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면사무소 앞의 김장 행렬
산촌의 겨울은 다른 곳보다 한 달은 빠르고, 또 길다고 한다. 그래서 산촌사람들은 요즘 겨우살이 준비로 바쁘다. 원주 귀래면에 사는 한 그림 그리는 분이 초대를 해줘서 거기로 가고자 버스정류장이 있는 장터마을로 가는데, 면사무소 앞에서 10여분의 부인네들이 수백 포기 배추로 김장을 하고 있었다.
마침 이창진 안흥면장님이 그분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기에 웬 김장을 이렇게 많이 하냐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안흥면 새마을부녀회장(임경연·44)님을 소개시켜주면서 직접 들어보라고 했다.
새마을부녀회원들이 면에서 나온 예산에 독지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서, 면내 혼자 사시는 저소득층 노인 분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겨우살이 김장을 마련해 주고자, 해마다 연례적으로 하는 자원봉사활동이라고 했다. 올해는 600포기를 담그는데 그분들에게 다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듣고 보니 마치 나에게 김치를 담가주는 양 고마웠다. 곁에 있는 면장님도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이 해마다 늘어나지만 행정력으로 돕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매우 안타까워 하셨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처럼 비온 뒤 죽순처럼 늘어나는 혼자 사는 노인 세대 문제는 여간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초, 모교의 명망 있는 교수 한 분이 정년퇴직 후, 퇴직금으로 그 무렵 생겨난 실버타운에 들어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점차 그런 얘기를 많이 듣게 되고, 해마다 성탄예배 후 학생회 대표와 헌금을 가지고 양로원을 방문해 보면 수용시설이 비좁았다.
며칠 전, 한 모임에 갔더니 제3공화국 시절에 장관을 지낸 한 분의 근황이 화제가 되었다. 그분은 재임 때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최장수 장관의 영예를 누릴 정도로 능력과 청렴성이 돋보이는 분이었는데, 여든이 넘은 요즘은 독거노인 아파트에서 쓸쓸히 노후를 보낸 바, 당신의 초라한 몰골을 보이지 않고자 여간해서 면회를 허락지 않는다고 했다.
수십 년간 교장을 지낸 한 분도 혼자 지내다가 외롭게 숨을 거둔 바, 친지들도 돌아가신 정확한 날짜도 몰랐다고 했다. 이제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뉴스에도 오르지 않을 정도로 우리 언저리에 흔한 일이 되었다.
그 동안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인권이 늘어나고, 문화수준이 높아진 반면에, 대가족제도에서 소가족, 핵가족으로 전통의 우리 가족제도가 허물어지고 점차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노령화 사회의 대안
농협 앞에서 횡성행 시내버스를 타자 승객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요기를 하고자 횡성에 내려 시가지를 걸어도 온통 노인이요, 자장면 집에 들러 점심을 먹는데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횡성에서 아내 차를 타고 원주로 가면서도 도로가를 걸어가는 이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시골만 그런 게 아니라 도시의 공원도,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이도 노인들이 엄청 많다.
이런 세태에 의학계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150세까지 늘인다고 하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만일 지금과 같은 세태가 개선되지 않고 무작정 사람의 수명만 연장되면,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로 큰 환란이 될 거라는 예감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인구의 노령화가 큰 문제이고, 점차 그 노령화가 가속되어 더욱 심각할 거라고 사회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령화 사회에 대안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노인 연령도 상향조정해야 하고, 노인들의 경제 활동도 높아져야 한다. 이는 노인층도 사회도 다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다.
노인들도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 하고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사회는 그런 노인들에게 알맞은 일감을 줘야 한다.
지난해 일본을 두 차례 기행하면서 살핀 바, 노인들의 경제 활동이 두드러졌다. 이른 아침 배에서 부두로 상륙하자 복도에서 여객을 맞이하면서 친절히 인사하는 이도, 핸들을 잡은 기사도, 자기 고장을 친절히 안내하는 이도, 명승고적에서 입장권을 판매하거나 표를 받으면서 안내하는 이도 모두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즐겁게 일하며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 손님의 처지에서는 연륜이 쌓인 그들의 일에 신뢰감이 갔다.
우리 노인들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환갑을 지낸 나이에 무슨…" "이 나이에 무슨 그런 막일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사회는 힘든 일은 젊은이에게, 쉬운 일은 노인에게 맡기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젊은이조차 일감이 없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요즘 세상에 노인 몫까지 챙길 수 있으랴.
프랑스의 한 인류학자가 우리나라에 찾아와서 경남 어느 시골에 삼대가 사는 대가족의 가정에서 사흘을 머물고 돌아가면서 "앞으로 서구가 한국에서 수입할 것은 한국의 대가족제도다"라고 하였다는데, 그들이 극찬한 우리의 가족제도를 우리 스스로 구시대의 인습인 양 팽개치고 있다.
이 세상 사람은 언젠가 모두 노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