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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법칙 중에 이런 게 있다.
"갈등을 풀려면 상대방이 아닌 문제 그 자체를 공략하라. 상대편을 적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동반자로 만들어라."
진정인의 침해나 차별 원인을 해결하는 일도 일종의 협상으로 볼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피진정인으로부터 ‘백기 투항’을 받아내자는 게 국가국가인권위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이를테면 ‘윈윈’하는 가운데 문제를 푸는 게 더 바람직한 해법일 것이다.
피진정인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앞에 둔 파트너로 만드는 것. 지난 10월, 10개 공기업이 채용과정에서 나이와 학력 제한을 없앤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생(相生)의 사례라고 할 만하다. 금융감독원 근로복지공단 예금보험공사 등 공기업에 입사하려고 하는 지원자들은 이제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에 고민할 이유가 없게 됐다. 대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사지원서를 앞에 놓고 머뭇거리지 않아도 된다. 국내 기업의 채용과정에서의 온갖 차별유형의 집약이랄 수 있는 입사지원서가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공기업의 나이와 학력제한 폐지 조치는 작년 말 차별연구회가 22개 공기업에 대해 직원 채용때 나이와 학력을 제한한 것은 차별이라며 진정을 해온 데 따른 반응이지만 올 2월에 한국관광공사가 입사지원서에 나이와 학력 기재란을 없앴다. 당시 나이 제한으로 응시기회조차 얻지 못한 20대 여성의 진정을 받아 조사 중 한국관광공사의 폐지 결정을 얻어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라상민 조사관은 “한국관광공사의 결정이 공기업의 나이·학력제한 철폐 제1호였다”면서 “지난 2년간 국가인권위가 꾸준히 매달려온 입사지원서 개선 작업이 잇따라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기업 취업에 관련된 내용이라 입사지원서 차별 건은 사회적 관심이 대단했다. 언론마다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런데 그 사회적 관심 이면에는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게 있었다.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에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차별 항목을 철폐한 11개 공기업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기업들 스스로 먼저 고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조사 중에 진정원인이 해결됐으므로 진정인은 진정을 철회했고 위원회는 이를 각하 처리했다. 입사지원서의 차별 항목 시정은 문제해결의 주체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의 해법을 찾도록 한 경우다. 서두에서 말한 상생적 해법의 한 모범사례인 셈이다.
입사지원서 문제의 ‘개가’에는 국가인권위의 치밀한 준비에서 비롯된 적절한 문제제기가 큰 역할을 했다. 국가인권위 사무처가 정식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난 2002년 6월. 차별조사국 조사관들은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줄곧 고심 중이었다. 그 고민은 침해 사건에 비해 차별과 관련된 진정이 훨씬 적다는 데서 출발했다. “인권 하면 교도소나 수사기관 등에서 벌어지는 침해 행위로만 생각하던 분위기였고 어떤 게 차별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낮았죠.”(서영호 당시 조사관)
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 그게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두 달 간의 탐색작업 끝에 찾아낸 것이 입사지원서의 차별 문제였다. 입사지원서는 채용에 있어서의 ‘차별(가능성)의 백화점’과 같은 것이었다.
서영호 과장은 “가족사항에서부터 혼인 여부, 출신지역, 부동산이나 예금은 얼마나 갖고 있는지 까지 도대체 이런 게 업무 능력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기업체들은 지원자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실 이는 채용과정의 1차 관문에서부터 차별의 장벽을 쌓아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목은 기업들 스스로도 털어놓고 있다. “구직자들이 온라인으로 원서를 접수하는 순간 출신학교와 학점 따위를 점수로 매긴 뒤 특정 점수 이하의 지원자를 자동적으로 걸러내고 있다.”(한 식품업체의 인사담당자)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관습으로 굳어져 당연시돼 온 이 관행의 벽을 국가인권위는 조심스레 두드렸다. 몇 달 동안 관련 자료 등을 준비한 뒤 그해 말 기업체에 공문을 보냈다. 50명 이상 채용한 38개 업체 입사지원 기재사항을 분석하고 다시 업체들에 차별 우려가 있는 항목을 통보했다.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것이었다. 기업들은 순순히 문제를 인정하고 이를 스스로 고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자기들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어떤 기업은 어떻게 고치는 게 좋겠냐면서 모범답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죠.” 몇 달 뒤 62개 업체에 보낸 2차 조사결과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입사지원서 문제는 그러나 사실 아직도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오랫동안 뿌리 깊게 내려앉은 관행이 단지 문제가 있다는 자각만으로 쉽게 고쳐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교훈은 당사자 스스로 문제점을 느끼도록 하는 게 문제해결에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확인시켜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들 당연시해온 사안을 문제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또 공론화 해주는 역할의 중요성이다. 차별 장벽 앞에서 한숨짓는 수험생들의 이유 있는 불만, 반면 익숙해 있지만 옳지는 않다고 느끼고 있는 기업측의 개선 필요성,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의제화해서 자율적 개선 메커니즘이 작동되게끔 한 데서 국가인권위의 조사는 제 몫을 했던 셈이다. 굳이 권고까지 갈 필요 없이 문제의 당사자가 스스로 그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입사지원서 사례와 같은 국가인권위의 ‘조사 중 해결’ 방식이 국가인권위의 다양한 분쟁 해결 방식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 역동적인 ‘윈윈 게임’이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조사 중 해결’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2002년 7건, 2003년 16건에 머물렀던 조사 중 해결 사건은 올해에는 10월 31일 현재 벌써 56건에 달하고 있다.
조사 중 해결은 차별 사건이 대부분인데, 그건 대개의 인권 문제가 그렇지만 차별은 관행으로 고착된 경우가 더욱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 속에 굳어진 만큼 다들 당연시하는 그 행태들을 국가인권위의 조사는 끄집어내고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자정능력’에 의해 해결되도록 지켜보면서 적절히 개입한다. 꼭 최종 해결사로 나설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칠순의 나이에 학사모를 쓴 할머니 졸업생 탄생, 보육원 설치…’. 금혼 학칙을 깬 데 이어 기혼 학생을 위해 학교 옆에 보육원까지 설치한 이화여대의 전통파괴 행보도 국가인권위의 조사 자체가 위력을 발휘한 경우다.
국가인권위가 이대의 금혼 학칙을 조사하게 된 것은 한 여학생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됐다. 진정을 받아 조사에 들어가자 이대측은 처음에는 완강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학교의 특수성”이니 “설립 때부터 관행”이라는 점을 들어 차별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과거 결혼으로 인한 학업중단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애초의 선의는 긍정하더라도 이를 달라진 시대환경에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게 국가인권위의 판단이었다. 위원회는 이런 시각을 학교측에 전달하면서 설득했다. 마침 위원회의 조사 착수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상황이 급변했고 학교측은 태도를 바꿔 마침내 수십 년 묵은 관행이 무너졌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거 부당한 학칙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도 구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폈다. 이 역시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내려지기 전에 이대측이 스스로 관련 규정을 고쳤고 결혼과 함께 학업을 중단한 머리 희끗한 할머니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와 감격의 학사모까지 쓰게 됐다.
이수연 조사관에게 특히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건도 권고 결정까지 가지 않고 해결된, 어느 기혼 여성의 채용 차별 진정건이었다. 2002년 말 한 주부가 국가인권위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 제조업체에 생산직 사원으로 취업하려고 했던 이 여성은 기혼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했다며 호소했다.
“남편이 장애인이라 자기가 생계를 책임져야 되는, 일자리가 절실히 필요한 여성이었어요.”
이 조사관은 회사측에 고용실태 자료를 요청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여사원 중에 기혼여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입사요강 어디에도 기혼여성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었지만 면접과정에서부터 차별은 거의 노골적이었다. 이 여성은 면접장에서 “기혼여성은 어려운데, 왜 왔냐” “괜히 헛걸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회사측은 “24시간 근무라서 어렵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차별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 조사관은 “처음에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그 기업이 결국 국가인권위가 조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꼈는지 그 여성을 채용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이 회사 최초의 기혼여성 직원이 탄생했다.
이들 사례는 국가인권위의 조사가 갖는 의미나 위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고에 준하는 힘을 발휘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존재 그 자체, 국가인권위가 뭔가를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방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인권 햇볕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구금시설에서 이슬람 종교 집회를 허용한 D교도소의 결정도 이 ‘햇볕’이 통한 경우다. 외국인 수용자 S씨는 2002년 11월 “이슬람 종교집회를 허용하지 않고, 이슬람 종교와 관련된 영치물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진정했다. 남경혜 조사관이 교도소를 상대로 조사에 들어가자 교도소측이 먼저 이슬람 종교집회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특수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40대 시각장애인들도 국가인권위 조사를 통해 구제됐다. 고등부 입학 연령을 23세 이하로 제한한 특수학교 규정의 이유는 “너무 나이차가 많으면 동급생들과 어울리기 어렵다”는 것. “그러면 후천성 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들은 자활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겁니까?”
조사관의 설득을 받아들인 학교측은 입학 연령 제한을 없앴다. 국가인권위의 권고 없이도 비슷한 처지의 ‘만학 장애인’들까지 구제를 받게 됐다. 이외에도 기간제 교사에 대한 담임배정 등의 차별, 인터넷 뉴스사이트의 미성년자 가입 차별, 도서관용 엘리베이터의 장애인 이용 차별,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에 의한 대학 편입학 차별 등도 조사 중에 해결된 사건들이다.
물론 조사 중 해결이 결코 만능은 아니다. 진 정인에 대한 개별적인 구제에 그치고 근본적인 제도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 피진정인의 완전한 ‘승복’이 아니라 어중간한 해결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등은 분명 한계로 지적될 만하다. 다만 조사에서 권고 결정에 이르는 장기간의 시일을 단축하면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 단선적 방식이 아닌 다양한 해법의 틀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이는 국가인권위가 지향하는 인권 문제의 ‘저비용 해결’에도 들어맞는다. 국가인권위 진정사건 해결의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또 우리 사회 ‘저변의 인권 개선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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