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준수가 입원한 뒤로는 회식이나 모임이 있어도 2차 노래방은 가지 않습니다. 병상에 아이가 있는데 노래방에서 흥겹게 노래 부를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내 심경을 담은 노래를 부르다보면 눈물이 쏟아져서 분위기를 다 망칠 거 같아서입니다.

회식을 마친 뒤 다른 사람들이 노래방으로 가는 걸 보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 집을 향해 걸어오면서 혼자 노래를 부릅니다. 대학 시절 많이 부르던 '사노라면'이란 노래입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이기에 눈물이 나도 괜찮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겠지
흐린 날도 날이 개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준수가 요즘 많이 하는 운동이 휠체어를 타고 경사로를 오르는 것입니다. 세브란스 병원 재활병동 1층부터 7층까지 제 힘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힘겨워하더니 이제는 연거푸 두 번을 올라갈 정도로 팔에 힘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경사로 오르는 운동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준수가 오줌을 눌 수 있다고 좋아한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줌을 누는 게 아니라 싸는 거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방광에 가득 찬 오줌이 흘러나오는 걸 준수가 느끼는 것일 뿐이지요.

흘러나오는 오줌을 멈추거나 늦출 힘은 준수에게 없습니다. 경사로를 낑낑대고 오르다가도 오줌이 나올 기미만 보이면 뒤따르는 엄마를 부릅니다. 이제는 이력이 붙어 휠체어 뒤에 플라스틱 병을 싣고 다니다가 재빨리 준수의 고추에 가져다 대어 위기를 모면합니다.

하지만 경사로를 오르던 중 엄마가 전화를 받고 있거나 다른 데 관심을 쏟다 미처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면 그냥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일이 있다보니 이젠 준수 녀석은 오줌을 싸면 낄낄대고 웃으며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고 합니다. 열세 살의 준수가 요즘 사는 모습입니다.

다리의 움직임은 미세할 정도로만 좋아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12월 말까지 계획되어 있는 준수의 치료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사도 확신을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희망이란 게 때로는 엄청난 중압감이 될 때도 있다는 걸 요즈음 느끼면서 삽니다. 높은 산을 오르다보면 너무나 힘이 들어 정상이 얼마쯤 남았는지 묻곤 합니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얘기에 힘을 얻어 걸어보지만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은 보이지 않고 고통만 가중되는 걸 경험한 적이 많습니다.

희망이란 걸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의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준수에게도 그런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노래 가사처럼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올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관련
기사
"준수야, 발가락 좀 움직여 보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