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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예수에게 열광하는 군중들. 예수가 '슈퍼스타'화 하는 상징적인 장면.
<호산나> 예수에게 열광하는 군중들. 예수가 '슈퍼스타'화 하는 상징적인 장면. ⓒ 설 앤 컴퍼니
유명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수퍼스타')가 지난 18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예수의 죽음 전 7일간의 이야기"란 익히 아는 내용 외에 이 뮤지컬에 대해 새삼스레 새로 말할 것은 없다.

꼭 한 마디 덧붙인다면 '1971년 브로드웨이 초연이래 저작권자 RUG(엔터테인먼트 기업 'The Really Useful Group'의 약자. 원작자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프로덕션)의 승인 아래 원작대로(원작에 매우 충실하게) 올리는 국내 첫 무대'라는 것뿐.

예수는 슈퍼스타

'원작에 매우 충실하게'라는 필자의 단서는 저작권자의 승인하에 기획자 설도윤의 부분적인 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의 기획자인 '설 앤 컴퍼니'의 설도윤 대표는 몇 군데 개작 부분에 대해 RUG로부터 '아주 좋다'는 코멘트를 받았다는데 우연히도 그 개작 부분은 필자가 공연을 보면서 주목했던 부분과 일치했다. 필자가 그렇게 느꼈다면 약간이라도 예민한 관객도 역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  유다와 마리아와 예수의 갈등은 동시대 젊은이의 갈등으로 그려진다.
<참으로 이상한 일> 유다와 마리아와 예수의 갈등은 동시대 젊은이의 갈등으로 그려진다. ⓒ 설 앤 컴퍼니
개작 부분 중에, 유다의 목을 맨 줄이 툭 떨어지고(유다의 이미지가 툭 떨어지고), 늘어졌던 그 줄에 체포된 예수가 손목이 묶인 채 올라오는 장면은, 조명의 순간 암전으로 두 장면을 오버랩시킨 기술적 센스가 좋다. 그러나 기술적 오버랩이 느낌의 전부라면 그저 진행상의 자잘한 테크닉으로 끝났을 것이다.

예수와 유다를 절대자와 제자(배신자)가 아니라 공동의 갈등 범위에서 대립하는 젊은이로 그린 이 장면은 이 작품 파격 구도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유다의 죽음 앞에서 두 캐릭터를 극적으로 오버랩시켜줌으로써 작품의 흐름에서 인상적인 전환 지점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에서 예수는 신격이 아닌 인격의 '슈퍼스타'일 뿐이다.

이 장면 처리는 원작자도 착안치 못했을 것으로 아마 1999년 브로드웨이 새 버전에 새롭게 가미되어 원작자도 앞으로의 공연마다 최신 버전으로 올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 외에 마리아가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부르는 장면의 동선 유도, 세트 양쪽 벽이 내려오면서 층간 무대처럼 사용하는 세트 착상, 새 버전에서 도입된 혼돈을 암시하는 시장 장면에서 예수가 총을 빼앗아 난사하는 등 부분 개작을 저작권자가 흔쾌히 받아들였다한다.

이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이후 한국의 제작자와 관객의 수준을 RUG측에서 높이 자리매김한 일종의 성과로 본다는 게 설 대표의 조심스런 진단이다. 제작자로서 설도윤 대표가 자신감에 찬 그런 자기 평가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 이 작품을 본 필자의 느낌이다.

헤롯(최주봉)의 노래.
헤롯(최주봉)의 노래. ⓒ 설 앤 컴퍼니
때론 무시해도 좋을 것 같은 '무대 경력'이라는 무기는 큰 무대일수록 진가를 발휘하여 큰 나무그늘 같은 편안함을 동료 연기자들에게 제공한다. 더블 캐스팅으로 헤롯을 맡은 최주봉의 중후함이 그의 출연 횟수와 상관없이 공연기간 내내 무대의 중심을 잡아주긴 할 것이다.

그러나 박완규(예수 역), JK 김동욱(유다 역), 이연경(막달라 마리아 역) 등 뮤지컬 신인부대를 지휘하여 무대라는 전쟁터에 '수퍼스타'를 출전시키는 연출자의 조바심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마 빌라도 역을 맡아 저음으로 무대를 휘감는 김법래의 묵직함이 연출자며 무대 위 연기자들에겐 "기대고 비빌 언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본 것은 이 작품의 세종문화회관 네 번째 무대이다. 수원에서 올렸던 삼일간의 공연(트라이 아웃)으로 기본 검증을 무사히 마쳐서 그런지 무대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었다. 예수와 유다의 노래는 음성의 파격까지 요구하는 원작의 틀을 의식해서 그랬는지 샤우트 창법의 열기가 너무 높이 올라 노래가 작품의 사진틀에서 아슬아슬하게 튀어나올 뻔도 했지만 대체로 원작의 틀에 충실했다.

공연 직후의 박완규. 아직 작품에서 깨어나지 않은 예수의 얼굴이다.
공연 직후의 박완규. 아직 작품에서 깨어나지 않은 예수의 얼굴이다. ⓒ 곽교신
예수 역의 박완규는 변형되어 해석되는 예수가 크리스천으로서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원작의 파격도 인간적인 따뜻함은 변형되지 않아서 그 해석이 기독교의 본질과 다르진 않다고 생각한단다. 이는 이 작품을 보는 기독교계의 대체적인 입장과 같다.

물리적 발성 한계의 도전으로도 보이는 샤우트 창법은 목청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하기에 가수로서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뮤지컬 '수퍼스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음성이미지다. 박완규는 거의 폭발 수준의 샤우트 창법으로 메시지를 내지른다.

유다 역의 JK 김동욱도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작품을 떠받친다는 평인데 무대 경력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 '가수 JK 김동욱'에서 '연기자 JK 김동욱'으로의 무난한 변신을 가능케 하는 큰 바탕일 게다.

번역 뮤지컬을 관람할 때 귀에 거치적거리는 것 중의 하나인 어색한 발음 연결이 이번엔 거의 귀에 잡히지 않아 귀가 부드럽다. 훤히 아는 내용이어서 가사가 다 들리는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자음 모음의 음절 연결이 귀에 리듬감을 돋운다. 번역된 한글 음절의 청각적 불연속성에 노래의 리듬감이 끊기면서 청각 이미지를 끊고 넘어가는 불쾌감이 이번 작품엔 거의 없다.

마리아 이연경, 도박이 대박으로

분장실의 이연경. 이번 무대가 이연경이라는 신인을 발굴한 것은 큰 성과다.
분장실의 이연경. 이번 무대가 이연경이라는 신인을 발굴한 것은 큰 성과다. ⓒ 곽교신
필자는 무대를 잔잔히 아우르는 한 연기자에게 눈이 꽂혔다. 엄격히는 한 배우의 노래에 주목했다.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불려진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누가 부르느냐, 즉 마리아 역이 누구인가는 '수퍼스타' 공연 때마다 궁금한 주요 화두 중 하나다.

마리아 역의 이연경은 차분한 해석과 표현으로 그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사랑하는 창녀 출신의 마리아를 소화하느라 나름의 고민이 많았다"는 이연경은 '무대의 맛' 정도를 겨우 아는, 실질적으로 이 무대가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신인 배우이다.

오디션에서 단연 눈을 끌었다고는 하나 무대에선 불안한 끊김이 보이기도 한다. 캐스팅 과정에서 제작진이 던진 최대의 도박은 아마 이연경의 캐스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눈엔 그 도박은 서서히 '잭팟'의 조짐을 보인다.

인간 예수를 사랑하는 마리아.
인간 예수를 사랑하는 마리아. ⓒ 설 앤 컴퍼니
'수퍼스타'에서의 마리아는 인간 예수를 향한 사랑의 격정을 창녀 출신이라는 잠재의식으로 덮어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이중 캐릭터다. 이연경은 깜찍하게도 이 복합 이미지를 타고난 포근한 음성에 실어 파스텔 톤으로 잔잔히 해석했다. 그리고 그 파스텔 톤은 록 바탕의 다소 격정적인 이 뮤지컬에서 뜻밖에 잘 융화한다. 감정의 절제를 표현해내려는 호흡의 세밀하고 능숙한 배분도 놀랍다.

제법 귀가 예리하다고 자부하는 필자는 이렇게 깊은 감성과 절묘한 호흡의 굴곡이 실린, 그것도 우리 말로 부른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처음 듣는다.

우리가 매운 고추를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을 보고 서양인들은 기겁을 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라는 양주를 마시며 이연경은 청양고추에 매운 고추장을 찍어 안주로 삼았다. 그러나 그 맛은 맵거나 톡 쏘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이연경의 "I Don't know how to love him"에 좋은 의미의 기겁을 할 것이다.

도저히 신인의 실력으로 믿어지지 않는다고 다그치듯(?) 묻자 가톨릭 음대에서 성악으로 음감을 다졌을 뿐이고, 고등학교 때 교내 밴드에서 보컬을 맡은 것과 어렸을 때 말보다 노래를 먼저 배웠다고 할 만큼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 외에 내세울 경력은 없다고 진술서(?) 쓰듯 말하며 미안해 한다.

이연경에게 그 파스텔 톤의 해석이 본인의 의견이냐 연출자의 주문이냐를 솔직하게 답할 것을 전제로 4~5번 거듭 물었다. 그녀는 한사코 "연출 선생님의 세밀하신 지도"로 공을 돌린다. 또 힘든 환경에서도 지금까지 밀어주신 부모님께도 너무 감사드린다며 눈이 붉어진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던 모든 가늠자의 기본은 사람의 됨됨이다. 필자는 음성만큼 고운 심성을 갖춘 신인 뮤지컬 배우 이연경의 대성을 기대한다.

넉넉해진 우리 사회의 문화 에너지

1971년 브로드웨이 초연물이 왜 한국에서는 2004년에서야 "원작 그대로"를 무대에 올렸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설도윤 대표는 '원작의 충격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킬 사회적 역량'을 조심스레 거론한다. 이 말은 배해일 연출자도 같은 의견으로 내놓았다. 이른바 이질적인 문화 충격을 견뎌낼 문화 에너지의 사회적 축적력이라는 측면에서 예술가로서의 순수한 염려다.

하긴 1971년 브로드웨이 초연 때 미국 내에서도 사회적 의견 충돌이 많았다. 우린 아직 방송 내용 일부분을 가지고도 여의도가 데모대로 뒤덮이는 사회에 산다. 충분히 예상되는 반발을 일개 제작자의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마당에 원작을 발가벗겨 올리려는 시도는 아예 엄두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예수와 반라의 무희가 한 무대에서 록을 부르며 섹스 어필한 동작으로 5일째 신나게 어우러지는데도 세종문화회관 앞마당에 데모대가 나타나지 않으니, 이젠 우리 사회의 문화 에너지는 넉넉히 축적되었다고 보아도 좋은 걸까.

주마가편(走馬加鞭) 격으로 느낌이 좋은 작품엔 관객의 욕심도 더 많아진다. 안개도 하나의 소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고 가는 스모그가 시종일관 동일한 배경이미지를 강요하면서 관객 머리 속의 장면 배분을 방해한다.

비슷비슷한 노래가 엄청 많아 가사와 제목이 온통 뒤섞이는 트로트 가요처럼 뮤지컬 전 장면이 머리 속에서 뒤섞이는데 안개가 주범이다. 눈도 피곤하다. 선택의 여지없이 멋대로 흐르며 시청자의 사고까지 고정하는 TV 자막이 연상된다.

또 군무장면에서 주인공 외 등장인물의 전체적인 동선을 치밀히 나누는 공간의 조절이 아쉽다.

그러나 이런 몇몇 군데의 아쉬움은 '풍부한 음악적 완성도'라는 포만감으로 채워져 자리를 뜨는 관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덮는다. 2004 코리아버전(필자의 표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또 하나의 반짝이는 뮤지컬 무대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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