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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박정희가 등장하는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진은 1961년, 국가재건회의 박정희 의장과 미 대통령 케네디의 회담장면을 찍은 것이다. 드라마 <영웅시대>를 본 일부 네티즌들이, 다시 이 사진을 본 이후 나타내는 반응들을 잠시 살펴보자.

어제 내용이랑 딱인 사진이죠? 카리스마가 넘치십니다. 백악관에 선글라스 끼고 간 사람이 또 누가 있었을까요? 담배는 어떻구요.. 암튼..최고! 어제 대사 기억하세요? 가난한 나라라고 자손심을 굽힐 순 없지..ㅠ.ㅠ by 정OO [QKRWJDGMLWKD]

박정희 대통령 진짜 카리스마 넘친다 아흐. 백악관에서 선그라스쓰고 담배피고 헐...;;; 저 당당한 표정 ㅎㅎ by. 김XX [RLAEHDWLS79]

정말 눈물이 날정도로 넘 당당해서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중에 그렇게 하는사람있을까요 정말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져요. by 이** [LEEJUNGRAI]

OO님 그쳐? 저두 정말일까 했는데..우와 사진보니.. 저두 사진보구..더 놀랐습니다. 저때엔 정말 울나라가..엄청 가난한.. 일인당 국민소득이 70불...에휴.. 그런데도.. 키큰 케네디 앞에서...정말 당당하시네요. 어제 드라마 장면이랑 오버랩됩니다. 군데.. 사진은..잘나오진 않았어요.. 각도가.. 그래두..최고심당! 밖에 나가서도 당당하신.... 든든해 보임당.. by 정## [QKRWJDGMLWKD]

백악관에서 선글라스 끼고 담배 피운 게, 뭐 대단한 유세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사진에는 선글라스를 쓴 박정희 의장이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소파에 앉아 있다. 그리고 케네디는 안락의자에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앉아 박정희를 쳐다보고 있다. 박 의장이 다소 편안해 보이기는 하지만, 다리를 꼬고 앉은 케네디에 '당당하다'고 말하기에는 매우 어색한 장면이다.

대한뉴스가 전하는 이 부분의 장면(http://film.ktv.go.kr/vod/index.jsp?menu=1&first=99&videoID=405&clipID=2245&find=numb&word=341)을 보면 사정은 더욱 분명해진다. 사진에 비해 비교적 잘 드러나 있는 박정희의 '공손함'과 케네디의 '거만함'. 대한뉴스에서 박 의장은 담배를 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소파에 꼿꼿이 앉아 있다. 그것을 대한뉴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옛 친구라도 만난 듯이 친숙한 분위기에서…."

역사를 유린하며 박정희 향수에 취해 있는 <영웅시대>

MBC 월화드라마 '영웅시대'(극본 이환경·연출 소원영 김진민)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역사를 유린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박정희의 애국심 부각이다. 특히 박 케네디 회담 때, 박정희가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려고 무척이나 애쓴 것처럼 표현했는데, 박정희는 당시 국가원수도 아니었을 뿐더러, 미국에 자존심을 내세울 처지가 아니었음을 애써 외면한 처사다. <영웅시대> 44회 대본을 잠깐 살펴보자.

이 친구들이 해방이 되고 나서 군정을 하러 들어왔을 때, 많은 장성들과 장군들이 저들에게 아첨을 했어. 내가 저들에게 빌붙지 않고 초대에 응하지 않자, 날 빨갱이로 몰아서 예편시키려고 했던 친구들이야. 그러나 난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자로 여기에 와있어. 절대 고개 안 숙여. 나라는 가난해도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거 아니냐, 이 말이야. / 그런 박정희의 얼굴에서 클로즈업되면서 강한 템포의 음악이 콰콰쾅.

많은 사람들은 이 대본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박정희가 미국에 대한 자주성을 중요시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는 '친미'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의 취약한 입자를 보호받지 못할 처지에 있었다. 카터 시절, 핵문제 등으로 미국과 보이지 않는 마찰이 있긴 했지만, 그 외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박정희는 친미였다. 더구나, 집권 초기, 그는 자신의 좌익 경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주 처절하게 미국의 '경비견'을 자처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진에서 보이는 박 케네디 회담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해 보인다. 하긴 박정희로서는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간이라도 꺼내서 보여주어야 할 처지였으니, 박정희가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 갈 개연성이나, 이환경 작가의 대본처럼 '불손한' 논쟁이 오고갈 개연성은 전혀 없다.

케네디 : 미국은 경제개발에 대한 각하의 강력한 리더십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 박정희 : 지금은 국가가 아사직전에 있습니다. 개발국가에서 인권은 유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 : 개발 독재가 필요하다는 얘기인가요? / 박 : 지금 대한민국은 두 번의 수술을 받은 중환자 상탭니다. 4.19가 첫 번째 수술이고, 5.16이 두 번째 수술입니다. 환자의 몸을 추스르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케 : 악법은 법이 아닙니다. / 박 : 악법도 법은 법이지요. / 박정희와 케네디의 대화 내용에 방안에 있는 양측에 긴장감

케 : 미국은 한국에 많은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필요한 의견을 제시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박 : (김종필 등에게) 이 친구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가 자기네한테 원조를 받고 있으니까, 아무 소리 말라 이거야? / 김 : (작게) 우릴 압박해서 자기네들 뜻대로 다루겠다는 뜻 같습니다만, 조금 참으십시오. / 박 : ...

케 : 미국은 언제나 한국을 도왔습니다. 나 역시 박 의장을 도울 것입니다. / 박 : 진심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각하. 미국은 우리가 혁명을 하자, 병력을 동원해서 우릴 강제 진압하려고 했습니다.

케 :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피를 나눈 혈맹 국가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 : 아! 물론 압니다. 그랬지요. 그러나 과연 한국만을 위해서 미국이 죽었을까요? 그게 다 공동의 이익 때문 아니오? 우리가 미국을 대신해서 공산주의자들을 막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 이 말이오?

이환경 작가의 이 대본은 제작진이 보기에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방송분에서는 기자회견으로 뒤바뀐다. 케네디와 박정희 사이의 대화를 기자들과 박정희 사이의 대화로 대체한 것이다. 그 덕분에, 기자회견장에서 기자가 질문에 대답하는 촌극이 드라마에서 연출되기도 했다.

애국심의 허구를 보여준 '민정이양 약속'

당시, 케네디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당시 합동통신 리영희 기자의 특종 기사 <朴*케네디 밀약>에서 이미 폭로된 바가 있다. 박정희가 케네디에게 민정이양을 약속하고, 그 조건으로 쿠데타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朴*케네디 회담 이후, 국내 사정과 박정희의 행보를 살펴보면, 박정희의 애국심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朴*케네디 밀약 이후, 박정희는 1년이 넘도록 그 합의의 이행을 지연시키면서 군정을 계속한다. 이 과정에서 군부 정권은 국내의 기존 정치 세력과 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밖으로는 계속해서 미국 케네디 정부의 민정이양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다.

한편, 이에 앞선 61년 7월, 전국에 걸쳐 37년 대홍수 이래 최대 규모의 수해가 휩쓸고 지나갔다. 인적 피해도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 농경지가 전면적으로 파괴된 탓에 62년의 식량 사정은 최악의 상태를 면치 못했다.

계속되는 식량 위기로 온 국민이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 박정희 군사 정권은 다만 속수무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박정희는 내외의 저항과 압력에 직면해서 군사 정권을 종식하고 민정으로 이양하겠다는 공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62년과 63년에 걸쳐서 민정 이양과 군정 연장의 공약을 네 번이나 번복하고 결국 군정 연장선언으로 되돌아가는 정치적 혼미의 상태를 되풀이했다.

정계와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이면서 박정희 군부 정권에 대하여 빨리 미국이 약속한 식량 원조를 제공받도록 압력을 가했다. 전국적인 식량 기근 때문에, 어떤 국민적 폭발이 일어날 기운이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던 상황이었다. 정치계는 물론 모든 국민의 관심이 미국 잉여농산물 제공 지연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국은 해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로 간신히 식량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그 때에 미국 정부는 의회의 승인 하에 1962년 잉여 농산물 기금으로 책정되어 있는 2200만 달러를 63년도 하반기까지 집행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 국민들은 미국 정부의 잉여 농산물 제공 공약이 지연되고 있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미국 의회의 승인까지 난 잉여농산물 제공이 2년 가까이나 보류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박정희 군사 정권이 미국 정부에 약속한 민정 이양을 몇 번씩이나 번복하고 군정을 연장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의 기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집권 연장에 혈안이 된 박정희의 그 잘난 애국심과 이기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할 수 없지 아니한가?

이 일은 당시 우리나라가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지을 힘이 없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을 웅변한다. 미국이 왜 그토록 군사 정부에 대해 민정 이양을 촉구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혁명 주체 세력의 운명이 미국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박정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해 국가적 자존심을 따질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국가적 자존심과 국익은 정권의 정통성으로부터 나온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보라. 우리 한반도는 소련과 미국, 두 강대국이 싸우는 그 중간에 끼어 있었다. 만약, 우리가 통일된 중립국가였다면, 우리는 소련과 미국으로부터 동시에 국가 실익을 챙길 수도 있는 처지였을 게다.

또한, 분단된 상황에서라도, 만약 정권의 정통성이 확보되었다면,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남한이 소련의 영향 하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남한은 미국에 군사적 요충지를 제공하는 대가를 톡톡히 얻어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권의 정통성이 확보되지 않은 우리 정부는 미국에 큰소리를 칠 수 없었다. 그나마 미국의 눈치를 봐야, 자신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탓이다. 더구나 대통령도 아닌, 쿠데타 직후의 군인 박정희 의장으로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을 게다.

미국과 케네디의 입장에서 박정희는 제3세계 군부 독재자일 뿐이다. 제3세계 독재자는 국가원수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융숭한 대접을 하겠는가? 나라가 가난하고, 부유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의 지도자는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박정희가 아니라, 정통성 있는 정권이었다면,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하여 더욱 당당해질 수 있었고, 냉전 시대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국가적 실익을 취할 수 있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의 취약한 입지를 보호받기 위해 미국에게 필요 이상의 저자세를 취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는 냉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박정희의 애국심 부각, 박정희 영웅화를 통해, 박정희 향수층을 자극해보려는 <영웅시대>의 알량한 술수를 경계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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