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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이 4대 개혁입법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위헌론과 관련해 글을 보내왔다. 최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이전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칼럼리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최 의원은 이번 글을 시작으로 시민기자로서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자 주

▲ '4대 악법(국가보안법 개폐, 과거사청산법,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저지를 위한 국민행동대회`가 국민행동본부 주최로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앞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지난 10월 15일 '국가보안법 행복한 장례식' 행사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300여명의 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누군가 "위헌이다!" 이렇게 소리치면 금세 위헌논란에 휩싸이고 마는 시대이다. 헌법에 대한 정직한 이해없이 극히 이기적이고 편협한 헌법해석과 정치적 왜곡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 시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군화발로 짓밟았던 사람들,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헌법수호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그들은 참여정부의 정책을 놓고 이번엔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이라며 위헌을 이야기한다.

관습헌법 이론을 찾아낸 우리의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0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이렇게 간접 정의했다. 그대로 옮겨보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 단체의 일인독재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 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재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0. 4. 2. 89헌가 113)"

(법률가들의 문장이란 대개 이렇다. 한참을 읽어야 가까스로 어디에다 쉼표를 붙여야 할지 감이 잡힌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일인지배와 일당독재가 바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침해'이다. 반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보장'은 다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 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말하는 것으로, 좀더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등이 되는 것이다.

이런 헌재의 결정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자. 누가 우리 헌법 제1조가 정한 '민주공화국'을 짓밟았고 그 핵심원리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했는가를. 당연히 군사정권, 유신독재정권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그 시절 헌법위반을 한번도 외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인사들이 지금 참여정부의 정책을 놓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다며 위헌을 이야기한다.

누가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을 짓밟았는가

▲ 지난 9월 23일 오후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가보안법을 지켜야 한다"며 5분 발언을 하던 도중 단상에서 쓰러졌다. 김용갑 의원이 쓰러지자, 국회 직원과 동료의원들이 부축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과 일부 인사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들이 몽땅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개혁입법이 아니라 개혁을 가장한 악법이고 국민분열법이라는 것이다.

먼저 국가보안법을 보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는 11월 11일자 공식문건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방어적 민주주의에 입각해 있다, 헌법의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확립에 있고 이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방어 장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헌법에 내재된 정신이다, 국가보안법의 이론적 기초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체제방어 장치인 국가보안법을 동등한 수준의 대안마련 없이 전면 폐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헌법정신을 침해한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맞다! 방어적 민주주의 정신은 우리 헌법 정신이다. 그래서 제8조는 위헌 정당에 대해서는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는 해산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헌법이 정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아직까지 이런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서울특별시가 공화국을 선포해도 처벌할 수 없다고 선동한다. 이것이야말로 명백한 선동이다. 형법상 내란죄로 200% 처벌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공산당이 생겨나고 금방 공산정권이 수립될 것이라고 선동한다. 이것 또한 명백한 왜곡이다. 공산당은 우리 헌법이 이미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어적 민주주의가 국가보안법의 이론적 기초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의 이론적 기초는 두말할 것 없이 민주공화국, 즉 민주공화국의 기본질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있다. 법치주의를 침해하는 자,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자,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정신에 있다. 역으로 법치주의가 실현되고 인간의 기본권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국가보안법의 본래 정신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국가보안법이 기본권 보장은커녕 도리어 침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헌재도 악법은 법이 아니라고 최근에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하지 않았던가(그런 점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가 위헌이 아니라는 헌재의 결정이나 대법원의 판단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UN도 노래를 부르고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도 노래한다.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그렇다.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이런 자유를 넘어서 위험한 음모나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어 우리가 우려할만한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방어적 민주주의'가 국가보안법의 이론적 기초? 천만의 말씀

▲ 지난 9월 30일 오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상임운영회의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강경입장을 밝힌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둘째, 역시 한나라당은 "여권의 과거사 규명방식은 국가정통성을 부정하고 진상규명작업에 정파성이 개입되어 정치적 악용 소지가 크다"며 사실상 위헌을 주장한다(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4대 국민분열법으로 무엇을 노리나?>)

우리 헌재는 헌법전문의 첫 문장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서 수도 서울의 관습을 찾아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장은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진다.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선언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조선총독부와 만주군대의 전통을 계승할 것인가. 이승만 독재정권이나 박정희 군사정권의 이념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 항거한 4·19민주정신을 계승할 것인가.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의 사명"에 입각할 것인가, 아니면 조국의 수구보수와 흡수통일의 사명에 입각할 것인가. 열린우리당의 과거사 규명 방식이 결코 위헌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헌법전문이 말해준다.

임정의 법통을 계승할 것인가, 조선총독부를 계승할 것인가

셋째,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교육현장을 '이념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크"며 "위헌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이다.

교육은 시민의 기본권리이자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다른 권리와는 달리 권리적 성격과 의무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을 교육문제 해석에 있어서만큼은 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의 공공성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권리라고만 해석하면 독립성·자율성이 강조되겠지만, 의무라고 해석하면 당연히 공공성이나 중립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무가 아닌 숲을 지향하는 우리 헌법정신이다.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은 이런 기본정신에 충실한다. 교육의 자주성, 존중한다. 그리고 존중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 따져보자.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교사인가, 아니면 학부모인가, 아니면 학생인가, 아니면 동문들인가.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가장 위험한 행위는 잘못된 교육관을 가진 극히 일부분의 설립자 혹은 그 친인척들로부터 행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니던가.

투명한 기업인에게 사외이사제의 도입은 투명성을 강화시켜 기업의 가치를 높였을 뿐 결코 족쇄가 아니었다. 하지만 불투명한 기업인에게는 당연히 규제였을 것이다. 이번 사립학교법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조차도 개방성과 투명성이 강조되고 사외자원의 사내투입이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다.

국민주권은 꼭 정치판에서만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각분야의 다양한 차원에서 때로는 소비자주권으로, 때로는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로, 때로는 주민참여로, 때로는 재판배심관 참여로, 때로는 국정에의 국민참여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우리 헌법이 정한 국민주권에 의한 국민참여의 정신이 실천되는 바인데, 도대체 왜 사립학교법 개정이 위헌이라고 말할까? 아무래도 서로 다른 나라의 헌법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될 때가 있다.

국민주권의 실현은 교육분야에도 예외가 아니다

▲ 지난 10월 19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보안법 폐지 및 형법보완 등 개혁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넷째, "언론관계법은 위헌적 규제를 통한 '비판언론 옥죄기'이"며 "반시장 정책이며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반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이 글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자신들 스스로 "5공시절의 언론기본법을 연상시킬 정도"라고 말한다. 5공 시절의 언론기본법이 어떠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위헌적 규제였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신을 과거사 청산에도 동시에 적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헌법 제21조 3항은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했다. 언론사가 회사인가. 그렇긴 하다. 그렇지만 일반상품을 제조해서 판매하는 회사라면 우리 헌법은 기본권 편에 이런 조항을 둘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굳이 헌법 제23조에 언론 출판의 자유를 명시할 이유도 없었고 언론 출판의 공공성이나 타인의 명예훼손 금지를 헌법에 규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기능보장을 이야기 했고 법률의 근거조항을 두었고 공공성과 시민의 피해배상조항을 두었다.

권력의 독점은 가장 위험하다. 일반상품의 독점도 위험하다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이다. 하물며 언론의 독점, 여론의 독점, 시선의 독점, 주장의 독점, 사상의 독점이야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는가. 여론의 다양성 보장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보장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일반상품에는 예외없이 10%의 부가가치세가 따라붙는다. 변호사 수임료와 같은 용역상품에도 부가가치세는 부과된다. 그런데 왜 신문에는 부가가치세를 물리지 않는 것일까. 언론기업의 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증거로 이해되길 바란다.

헌법 23조를 둔 이유

▲ 지난 10월 19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소속 회원들이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국보법 즉각 폐지를 요구하며 대공분실 담벼락 철조망에 보라색 리본을 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IMF를 통해 우리 경제에는 타율적 개혁이 강요되었다. 아직은 미진한 부분도 있겠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글로벌스탠더드에 걸맞는 개혁이 이루어지고 일정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그간의 반독재 인권투쟁 및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정권 창출 및 대선자금수사를 통해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민주화를 담보해냈다. 문화의 영역에서는 국민의 정부 시절 검열철폐와 문화시장개방을 통해 역시 자생력과 일정한 수준을 이룩해냈다(지난해 말 대종상 시상식에서 신상옥 감독이 오늘의 한국영화 진흥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있었다고 특별히 감사를 표현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 최재천 의원
우리 사회의 핵심영역이 이렇듯 일정한 개혁과 진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결코 부끄럽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사회 각 영역에서 이러한 성과들이 구체적으로 파급되고 헌법정신들이 사회 각 영역에서 실현되며, 인권영역에서도 글로벌스탠더드와 같은 리걸스탠더드가 제대로 지켜지는 일이다.

구조적 측면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개혁과 구조조정은 이루어졌다. 남아 있는 것은 사회 각 영역 구석구석에서 이러한 작업들이 실천하는 일이다.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 입법과 각종 민생 개혁 입법의 참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고 이는 헌법위반이 아닌 헌법에 좀더 충실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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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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