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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3학년 남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한 기념 촬영
졸업을 앞둔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3학년 남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한 기념 촬영 ⓒ 정호갑
학교에 17년 동안 있으면서 고3 담임을 많이 하였다. 그때마다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아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대학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보내는 것이 그들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목표를 뚜렷이 세워 모든 것을 잊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대견했고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대학입시에는 늘 합격의 영광만 있지 않다. 자기 나름대로 발버둥치고 노력도 하여 보았지만 그래도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과연 그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들의 눈물을 볼 때마다 나의 무능함을 느낀다.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래도 너희들은 젊지 않느냐, 내년에 열심히 하여 더 좋은 데 가면 되지 않느냐'하는 입에 발린 격려의 말 몇 마디뿐이다.

솔직히 나는 그들에게 소홀하였다. 그런데 졸업 후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나의 관심밖에 서 있던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나를 선생이라 부르며 고마웠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대학입시가 끝난 지금 나는 몇 년 전 동료 교사에게 술자리에서 들은 말이 문득 생각난다.

"깊은 산 속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을 지나가던 소가 목이 말라 그 물을 먹으면 그 물은 사람에게 이로운 우유를 생산하지만, 독사가 그 물을 먹으면 독이 되어 사람을 해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 두렵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수업 시간에 '배워서 남주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나'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뒷바라지가 있었겠는가?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보살핌, 바른 길로 이끌어주고자 애쓰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 친구들의 격려, 아이에 대한 사회의 여러 가지 배려, 이러한 뒷받침으로 오늘의 자기가 있지 않은가?

그러면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가 받은 것들을 마땅히 되돌려 주어야 할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제 '남 주기 위하여 배우는 아이'가 나의 희망이고 자랑이다.

졸업을 앞둔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3학년 여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한 기념 촬영
졸업을 앞둔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3학년 여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한 기념 촬영 ⓒ 정호갑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의 자랑은 명문 대학 진학률이나 시설이 잘 갖추어진 건물이 아니라, 아이들은 선생님을 믿고 따르며, 선생님은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학교의 자랑이다.

밝은 성격에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닌 김소영,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디자인 학부로 진학하였다. 우리 사회를 좀더 밝게 꾸미는 꿈을 가지고 있다. 밝아진 거리를 웃는 모습으로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가온다.

게임의 지존 김주한, 그는 새로운 자동차 엔진 개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계항공학과로 진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바랐던 꿈에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손에서 미래의 자동차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언니로서 반 아이들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한 김효현,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한동대학교로 진학하였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아직 학과에 정하여지지 않았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리라 믿는다.

늘 맑은 웃음으로 친구가 많은 박일현, 그는 그의 사교적인 성격을 살려 경영학과로 진학하였다. 앞으로 더 많아질 중국과의 교역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한다.

베이스 기타를 멋지게 연주하는 서영민, 그는 유전공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생명공학과로 진학하였다. 감성과 이성을 함께 갖추고 있는 아이이기에 사람을 위한 과학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온화한 지성의 향기를 지닌 이경준, 큰 인물을 만들기 위해 하늘이 그에게는 시련을 주었다. 그 시련을 딛고 내년에는 온화한 웃음으로 그를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보컬 그룹의 리더인 이민, 그는 그동안 빠졌던 음악을 잠시 뒤로 하고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영어에 빠져 있다. 그의 잠재된 능력이 미국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길 바란다.

초등학교 상장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구절 '타의 모범이 되고 행동이 방정하여'에 딱 어울리는 이재훈, 그는 중국말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를 제대로 아는 중국 전문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중국어학과에 진학하였다. 머지않은 날에 그가 나라에 보탬이 되는 큰 일꾼이 되리라 믿는다.

똑똑하지만 얄밉지 않은 소녀 조한경, 그는 유엔에서 자기 꿈을 펼치고자 미국 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도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의 당찬 기질이 유엔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길 바란다.

영어와 중국어를 우리말처럼 하는 이소영, 그는 중국어학과에 진학하여 우리 나라와 세계에 중국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중국어학과에 진학하였다. 이제 모국에서 우리 것을 배우는 열정만이 남았다.

이제 이들은 자기의 꿈을 열어가기 위해 북경한국국제학교를 떠난다. 나에서 우리를 배웠고, 낯선 땅에서 한국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왜 자기가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이제 이들 모두가 나의 자랑이다. 잠시 학교가 없어 떠돌아다닌들 어떠하겠는가? 머지않은 날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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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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