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박정희 의장의 방일 방미 장면이 드라마에 방송되는 내내 이만섭씨와 대비되는 한 인물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다름 아닌 한양대 리영희 명예교수.
1957년 같은 해에 언론사에 입사하여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만섭과 리영희는 박정희 정권 초기, 직필로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만섭이 동아일보 주일특파원으로서 박정희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리영희는 박정희-케네디 회담 당시 합동통신사 소속 방미 수행기자단의 일원으로 박정희의 심기를 거스른 인물.
그러나 그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일찌감치 미운털을 뽑아내고 일신의 보전을 통해 평생을 양지에서 지낸 반면, 한 사람은 미운털을 훈장처럼 박아넣은 채 일생을 꼿꼿하게 음지에서 살아왔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인생이 보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박-케네디 회담 당시, 박 의장의 수행기자였던 리영희의 송고 기사는 박-케네디 회담의 성과를 과대 포장하여 송고하는 다른 수행기자들의 것과 판이했다. 소속사인 합동통신사 데스크가 고민에 빠졌던 것은 당연한 일. 결국 그는 수행 중 본국 소환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하고, 박정희 귀국 후에는 '방미 성과 보고 리셉션'에서도 제외되었다.
이것은 리영희에게 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뿐이다. 70년 박 정권의 압력으로 강제 해직된 그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로 임용됐으나 72년 해직된다. 77년에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이 반공법으로 엮여 구속, 기소됐다. 그 뒤에도 복직과 해직을 반복하고, 세 차례나 영어(囹圄)의 몸이 돼야 했던 리영희.
반면 이만섭의 화려한 변신은 놀랍기까지 하다. 61년 방일 기자회견장에서 박정희를 괴롭혔던 이만섭은 64년 박정희의 지명으로 공화당 전국구의원이 된다. 그의 정치인생은 박정희 정권 15년을 지나, 서슬퍼런 전두환 시절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까지 정권은 바뀌어도 그때마다 빠짐없이 전국구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2004년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40년 정치인생을 향유했다.
8선의 화려하고 끈질긴 정치생명을 자랑하는 이만섭은 <영웅시대>에서조차 화려하다. 또한 음지 인생 리영희는 <영웅시대>에서도 양지에 나오지 못하고 외면 당한다.
그러고 보면, 사르트르의 '참된 지식인은 천형(天刑)을 받게 마련'이란 말은 "거짓을 벗겨낸 진실만이 현실을 정직하게 바로잡아주고 바른 미래를 제시해준다"고 믿고 있는 리영희에게도 들어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당대에 천형을 받는 참된 지식인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빛난다는 것을. 이만섭의 양지 인생은 40년에 그쳤지만, 평생을 음지에서 보내온 리영희의 양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70년대 '난쏘공'(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더불어 대학생 교양필독서 1호로 꼽혔던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그 책의 제자들이 이제는 지금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던가? 지난 총선 때, 상당수 출마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신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던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긴, 박정희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된 <영웅시대>에서 진짜 영웅 리영희가 등장한다면 생뚱맞을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옳다. 한편으로는 박정희의 독재를 언급하면서, 한편으로는 독재자의 변호를 자처하고 있는 <영웅시대>가 이만섭을 등장시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의 독재에 대한 비판 세력까지 포용하는 위대한 박정희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탓이다.
우리가 <영웅시대>를 보면서 넋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만섭의 등장이 작위적인 영웅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영웅시대>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