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국회)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게 바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한 후 가장 크게 변한 모습 아닌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철야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같은 당 최순영 의원이 내뱉은 말이다. 권 의원은 지난 24일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된 공무원노조 간부가 자신의 경남 창원 사무실에서 연행되자 이를 항의하기 위해 29일부터 본청 앞에서 스티로폼에 모포를 깔고 앉아 노상에서 농성중이다.
늦은밤 농성장을 방문한 심상정 의원은 권영길 의원과 함께 "지난 6개월이 3년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민주노동당이 들어와서 기존 관습과 사사건건 부딪혔던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등의 말들을 나눴다.
11월 30일로 17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6개월을 채웠다. 지난 6개월간의 17대 국회를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진보정당으로서는 최초로 원내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의 6개월이 17대 국회의 변화상, 그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서민의 국회출입 이제 다반사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뒤 국회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모습은 의원 특권의 대폭 축소.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www.nanjoong.net)에 올린 칼럼에서 "민주노동당 보좌관들이 솔선수범해서 의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기 시작했고, 팻말을 떼어내기 전에 이미 의원 엘리베이터는 물건 배달온 노동자들도 아무렇게나 타는 '평등 엘리베이터'가 되어버렸다"고 평가한 바 있다.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은 "피감기관 예산으로 하는 상임위 회식에 대해 비판했더니 그 뒤에는 그런 식으로 안했다"며 "동료 의원들이나 공무원들에게서 '17대 국회가 많이 달라졌는데, 민주노동당 역할이 큰 것 같다'는 말들이 들린다"고 전했다.
17대 국회의 변화는 단순히 '파격적인 문화'에 그치지 않는다.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진보정당 원내진출의 가장 큰 성과로 "국회 바깥에서 머물던 진보의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국회에 전달했다"는 데에서 찾았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의제설정과 대안제시까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워크샵을 거쳐 결정하는 '참여국감'을 펼쳤다. 비정규직 관련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된 지난 28일, 양대노총 지도부는 위원회실에서 회의를 지켜보며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과 이후 전략을 상의하기도 했다.
사회단체나 이해당사자가 직접 국회 안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노동자 의원' 등원 6개월, 이제 국회 건물에서 노조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개원 초기 국회 경비가 점퍼 차림의 단 의원을 못 알아보고 출입을 제재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노동자뿐 아니라 골프장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학교급식법 제정을 요구하는 학부모와 학생 등 각종 사회현안의 이해당사자들도 그동안 국회 기자실을 찾아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나란히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다.
민주노동당의 힘은 국회 밖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3일 공무원노조 총파업 당시 민주노동당은 평당원들은 물론 당 지도부를 총동원해 집회를 엄호했다. 장애인단체와의 연대사업을 주로 맡고있는 공태윤 대외협력실 부장은 "(보건복지위에 현애자 의원이 있어서) 이동권보장법 제정운동에서도 거점이 생겼다"며 "(장애인집회에 나온) 경찰들이 알아서 조심하더라"고 덧붙였다.
거대 양당 "축구시합에도 진보정당 끼어야"
지난 6개월 동안 전원 초선인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의정활동 역량도 확연히 늘었다는 것이 원내의 중평이다. 심상정 의원은 "1년만 거치면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년도 의정활동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문명학 기획조정실장은 외평채 누적손실을 예로 들며 "이전까지는 현안들을 막연하게 제기해오다가 정부 문서를 접근할 수 있어 보다 정교하게 문제제기를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부대변인은 "의원실 보도자료만 해도 처음에는 기자들에게 '성명서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지금은 스스로 근거를 검증해 설득력있는 자료가 나온다"고 말했다.
10석의 한계는 여전하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양당의 대접도 확연히 달라졌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개혁공조', '야4당공조'를 추진하며 민주노동당에 '러브콜'을 보냈다. 양당 중심의 상임위원회 간사협의에 민주노동당이 참여할 경우 이같은 러브콜은 더욱 구체화된다.
최근 한일의원 축구시합에는 조승수 의원도 선수로 참가했는데 "일본에는 공산당도 있고 하니 우리도 진보정당 의원이 한 명쯤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차원에서 양당 의원들이 조 의원의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당내에는 민주노동당의 6개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문명학 실장은 "의원들이 원내에 빨리 적응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며 "보수 정치인들의 방식은 적응했을지 몰라도 진보정치인의 전형을 만들지는 못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김윤철 연구원은 "민주노동당의 사회경제 의제는 신문 한 귀퉁이에 나는 정도였고, 보수양당 의제를 바꾸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연구원은 "원내외가 기계적으로 결합되고 당원의 목소리가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며 "의원들만 가시화되고 당원들은 관객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 | 1에서 10까지 살펴보는 국회생활 | | | 노회찬 의원실 '호일파마' 보좌관의 의정일기 | | | |
| | ▲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보좌진은 17대 국회 개원을 맞아 지난 5월 31일 오전 국회 본청앞에서 `국민에게 드리는 감사와 다짐`을 발표했다. 단병호 의원이 등원소감을 말하던중 목이 메어 고개를 숙인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노회찬 의원실의 신민영 보좌관은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지난 9월부터 인턴보좌관 생활을 시작했다. 삐죽삐죽한 '호일파마'를 뒤로 질끈 묶고 귀걸이를 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신 보좌관은 이에 대해 "처음에는 국회 경비들이 출입을 막더니 이제 얼굴을 알아봐 출입증 없이도 들여보내준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난중일기>에서 "판사나 검사 혹은 변호사가 호일파마를 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분명 진보"라며 신 보좌관의 헤어스타일에 호감을 나타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신 보좌관은 "(호일파마를 하면) 머리가 풍성해보인다"며 "의원님이 빈약하시니까 (좋아하는 것 같다)"고 재치있는 답변을 했다.
다음은 최근 신 보좌관이 자신의 소속 지구당 게시판에 올린 국회 체험기. 1부터 10까지 숫자에 맞춰 쓴 독특한 형식이 눈에 띈다.
<1에서 10까지 살펴보는 국회생활>
1 - 필자가 국회에 나가기 시작(9월초)한 이후로, 국회에 출근 안 해본 날짜.
일요일도, 추석기간에도 계속 나갔다. 안 나간 하루도 평일에 미친척하고 전화끄고 놀러간 것이었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일이 수북하게 쌓여있어서....... 결국 새벽까지 일을 완성해야만 했었다.-_-;
2 - 국회법사위원회내 미칭놈 숫자.
한 놈은 이주노동자의 권리찾기 운동을 -> 반한운동 -> 테러세력순으로 연결시키는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었으며. 다른 한 놈은 시민운동을 '기생충'으로 규정짓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과연 누구를 기생충으로 생각할까?
3 - 최장 3일을 국회에서 먹고자고 한 적이 있다.
3일째 집에 돌아와 머리를 감았는데 마대걸레 빨 때 나오는 구정물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무척 놀랐다.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피감기관에서 자료를 잘 안준다는 거. '맛 좀 봐라!'라는 식으로 국감 하루 전에 주는 경우가 많다. (근데, 그렇게라도 주면 다행이다. 국감을 넘겨서 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4 - 노회찬의원 수면시간.
국회의원 정말 불쌍하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심하면 11시도 넘어서 끝나는 국정감사.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다음날 할 국정감사 내용 숙지 및 토론은 기본이고 그 외 국정감사와 별도로 돌아가는 국보법, 미군기지이전 등의 문제들, 언론과의 인터뷰, 아침 7시에 있는 의원단 회의, 이동시간, 국정감사에 대한 개인적 고민 시간 등을 빼면 남는 시간 정말 없다. 식사도 김밥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물론, 16대 X나라당 김X균 의원처럼 피감기관마다 다른 소리는 안 하고 '노무현 정권은 좌파정권이라는 말이 있던데, 기관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라는 소리만 한다면 의원생할 쉽겠지만도.)
5 - 내 평균 수면시간.
노 의원보다야 낫지만, 한참 부족하기만 하다. 한참 클 나이인데!!!(-_-;)
6 - 나는 6체의 환타지(쓸 내용이 없어서..ㅋㅋ)
7 - 비상시 국회의 출근시간이다.
비상시라 함은, 그날 국정감사에서 질의할 내용에 대해 의원이 숙지하고 있지 못한 상태-보통 보좌관이 전날까지 질의서를 완성하지 못하거나, 완성했더라도 전날 국정감사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의원과 충분하게 숙지를 못했을 때 발생한다. 보통 국정감사는 오전 9시부터 일정이 시작되는 바 2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마쳐야 하는 피말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만약, 그 시간안에 끝내지 못한다면? 국감내내 전화와 FAX를 주고 받는 사태가 벌어진다.(범민련??..-_-;)
8 - 의원을 제외한 의원실 직원 숫자.
그러나, 지금의 국회는 70년대 보좌관이 3명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 의원실이 무지하게 좁다. 사람이 찾아오면 의원실내 책상사이로 난 통로에 의자를 갖다놓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이 혹여 '푸대접을 받는다'라고 생각할까봐 미안하기만 하다)
9 - 심리적 출근시간.
의원실에 정해진 출근시간은 없다. 하지만 보통은 알아서 9시전후에 도착한다. 그 시간에 맞춰서 언론사, 피감기관,민원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10 - 꿈의 숫자.
10시에 퇴근해 보는게 소원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