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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던 거대 기업과의 법정투쟁을 승리로 이끌어낸 공무원의 집념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더욱이 1심 재판에서 현대자동차(충남 아산시 인주면 소재)가 ‘전부승소’한 재판을 항소심에서 뒤집은 것이어서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산시청 지적과에서 지적·토지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고흥철(46·지방지적주사보)씨가 화제의 주인공.
아산시는 현대자동차와 벌인 개발부담금 부과에 따른 행정소송에서 6년여 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 끝에 지난달 8일 대전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이 행정소송에서 거대기업 현대를 상대로 혼자 외로이 싸우며 승리를 이끌어낸 주인공이 고씨다.
소송의 발단은 지난 97년 1월13일 ‘개발이익 환수법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이전까지는 지방산업단지에 업체를 건설할 경우 개발이익의 50%를 개발부담금으로 내게 돼 있었다. 그러나 법률이 개정돼 수도권 외 지역 산업단지에 업체를 건립할 경우 개발부담금을 면제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자 아산시가 지난 98년 10월8일 부과한 개발부담금 납부를 현대자동차가 거부한 것. 현대자동차는 준공일이 97년 12월24일임을 들어 이전 법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산시는 현대가 준공일 이전 사용한 일부 면적에 대해서는 이전 법률을 적용, 개발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며 총 부지 82만6264㎡ 중 15만㎡의 부지사용에 대한 금액 102억원을 부과했다.
현대자동차는 부당함을 내세워 불복, 99년 2월1일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7월4일 1심에서 ‘현대 전부승소’ 판결이 나오며 아산시가 패했다. 아산시는 곧바로 항소(2000년 8월8일)했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결과를 회의적으로 봤다.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 개발부담금 분야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거물급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지정,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식의 부정적 견해가 높았다.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1심에서 패소판결이 나오자 직장동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동안 아산시가 행정소송 패소율이 높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시기라 부담감은 더욱 컸습니다.”
고씨는 꼭 이기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떠나 25년여간 공무원 생활을 해오며 갖고 있던 소신을 지키고, 만연돼 있는 공무원에 대한 신뢰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나긴 시간 동안 여유가 없었다. 항상 현대와의 소송이 고씨의 사생활을 옥죄고 있었다. 대법원 판례 및 사법논집 등을 구입해 적절한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방대한 변론서를 작성하는 등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결국 지난 10월8일 승소했다. 감격이었다. 막대한 변호사 수임비용 때문에 사실상 고씨 혼자 이번 소송을 책임져 오며 가진 심적 고생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고씨는 말한다. “곁에서 격려하며 힘을 실어주고 믿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고맙고요.”
상대측 변호사도 “공무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수행해 봤지만 이렇게 복잡한 대규모 사건을 공무원 혼자 훌륭히 수행하는 것을 처음 봤다”고 고씨의 능력을 높이 인정했다.
고씨는 지난 9일 현대자동차에 개발부담금을 부과, 징수했다. 이 중 52억원이 아산시에 귀속돼 세수증대에도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게다가 이번 소송에서 승소한 것 때문에 대전고등검찰청장으로부터 표창도 받는 겹경사를 맞았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확고한 소신을 갖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짐을 덜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당장은 제일 기쁘고요….(웃음)”
현대는 이와 관련해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현대의 상고와 관련 고씨는 대법원에서 이번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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