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년 전 회사를 관둔 지 보름 만에 짐을 싸 떠난 인도.

며칠 사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12시간의 버스 여행 끝에 도착한 맥레오드 간즈에서의 그 느낌 같아 묵은 사진첩을 꺼내 회상에 잠깁니다.

맥레오드 간즈는 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가 자리 잡고 있는 다람살라의 핵심으로 이곳에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까닭은 바로 14대 달라이 라마가 바로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짐을 풀고 가볍게 나선 거리에서는 여느 인도의 다른 곳처럼 무심한 거리의 소들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이 길은 추글라캉 사원과 연결되어 있어서 Temple Road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 길위에 소가 누워있다면 당신은 지금 인도에 있는 겁니다.
ⓒ 정상혁
다른 곳은 흰색 소가 많은 편인데 이곳은 특이하게 검은 소입니다. 그래도 이곳 티베트 사람들의 품성을 닮아서 그런지 길 한가운데를 막지는 않고 길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고 계시는 추클라캉 사원을 향했습니다. 그는 해외 순방중이라 이곳에 머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먼발치서나마 그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을 듯합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같이 눈 덮인 설산이 가까워 보입니다. 저렇게 눈이 덮여 있지만 이곳 날씨는 우리나라 가을 날씨입니다.

▲ 추글라캉 사원에서 올려다본 큰 탑뒤로 설산이 보입니다.
ⓒ 정상혁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을 때 어린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티베트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험난한 추위를 뚫고 넘어온 산이 아마 저런 산이었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니 정말 티베트 절에 온 것 같습니다. TV로만 보던 장면인데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 뿌~~웅 하는 소리가 납니다. 저 소리가 어디까지 나아갈까요?
ⓒ 정상혁
며칠 뒤 있을 행사를 위해 연습을 하는 중이라는 두 스님들. 저렇게 긴 악기를 부르면 숨도 굉장히 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사원은 늘 기도하는 사람들로 넘칩니다.

▲ 오체투지하는 노파. 합장한 두 손으로 무엇을 기원하십니까?
ⓒ 정상혁
2층 중앙에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오체투지(몸의 다섯 부분 즉, 머리, 두 팔과 두 다리가 땅에 닿는 티베트 식 절)는 그냥 절에 비해 훨씬 힘들지만 노파의 오체투지에는 힘들다는 느낌이 없이 그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엄숙함만이 있습니다.

절하는 동안 치마가 펄럭이지 않도록 줄로 묶고 맨바닥이라 방석 같은 것을 자신의 키만큼 준비해야 합니다. 일 배 일 배에 정성을 가득 담아 절을 합니다. 오른쪽에는 티베트 여자들이 두르고 다니는 앞치마 같은 게 놓여 있군요. 저걸 두르고 다니면 백이면 백 티베트사람입니다.

역시 노파의 옆에서 절을 하시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강아지. 기도하는 내내 할아버지의 강아지는 얌전히 누워 할아버지만 바라보고 있더니 기도가 끝나고 짐을 정리한 할아버지가 끄는 가방에 앞발을 얹어 썰매(?)를 타고 할아버지와 함께 돌아갑니다.

▲ 할아버지가 강아지 썰매를 태워줍니다.
ⓒ 정상혁
날이 바뀌고 다음 날, 숙소를 나섰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Temple Road가 입구부터 왁자지껄한 것이 뭔가 구경거리가 있나봅니다. 곳곳에 경찰이 보이기도 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 양옆으로 쭉 늘어서 있습니다.

물어보니 달라이 라마께서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는 중이며 잠시 후면 이 앞을 지나간답니다. 몸을 날려 숙소로 뛰어가 얼른 카메라를 들고 내려와 기다리길 약 5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 달라이 라마가 탄 차가 다가 옵니다.
ⓒ 정상혁
맞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탄 차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나이든 노인들까지 길 양쪽으로 늘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먼 길에서 돌아오는 달라이 라마를 맞이합니다.

▲ 잘보이지는 앞지만 앞쪽 오른쪽 좌석에 달라이 라마가 타고 계십니다.
ⓒ 정상혁
빠르게 달라이 라마가 탄 차는 지나갔지만 그 순간 놀랐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뒷좌석에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전석 옆의 조수석이 앉아 예의 그 넉넉한 웃음으로 거리의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성인(聖人)으로 받들어지는 이유를 알만합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와 눈이 마주치면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이 날도 아마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쏟았을 것 같습니다.

나라를 잃고 목숨을 걸고 설산을 넘어와 정착한 타국 인도의 티베트 사람들이 자신들의 독립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자신들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게 느끼는 감정은 일제에 나라를 잃고 중국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군을 바라보는 우리의 선조들 모습과 어찌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달라이 라마와의 조우를 뒤로 한 채 우리는 먹는 즐거움을 위해 간단히 장을 봐서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내 여행의 즐거움 중 반은 된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먹을 걸 밝히는 셈일까요? 이번 여행에도 석유 버너와 코펠, 김치를 담을 수 있는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챙겼습니다. 오랜 자취생활 덕에 김치를 담글 줄 아는 건 여행에서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 두 달간 함께 여행한 사진작가 김석철님입니다. 입 찢어지겠어요.
ⓒ 정상혁
시장에서 사온 무를 가지고 깍두기를 담았고 양배추나 싱싱한 야채와 고추장뿐인 반찬에 밥을 해놓으면 풀풀 날리긴 하지만 밥짓는 냄새가 일품인 인도쌀밥 한 냄비면 배낭여행의 시름을 잠깐이나마 달랠 수 있는 훌륭한 한끼 식사준비가 끝입니다. 자, 식사시~작!

이렇게 여행자의 하루는 지나가고, 저는 그 때 사진을 보면서 그 날 그 순간을 추억합니다. 그 순간이 그리우면 묵은 사진첩을 들춰보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