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외국 투기자본의 국내 금융 및 산업자본 장악에 대한 우려와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야에 관계없이 연거푸 터져 나와 관심을 모았다.
특히 외국 투기자본의 금융자본 인수 적격성 심사강화와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 방어를 위한 독약처방 도입 등 구체성을 띤 요구안도 쏟아져 재경부의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해외 투기자본 유입에 따른 부작용은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에 의해 이날 처음으로 제기됐다. 송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이미 우리나라의 외국인 주식소유는 헝가리 72.6%, 핀란드 55.7%, 멕시코 46.4%에 이어 4번째로 비중이 큰 상태"라며 "전시작전권도 소유하지 못해 군사주권이 반쪽인 대한민국이 이제 경제주권마저 외국에 넘겨줄 상황이 되고 있다"고 경제안보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강조했다.
"군사주권 이어 경제주권마저 외국에 넘겨줄 상황" 우려
송 의원은 먼저 대표적 외국계 투기펀드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거론하며 "외국자본의 국내은행 및 금융산업에 대한 진출제한 규정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견해를 밝혀 달라"고 이헌재 경제부총리에 요구했다.
송 의원은 또 국내 우량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의 급증으로 투자여력이 감소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유럽국가의 황금주 등 차별의결권제도나 미국의 독약조항 등 경영권방어조항 도입에 대한 부총리의 견해는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외국인 주식보유비중 과다로 인한 문제점으로는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로 인한 경영권위협, 이에 따른 현금보유나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투자여력 감소, 거액의 평가이익과 배당에 따른 국부유출, 단기 실적주의에 의존하여 장기적 전략투자 기피현상, 급격한 외국자본철수에 따른 금융시스템 리스크 등 문제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김영선 의원 "우리 금융기관 시한 쫓긴다면 헐값 매각 단행할 건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목적이 다르긴 했지만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도 가세했다. 김 의원은 "지금 외국인 자본이 전체 상장회사 주식 시가총액의 43.7%일 뿐 아니라 10대 그룹의 외국인 보유지분은 무려 50.8%"라며 국내 기업이 경영권 위협을 느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외국인 자본의 증가에 따른 우려를 표명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김 의원은 SK(주)와 한국가스공사의 경영권 방어용 비용지출 사례를 들면서 "만약에 이동통신사업이 외국 업체에 넘어갔어도, 통신관련 산업이 오늘날처럼 발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이 부총리에게 질의했다.
"SK(주)주식이 소버린자산 운용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법정싸움까지 벌이고 있고, 삼성전자와 현대상선도 운영권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가스공사는 2000∼2002년 3년간 순익의 65%를 자사주 매입에 투입했다. 기술경쟁력을 높이고, R&D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송 의원과 같이 김 의원도 외국 사모펀드의 국내 금융자본 인수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 김영선 의원은 "은행은 63.2%, 보험은 53.6%, 증권은 15.7%가 외국인 소유이고 외환은행은 론스타 펀드에, 제일은행은 뉴브리지 캐피탈에, 그리고 한미은행은 씨티그룹에게 경영권이 인수됐는데 국내 금융시장이 거의 점령당한 상황"이라고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권장악 현황을 소개했다.
김 의원은 이러한 현황 등을 토대로 이헌재 부총리에게 "국내 금융자본에 해외 사모펀드가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허용할 것인지 그리고 시한에 쫓길 경우 헐값 매각을 단행할 것인지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신중식 의원 "우리 기업 경영권 싸움서 역차별적 대우받아선 안돼"
신중식 열린우리당 의원도 "국내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급증함에 따라 기업에 대해 고배당을 요구하고, 장기 R&D(연구개발) 투자를 반대하는 등 국부유출과 기업 성장성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외국인 소유지분 급증에 따른 국내 기업 보호대책을 주문했다.
신 의원은 "외국인 투자를 무조건 저지하거나 제한하거나 하는 법규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지만, 우리 기업이 경영권 싸움에서 역차별적인 대우를 당하도록 하는 규정은 개정 또는 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부총리가 적극 나서줄 용의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외국인 투기·투자자본에 대한 정치권의 이같은 우려와는 달리 이헌재 부총리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특히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외국자본의 장단점을 언급하며 적대적 M&A 방어를 위한 특별한 보완대책을 내놓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정치권과의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헌재 부총리 "외국자본 특별히 위험 가하고 있다 보지 않는다"
답변에 나선 이 부총리는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는 재무적 투자자로 우리 경영에 직접적인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며 "소버린 같은 예외는 있지만 특별히 외국자본이 위험을 가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투기자본의 국내 금융자본 인수와 관련 이 부총리는 "정상적 상황에서 론스타나 뉴브리지캐피탈이 우리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면서 제일은행이나 외환은행이 팔려나간 것은 외환위기 당시의 예외적 경우였다고 해명했다.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권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 부총리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헌재 부총리는 "지금 우리의 적대적 M&A 관련 방어권 수준은 미국 보다는 강하고 유럽보다는 약한 정도"라면서도 "적대적 M&A 방어권 추가조치가 필요한 지 연내에 검토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오히려 이 부총리는 외국인 직접투자에 따른 경영권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조속히 허용해 줄 것을 역으로 국회에 요청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 문제점에 대해서는 면밀히 검토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연기금 등 민간자본이 다양하게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그래야 외국인과 국내 투자자간에 균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부총리는 또 독약처방과 같은 추가적 경영권 방어대책을 특별히 마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뒤 "외국인이 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면 거래소에 보고하게 돼 있고, 여기에 추가적으로 5%를 보유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의결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하고 있는데 그것만 철저히 지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