평범한 야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삼미는 그토록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팀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걸까. 그것은 아마 기록과 순위의 문제 때문이겠지."


그렇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삶은 그저 허울 좋은 망상에 불과한 '프로'가 되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토록 갈망하는 '프로의 삶'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달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일등 프로의 삶에 근접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가 되기를 독촉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프로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프로가 되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평범한 삶의 의미를 찾는 주인공의 모습은 비록 프로가 아니지만 '아름답다'. 왜냐하면 아마추어의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등이 되기에 집착하지 않았던 삼미 야구단처럼, 프로이길 포기하고 평범한 길을 걷는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회원들. 그들은 비록 주류가 아니고 일등이 아니며 프로가 아니지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산다. 책을 읽으면서 그저 그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는 독자라면 아마 이들의 삶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낼 것이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세상은 획일적이고 틀에 박힌 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프로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좀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평범함 속에서 기쁨을, 아마추어의 삶 속에서 프로다운 기지를 발휘할 때 나는 진정 '나다운' 길을 걸을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개정판

박민규 지음, 한겨레출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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