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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잽이를 마친 얼레빗에 개구리 세마리가 연잎 위에서 놀고 있다.
살잽이를 마친 얼레빗에 개구리 세마리가 연잎 위에서 놀고 있다. ⓒ 윤형권
빗 만드는 일로 6대째 내려오는 국내 유일의 '얼레빗 장인'이 있다.

계룡산 갑사 근처에 사는 이상근(48) 명인은 연산의 대추나무 때문에 갑사로 이사온 지 25년이 넘었다. 이 명인은 사대부 집안에서 쓰는 공예품을 만들던 장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국가지정 민족고유기능 전승자(2003년)'인 이 명인은 조상 대대로 얼레빗을 만들던 집안이었다.

지난 29일 오전, 이 명인을 계룡산 아래 중장리 이 명인의 작업장에서 만나 그 간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레빗 명인 이상근 선생
얼레빗 명인 이상근 선생 ⓒ 윤형권
5대와 4대 조부께서 공조참의와 공조참판을 지내셨고, 증조부와 조부께서 공조선공감을 지낸 분으로 대대로 공예품을 만드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명인은 경북 예천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께서 목재를 따라 강원도 태백으로 이사를 해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태백에서 생활했다. 4형제 중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을 안 것은 초등학교 때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강원도 태백에 살았는데, 선친의 작업장에서 손수 총과 칼 등을 만들어 동네 친구들에게 과자와 사탕 등으로 바꿔 먹기도 했습니다. 선친께서는 제가 목공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선조들께서는 공예품을 만드는 일로 벼슬까지 한 집안이었지만 선친 때는 공예품을 만드는 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재주가 있는 것을 아시고는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선친 일을 도우며 어깨 너머로 나무 다루는 일을 익혔습니다.”

이 명인은 교사가 되기를 원한 선친 뜻을 거스를 수 없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북 봉화의 신광여상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40여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분필 대신 톱과 대패를 잡았다. 이때부터 이 명인은 가문의 핏줄에 흐르는 '장이의 피'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여기고 전국을 떠돌며 공방에서 일을 했다.

선친은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이 명인이 1983년경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 얼레빗을 출품하여 상을 받자 “빗으로도 국가에서 상을 주냐?”며 타고난 재능과 가문의 핏줄에 흐르는 운명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백 마리의 학이 새겨진 얼레빗. 하나 만드는데 10여일이 걸린다. 이 작품은 하나의 나무로 만들었다.
백 마리의 학이 새겨진 얼레빗. 하나 만드는데 10여일이 걸린다. 이 작품은 하나의 나무로 만들었다. ⓒ 윤형권
이 명인 가문의 얼레빗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가장 큰 희생을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1895년(고종 32년), 김홍집 내각은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다'는 명분을 앞세워 고종의 조칙으로 단발령을 내렸다. 단발령은 일제의 강압에 의한 우리 민족 문화의 뿌리를 없애려는 불순한 의도였다. 유교문화의 상징인 상투를 자르게 하여 전통문화의 뿌리를 흔들어놓으려는 계책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의 유림과 백성들이 일제에 저항하는 일이 거세어지고 급기야는 을미사변과 함께 의병활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면암 최익현 선생이 '내 목은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는 자르지 못한다'며 완강하게 저항한 것은 백성들과 유림의 대표적인 사례다.

단발령을 계기로 상투가 없어지고, 한복이 양복으로 바뀌는 복장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 전통문화의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명인 가문의 얼레빗은 상투가 잘려지고 짧은 머리가 되면서 백성들과 선비들의 품에서 떠났다.

“단발령은 5천년 전통문화를 일거에 무너뜨린 일제의 교묘한 계책이었습니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머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상들께서는 머리카락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지요.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태웠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를 정갈하게 빗는 것을 일상생활로 여겼습니다. 성인식 때 머리를 올리는 풍습은 그 만큼 머리와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전통입니다.”

연잎 속에서 노는 개구리들. 조각을 다 새기고 동백기름을 바른 것이다.
연잎 속에서 노는 개구리들. 조각을 다 새기고 동백기름을 바른 것이다. ⓒ 윤형권
“또, 우리 결혼 풍습에는 청혼 때 남자 집에서 사주함에 빗을 넣어 보냅니다. 여자 집안에서 이 빗을 받으면 결혼을 승낙하는 허혼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자가 받은 그 빗으로 머리를 정갈하게 하고 신랑을 기다린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5천년 유구한 문화민족이라고 말로만 떠들지, 우리 전통문화를 전승시키려는 노력을 제대로 합니까? 단오 때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모습이 TV에 나옵니다. 머리를 감고는 족보도 없는 플라스틱 빗으로 박박 빗어댑니다.”

“우리 전통문화를 일상생활로 회복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알게는 해야지요. 교육이 문젭니다. 영어 수학 많이 알면 그 사람의 사람됨이 나아집니까? 본디 뿌리를 알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하며 이 명인은 우리 전통문화의 흐트러짐에 대해 못마땅하게 말했다.

“우리 빗은 크게 참빗과 얼레빗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얼레빗의 종류는 다시 용도와 모양에 따라 6가지로 구분합니다. 긴 머리를 빗을 때 반달빗, 상투를 손질할 때는 상투빗, 여자가 머리 한가운데 가르마를 탈 때는 가르마빗, 귀밑머리를 정리할 때는 면빗, 빗살이 한쪽은 성글고 한쪽은 촘촘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음양소, 망건을 썼을 때 살짝 삐쳐 나온 머리카락을 정리할 때는 살적밀이로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머리를 손질하는데도 이렇게 다양한 빗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정성을 들인다는 말입니다.”

다양한 얼레빗
다양한 얼레빗 ⓒ 윤형권
이 명인은 머리를 손질할 때 쓰는 얼레빗을 그냥 단순한 장신구로만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이 들어있고, 그 속에는 지혜가 담겨져 있으며 예술적인 안목이 배어있는 삶의 벗이자, 인생이라는 여행 속에서 만난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

<고함>

내 본시 인간이 말하는 대추나무라 젊어 왕성할 때는 대추 많이 손끝에 달았는데, 근 백여 년 살다보니 기력만 쇠진하여 대추 몇 톨 안 열리니, 한 심술이 촉새입을 하고 다가와 톱으로 내 허리춤을 동강 내더라 - 거참! 요행. 다행. 아궁이 신세 면하는가 -

저 인간에게 등덜미를 잡혀 이 몸 이리 켜고, 저리로 마름질하며 분주히 살잽이톱을 놀리누나. 어허라 - 몸뚱이는 하나요, 팔다리는 수십이라 이놈 장인(匠人) 고이얀 심술보소 수족을 수십개나 만들더니 말쑥한 몸뚱이는 이리 뜯고 저리 돌리고 이 쪽 저쪽 도려내더니, 에고 에고 내 본래모습 간곳없어 우사스런 모습이나 아닐런지, 코를 뚫어 끈으로 동여매니 영락없는 얼레빗 자태구나.

‘2002년 얼레빗 전’에 부쳐 - 이상근 씀


이 명인의 얼레빗은 이제 기교의 단계를 지나 완숙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 명인의 작품은 조각을 하지 않아 담백한 맛을 내는 서민적인 얼레빗과 사대부 집안에서 쓰던 조각을 새긴 얼레빗으로 나뉜다. 조각문양은 십장생, 연꽃, 포도, 인당문양, 사군자 등 전통문양을 따르고 있다.

이 명인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칼이 지나간 자리에는 연꽃이 피어나고 학이 살아서 나는 듯하다. 군더더기가 없이 단정하면서도 생명력이 있다. 최근 작품에는 개구리와 연꽃을 소재로 한 문양을 주로 하고 있다. 개구리들이 연잎에서 노는 모습이 마치 실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얼레빗이 형태는 비슷하나 똑같은 작품은 없다. 모든 작업을 손작업으로 한다.
얼레빗이 형태는 비슷하나 똑같은 작품은 없다. 모든 작업을 손작업으로 한다. ⓒ 윤형권
건양대학교 조소과 안의종(46) 교수는 이상근 명인의 작품세계에 대해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미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일상적인 자연을 소재로 하여 자연미를 살리고 있으며, 그의 내면적인 삶의 철학을 표출하고 있는 듯하다. 항상 옆에 두고 있어도 싫증나지 않고 거부감 없다. 또, 나무의 질감을 잘 살려 조형적인 맛도 있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룬 감칠맛 나는 작품이다”라며 그 작품세계가 매우 높은 경지에 있다고 평했다.

이 명인의 꿈은 공방과 전시장을 갖는 것이다. 이 명인의 뒤를 이을 제자가 다행히도 3명이나 있다. 그 중 한 명은 공주농고 3학년에 재학중인 막내아들이다. 7대째 이어나갈 핏줄도 확보한 셈이다.

이 명인은 그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보고 듣고 얻은 우리 산천의 느낌을 소재로 하여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삶의 질곡에서 묻어 나온 철학적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6대째 핏줄을 타고 흐르는 장인의 혼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손바닥만한 대추나무를 통해 '이상근 얼레빗'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얼레빗이 탄생하기까지

▲ 얼레빗을 만드는 과정과 도구
얼레빗은 생김새가 반달 모양처럼 생겨 월소(月梳)라고도 한다. 크기가 다양하며 빗살이 성글다(얼레: 촘촘하지 않고 성글다). 촘촘한 참빗과는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 얼레빗은 긴 머리 손질에 알맞으며 크기가 작은 것은 마무리 손질 때나 휴대용으로 이용하였다.

재질은 대부분 박달나무, 대나무, 소나무, 대추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명인은 80~100년 정도 된 대추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대추나무는 육질이 단단할뿐더러 색깔도 검붉어서 장신구로 사용하기에 좋다.

예전에는 제주도의 해송이나 유자나무로 얼레빗을 만들어 쓰면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는다 하여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해송을 구하기도 어렵고 유자나무도 종자가 개량되어 굵은 나무를 얻기가 쉽지 않아 대추나무를 주고 사용한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거북껍데기, 상아, 뿔, 은, 굵은 털 등으로 작게 만들어 무늬를 새기거나 칠을 하여 머리에 장식으로 꽂기도 하였다.

얼레빗을 만드는 과정은 80~100년 이상 되어 직경 10㎝ 정도 되는 목재(주로 대추나무)를 구해서 찌는 작업을 거친다.

① 목재를 두께 2~3㎝ 정도 되게 하여 손바닥만하게 자른다.
② 원하는 모양으로 본을 뜬다.
③ 톱날이 두개 달린 톱으로 빗살을 낸다.
④ 줄로 살잽이(빗살 다듬기)을 한다.
⑤ 조각과 장식을 올린다.
⑥ 매끄럽게 마감을 한다.
⑦ 동백기름이나 피마자유를 묻힌다.
⑧ 얼레빗 완성

조각이 없는 것은 하루에 40~50개, 조각이 있는 것은 하루 10여개를 만들 수 있고 특별한 것은 한 개 만드는데 10~30일 정도 걸리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상근 명인의 얼레빗 판매장은 공주 마곡사 경내에 있다. 가격은 작품에 따라 1만~수백만원 하는데, 보통 집에서 쓸 수 있는 것은 3~4만원이면 멋진 조각이 새겨진 얼레빗을 구할 수 있다 / 윤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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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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