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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는 총환(銃丸)에 의한 손상, 즉 총창(銃創)에 의해 죽은 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어떤 총포를 사용해 방포했는지도 아시오?”
“바로 그 때문에 이곳 안주까지 의원님을 특별히 청한 것입니다. 검시뿐 아니라 지난 해 양이들의 난동을 겪으며 총상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가지신 분이니.....”
“시신의 등판을 뚫은 탄환의 사입부(射入部)를 잘 보시오. 뭔가 다른 점이 없소?”
“피부의 총환자욱이 여느 것보다 좀 작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소상히는 모르겠습니다.”
“대개 피부에 총환이 맞으면 총환의 크기보다는 작게 구멍이 나긴 합니다. 허나 이 자국은 조선에서 쓰는 보통 화승총의 납총환이라 하기엔 너무 작아요. 대개 화승총은 일곱 푼(分)(21mm)에서 닷 푼(分)오 리(釐)(15mm)까지의 직경을 갖습니다. 그 이상이 되면 너무 크고 무거워 실효성이 떨어지고 그 이하면 너무 작고 가벼워 살상력과 정확도가 떨어지게 되지요.”
“거기까지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어떻다는 말씀이신지......”
“이 구멍의 지름은 달랑 세 푼(9mm)이오. 추정컨대 총환의 직경이 네 푼(12mm)을 넘지 않았단 이야기요. 그런데 척추를 부수고도 세 치를 더 파고 나왔소이다. 연환(鉛丸:납으로 만든 탄환)이 아니었다면 가슴을 뚫고 나왔겠지요. 조선의 화승총도 등에 바짝 대고 방포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정도 증상을 만들지는 않소. 더구나 이건 사오십 보 이상의 거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어찌해서 그리 보시는지요?”
“여기를 보시오.”
정 의원이 돋보기로 총상 자국을 비추며 설명했다.
“여기 구멍 내경(內頃)의 테두리가 보이시오? 이것을 오물륜(汚物侖)이라 하오. 오물륜은 화약의 잔사나 총강 내에 묻어 있던 기름, 먼지, 녹 등의 오물이 탄환 표면에 달라붙어 피부를 뚫고 들어갈 때 창연(創沿:총알이 관통하는 구멍)에 부착되는 테두리이지요. 그런데 여기 보이는 오물륜은 아주 깔끔하게 형성된 것이 보이지요. 이건 멀리서부터 탄환이 날아왔다는 이야깁니다. 가까이에서 날아왔다면 더 많은 찌꺼기가 붙었을 것이오.”
돋보기를 통해 확대된 모습을 보니 윤석우가 보기에도 구멍이 화승총의 총환의 크기보다 작아 보였고 그 오물륜이라 하는 부위도 깔끔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오물륜 뿐만이 아니오. 탄환이 피부를 들어갈 때 구멍 주변부의 피부는 함몰되면서 피부가 벗겨져 구멍을 둘러싸는 것을 박탈륜(剝脫侖)이라 하는데, 근접해서 방포할 경우 이 박탈륜 주변에 폭발 시 미처 연소되지 못한 화약의 찌꺼기인 매(煤)가 함유되어 튐으로써 화약자국이 남게 되오. 헌데 이 상처엔 그저 깔끔한 박탈륜 뿐이니 근접사한 자국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오물륜과 박탈륜의 흔적으로 볼 때 최소 사오십 보 이상의 거리에서 방포되었음을 확신하는 것이오. 더 문제는 그만한 거리에서 이 정도의 구경(口徑)으로 이만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총포가 조선에 왜 있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의원님께서는 이것이 양이(洋夷)의 소행이란 말씀입니까? 그렇지만 이 흔적이 조선의 총포가 남긴 것이 아니라면 양이의 것이라고도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들 총포의 위력이야 작년 병인년의 대동강 이양선 출몰 건을 몸소 겪으면서 느꼈고 법국(法國:프랑스)함대가 강화도를 범하였던 병인양요의 이야기를 들어서 제법 소상히 안다고 자부합니다만, 그들의 총포 역시 이런 흔적을 남기진 않았잖습니까.”
“바로 그 점이 문제요. 조선의 것도, 양이의 것도 아닌 총포가 왜 여기 평안도에서 사용되었냐하는 것이지요. 조선 내의 또 다른 세력인지, 아니면 왜국(일본)이나 대국(청나라)으로부터 들어온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기에 그것이 문제인 것이라오.”
설명을 마친 정 의원은 경은에게 시신 외부의 그림을 그리고 특히 총상부위의 모습에 대해 세부 묘사를 해 놓도록 한 후 경은이 상흔을 찾기 위해 조치해 놓았던 귀 밑 턱 부분을 살폈다. 시반(屍班)에 가려 보이지 않던 멍 자국이 제법 드러나 있었다.
“이 사람을 쏜 자와 접촉이 있었거나 접전이 있었던 것 같구료. 그런데 멍자욱이 단 한 곳 뿐인 것이 마음에 걸리오. 딱 한 번 급소에 가격당했소”
정 의원은 화살대 같은 가느다란 막대를 시신의 등에 있는 창연(創沿)에 밀어 넣고는 윤 군관에게 보게 했다. 막대는 등에 수직으로 서 있지 않고 머리와 어깨부위로 기울어져 있었다.
“ 내 추측이 맞다면 이 사람은 접전 후에 달아나다가 불을 맞은 것 같소. 아마 이 사람을 방포한 자들과 조우한 것은 산이거나 언덕이었을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산이겠지요. 이 정도로 높은 각도에서 총환이 등판을 꿰었다면 언덕은 아닐 겁니다. 더구나 훤히 드러난 언덕에서 방포하기란 명화적(明火賊)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노릇일 터이니.”
말을 마치며 광목으로 싼 의원의 칼 도구들을 꺼내니 경은이 알아서 눈치껏 주변을 가리고 시신 밑에 기름종이를 깔았다.
“지금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상황을 짐작한 윤 군관이 놀라 소리쳤다.
“아무래도 소상한 내용을 알려면 시신을 좀 열어봐야겠소.”
“아무리 그래도 시신에 칼을 대다니요......”
“윤 군관은 이 총환이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시오? 사자의 원한을 갚아 주고 싶지 않으신 게지요?”
이미 시신의 등에 칼을 그으며 은근한 어조로 대답했다. 경은의 도움을 받아 걸쇠를 걸어 놓고 칼질을 하는 그의 솜씨는 이미 수도 없이 해부를 경험해 본 사람의 것이었다.
정 의원을 알고 나서 비범한 사람임을 진작 알았지만 알면 알수록 경이로움만 깊어갈 뿐이다. 오십 줄이 넘은 중노인이 총포와 화약에 대한 지식은 어찌 이토록 밝단 말인가. 명색이 군관이라는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또 아직 조선에선 금기에 가까운 이런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는가.
한참을 긁적거려 다 일그러져 원형을 추측하기 어려운 총환 하나를 놋쇠 접시에 담았다. 이어 총환에 상하여 스무 조각이 넘게 다 부서진 등뼈들을 긁어내고 살점들 속에서 총환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발라내었다. 어떤 것은 좁쌀만하고 어떤 것은 깨알만한데 집어내고 집어내도 끝이 없었다. 납환이 사람 몸 속에 박히면 어찌 되는지는 윤 군관도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군문에 들어선지 어언 10년 가까운 세월을 통틀어 작년 7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던 미리견(미국) 상선 ‘서문’(西門:제너럴 셔먼)호 가 일으킨 파문과 강화도를 점령한 법국함대의 난리가 동시에 일어났던 한 해는 너무 많은 경험과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그간 화적이 출몰하는 곳과 민란이 있는 현장에도 있어봤지만 총상에 대한 처참한 기억을 간직하게 된 것은 작년 한 해였다.
“이상한 일이오.”
침묵을 깨고 정 의원이 말을 꺼냈다.
“대개 총상은 들어가는 사입부(射入部)와 나오는 사출부(射出部)를 만드는데 사입부의 크기에 비해 관통한 후의 내부 크기가 과하게 넓은 느낌이오. 가슴까지 관통되어 사출부를 형성하였다면 그 직경의 크기가 사입부의 두 배 크기는 되었겠지요.”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총환이 내부에서 회전하며 휘저은 흔적이란 뜻이지요. 양이의 총포 중에 강선이라는 게 있는 총포가 있어 총환이 돌며 나아간다 하는 이야기는 대국 사람들 편에 들은 바가 있소만 지난 해 난리 때에도 보지 못했던 터인데 이것이 그것 아닌가 싶소.”
“강선이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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