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등산학교는 1992년 8월에 창립하여 강석호(경북산악연맹회장)교장과 홍기건(50)교육감을 중심으로 해마다 봄과 가을 시즌에 정규반을 모집하고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암벽반과 빙벽반도 운영하고 있다.
포항등산학교 정규반 21기는, 4차 실기실습인 종합등반에 참여해야만 비로소 등산학교 수료를 인정받게 된다. (이하는, 포항등산학교 정규반 21기생들의 종합등반 교육 동행 취재기이다.)
지난 27일 포항의 내연산 등반을 위해 일찌감치 도착한 교육생들은 잔뜩 꾸린 배낭을 식당 구석으로 줄지어 세워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이들은 담뱃불을 붙여 물고 배낭을 점검하기도 하고 화장실에 볼 일도 보고 아니면 더러는 몇 안 되는 여자 교육생들과 한가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도착한 강사들도 왔다는 인사도 제대로 할 시간 없이 최종 점검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교육감으로부터 등반계획과 변동 사항을 꼼꼼히 숙지한 강사들이 교육감 주위로 모여 지시를 받고 있다.
“교육생들은 조별로 집합하십시오. 이쪽부터 A조, B조, C조, D조 순서로 서시고 조장들은 앞으로 나오시고요. 자, 앞으로 5분에 걸쳐 마지막 조별 점검을 하시고 교육 신고를 한 후에 야간 종합등반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장님과 조장들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달빛이 마치 수은등처럼 밝아 헤드랜턴을 켜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잘 보였다. 오늘이 벌써 보름인가? 산 중에 달은 구름 한 점 없이 하염없이 밝기만 하다. B조는 출발부터가 서투르다. 등산로 초입을 그냥 지나치더니 몇 번이고 멈춰 서서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들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야간 종합등반은 등산학교에서 배우고 습득한 기술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총 동원하여 실제 산행에 인용하는 등산학교 수료의 최종 관문과도 같은 것이다. 목적지까지 교육생 스스로 판단하고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강사들은 조용히 뒤를 따를 뿐, 안전이나 결정적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간여할 수 없는 것이 야간 종합등반의 원칙이다. B조 조장은 초입부터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올라가도 길은 없다. 보이는 건 키만큼 자란 무성한 잡목뿐이다. “온 지가 얼마 됩니까, 여기가 맞잖아요. 여기가 이 길이라니까. 예 조장님. 하이 참 이 길이 맞다니깐, 참”, “일로 가자. 절로 위로 올라가면 된다. 나 따라와라. 맞다. 가자.” 분위기가 삭막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조장에게 고집 좀 그만 부리라는 불만의 소리도 나오자 난처해진 조장은 담배를 피워 물곤 심각한 고민에 빠져 들었다.
“한 대 핍시다. 강사 둘은 뒤에서 말이 없다. 찬바람에 식어가는 땀이 등 쪽으로 스며든다. B조는 초입을 잡은 지가 어디이고 언제부터 잘 못 되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잡목 사이에 앉아 하늘을 보니 보름달은 출발 전 보다 훨씬 더 밝아 있다.
능선을 잘못 잡으면 영 다른 길로 갈 참이다. 조원들 모두 헤드 랜턴 불빛을 지도 위에 비추고 나름대로 의견을 내보지만 신통치 않은 것 같다. 강사가 보다 못 해 한마디 거둔다.
“지금 현재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래서 지금 현재 위치가 여기 갈림길 그러니까 여기가 문수암 정상이잖아요. 갈림길에서 지금 여기가 이쯤 되니까 계곡으로 가지 말고 이쪽으로 능선을 타고 트레바스 해야 돼요.”
강사 말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일까?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자기들끼리 실랑이를 몇 번 하는 것 같더니 결국 강사가 말한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얼마를 걸었을까 앞서던 조장이 길이 있다고 소리친다.
배낭에 걸리는 잡목 가지가 없으니 한결 걷기가 편하다. 가빠른 오르막을 올랐으니 거리상으로 1/4를 왔지만 시간으로 계산하면 사실은 반절은 온 셈이다. 앞으로는 평지 이거나 내리막 이라는 강사의 말을 들으니 시간이 꽤 지난 것 같기도 하다.
소나무 향이 바람을 따고 진하게 코끝에 스며든다. 편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달빛을 밟으며 산 능선을 돌아 문수샘에 이르렀다. 달콤한 맛이 나는 샘물을 한 모금 마시니 피로가 가시는 것 같다. 별 빛은 끝없이 높고 푸른데 밤은 속절없이 깊어만 간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한 참을 온 것 같은데 아래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 기둥 사이 사이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모두 지쳤는지 헤드 랜턴의 둥그런 불빛만 계곡을 낀 체 휘돌아 가고 있을 뿐이다. 쌀가마니 크기만 한 바위덩이들을 지겹도록 밟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앞에서 비박지에 다 왔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바람이 지나가는 골목에 잠자리를 정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킬로미터나 더 내려와서야 비박지를 찾아냈다. 배낭을 정리해 놓고는 짐을 뿌리고 버너와 코펠을 꺼낸다. 여성 대원이 준비한 돼지 갈비를 술안주라며 꺼내더니 코펠 뚜껑에 지글지글 익히기 시작하였다.
모이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냄새에 홀린 듯 너 나 없이 술 병 하나씩을 들고 모인다. 돼지고기가 채 익기도 전에 소주 한 병이 나가 떨어졌다. 빈 병이 하나 둘 보이고 피곤함 때문에 물소리가 잔잔한 잠결처럼 들려온다.
밤은 더 이상 깊어 질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근방 새벽이 될 것이기에 더 한 잔 하라는 것도 뿌리치고 잠을 청한다.
간밤의 피로는 씻어 냈지만 교육은 힘들었다
기상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대원들은 일어나기 싫은 듯 두어 번 침낭 속에서 뒤척이더니 제일 부지런한 B조의 막내가 벌써 쌀을 씻어 밥을 짓기 시작한다. 침낭을 정리하고 매트리스를 걷어내니 동이 밝아온다.
밥을 먹기가 무섭게 교육장으로 장소를 옮기라는 강사의 지령이 떨어졌다. 교육장에 도착한 B조는 여유 있게 다른 조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티놀리안 브리지는 구조 구난에 쓰이는 기술이다. 119 구조대원들이 계곡에 갇혀 있는 등산객을 구조하기 위해 물 살을 가로 질러 로프를 설치하고 등산객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장면이 티브이에 보이곤 하는데 바로 그때 쓰이는 기술이 바로 이 기술이다.
로프를 타고 중간쯤 다다르면 손에 맥이 빠지고 입이 마른다.
응급처치는 산악 등반 시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과 방법을 교육 받고 숙달하는 훈련이다. 응급환자의 상태에 따라 조치와 환자의 운반 방법을 달리하며 숙달될 때까지 반복해서 실습을 한다.
뼈의 여러 가지 골절 형태에 따라 부목 받치는 방법과 심폐 소생술까지 응급처치 방법은 다양하고 복잡한데 모두들 강사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잘 따라주고 있었다. 교육의 과정을 꼼꼼히 살피고 있는 홍기건(50) 등산학교 교육감은 학생들의 열의에 흐뭇한 표정이다.
"종합등반의 목적은 학생들이 티놀리안 브리지, 응급처지 방법 등을 몸에 익히는 것으로 평소에 등산이나 등반을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21기생들은 평균 나이가 40세가 넘으신 연세인데도 열의가 대단합니다. 다른 기수들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평들을 강사들에게 전해 듣고 있고 그러한 열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등산은 종합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포츠 클라이밍 이든지 워킹을 통해서 우리가 신체적인 균형이라든지 정신적인 면에서도 아주 좋기 때문에 이런 운동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됩니다.”
홍기건(50) 등산학교 교육감은 초보 산행자들은 산악인의 정신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산악인의 정신은 알피니즘으로 말 할 수 있는데 알피니즘은 무상의 기쁨이며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흔히들 등산은 관중 없는 스포츠이며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산을 찾는 이가 이런 정신을 가지고 산행에 임하면 좋은 산악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거듭 말하였다.
”저희 등산학교는 모든 교육을 원칙과 정도에 따라 실시합니다. 조금이라도 변칙을 쓰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 하나 하나를 정말로 체계적으로 하고 있고 응급조치 과정만 보더라도 밖으로부터 타의 모범이 되고 부러움과 호응을 받는 교육입니다.
독도법 같은 경우는 등산학교를 졸업하고도 자기들끼리 단체를 만들어 등산학교에 교육을 의뢰하고 있는 예가 많고 개인적으로도 의문점이 있으면 수시로 등산학교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항시 누군가가 의뢰하고 찾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은 요즘 젊은이들이 산을 힘들다는 이유로 찾지 않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편리와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이 힘들고 땀나는 등산을 업처럼 여기고 살아온 그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다.
훈련이 계속되는 듯하더니 오전 교육을 마무리한다. 출출하다 생각되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다. 식사를 하기 위해 교육 본부로 들어서는 남영모(38) 교수2부장이 빙긋 웃는다.
그는 올 해 ‘죽음을 부르는 산’이라 불리는 K2에서 눈사태에 매몰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서 돌아 온 산악인이다.
”저는 항상 이리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산이 좋아서 다녔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산이 좋은 것 같지도 않고 싫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냥 정이 들어서 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처음에 집사람을 좋아서 사랑해서 같이 살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감정 연애하는 감정보다 정이 들어 산다고 할 까요? 그래서 산도 정이 들어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교육의 방법을 추구하면서 가장 올바르고 정확한 교육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면서 교육생에게 강의를 한다고 한다. 정확한 독도법, 정확한 암벽등반, 정확한 기술 훈련을 반복해서 실시하고 교육생 스스로에게 그 기술을 습관화하고 체질화시키기를 바라고 있다며 열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남영모 부장은 교육생들이 등산학교를 수료했다 해서 자만에 빠지지 않고 항상 부족하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산을 대하길 바란다면서 교육생들이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산을 올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식사를 마치자 교육 10분 전이라는 교육 강사의 예고가 떨어진다. 장비를 다시 착용하고 볼일도 좀 보고 고개도 돌려보고 허리도 뒤로 젖혀본다.
“ 산행을 해 왔지만 등산학교 오기 전과 온 후로는 마음가짐이나 모든 것이 다 틀려졌습니다. 산을 보는 눈이 틀려졌고 산행을 하는 마음가짐이 틀려졌다고 할까요? 산행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산행을 오락으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되겠고요.
산을 알고 산의 두려움을 알고 가셔야 안전산행이나 모든 걸 방지할 수 있고 또 내 자신의 안전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산이라는 것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마음 자세부터 달리 가져야 되겠지요.”
김승창(52)교육생은 개인적으로 오리엔티어링을 더 배우고 싶어 하고 있다. 그는 산행 경력이 20년을 넘는 베테랑 산 꾼이기도 하지만 이번 등산학교 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산악 훈련을 받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다 한다. 강사들이 너무 열의가 있어 따라가기가 어려웠다는 김승창씨는 학생들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잘 지도해 주신 강사들이 너무나 고맙다고 말하였다.
포항등산학교는 2004년 11월 30일에 등산학교 21기 수료식을 갖는다. 수료식에서는 우수 교육생에 대한 시상식과 함께 2004년도 포항등산학교의 교육 과정을 모두 마무리 하게 된다. 포항등산학교는 2005년도에 등산학교 22기와 23기 졸업생을 배출할 예정이며 독립적인 등산학교 운영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