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37일째를 맞이한 러브콩
ⓒ 허선행
아는 집에 놀러 갔다가 마침 그 곳에 온 손님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 분은 농업기술센터의 기술 지도를 받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콩을 생산하시는 분이었다.

친구 집에 콩을 가져다주려고 온 모양인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동안 연구를 많이 해 오신 분인 듯했다. 여러 가지 콩 중에서 지금은 새로운 콩을 개발하셨다고 한다. 콩 표면에 특수레이저로 써넣고 싶은 단어를 새겨 넣으면 돋아난 떡잎에서 새겨진 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침 승용차에 개발하신 ‘러브콩’이 있다며 네 개를 주셨다. 콩에 '사랑해'라고 써놔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봄이 온 것처럼 포근한 날씨를 보니 내년 봄에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콩 씨앗을 빨리 심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정말 글씨가 새겨진 떡잎이 나올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네 개 중에 두 개의 씨앗을 11월 2일에 심었다. 나머지 두 개는 봄에 심을 예정이다. 화분에 흙을 담고 씨앗을 뿌리고, 씨앗두께 두 배로 흙을 덮은 후에 물을 흠뻑 주었다. 설명서에 보니 떡잎이 나오려면 4일에서 7일정도 걸린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지. 성격이 급한 내게 기다림이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루가 지나 사무실 책상 위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일주일이 지나도 돋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손가락으로 흙을 살짝 파 보다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른 덮어 두었다.

정확히 열흘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나서야 뾰족이 내미는 떡잎을 보게 되었다. 떡잎에 “사랑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마냥 기쁨에 들떠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공연히 마음이 들떠 지나가는 사람까지 불러다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모두들 신기하단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이 추운겨울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무리 실내라고는 하지만 따뜻한 봄만 할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심은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키가 30센티나 자랐고 꽃망울도 맺혔다. 꽃망울을 보는 순간 첫사랑의 설렘만큼 가슴이 두근거린다. 과연 꽃이 펴서 열매를 맺게 될는지. 지금까지 작은 화분이라도 키울라치면 생생한 화분도 내가 키운 지 몇 주일만 지나면 웬일인지 시들시들해졌다.

친정어머니께 이야기를 했더니 식물도 정을 주고 매일 말을 걸어줘야 한단다. 시원찮던 화분도 엄마 손만 가면 싱싱해지는걸 보아왔다. 이번엔 나도 엄마 흉내를 좀 내보기로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화분에다 대고 "잘 잤니? 오늘은 잎이 더 커졌네", "어머나! 꽃망울이 맺혔네"라고 하고, 퇴근할 때 "잘 있어, 내일 만나자"등의 말을 걸어본다.

내 정성인지, 아니면 콩은 아무렇게나 잘 자라는 종류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씨앗을 심은 지 삼십칠일 째다.

난 꿈을 가져본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꿈'. 겨울에 꽃망울을 본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잘 커서 나도 제대로 키운 화분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 닫힌 마음도 열리게 한다는 "러브콩아, 잘 자라라. 아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