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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어느 따뜻한 봄 날.
나는 기분도 좋았고 화판을 들고 학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르세이유(프랑스 남부의 도시) 버스들은 좀 불규칙적으로 다니기 때문에 버스가 왔을 때 만원이어서 나는 맨 뒤로 가 섰다.
버스 속도가 바뀔 때마다 서 있는 승객들은 모두 여기저기로 마구 밀렸다. 갑자기 버스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아서 나는 실수로 앞에 있는 할아버지를 밀어버렸다.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떠밀렸던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아니, 참 이게 뭐야? 이런 미친 놈!"하고 내 쪽으로 자기 얼굴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투덜거리던 할아버지가 더 심하게 야단치려다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멍하니 입을 벌리면서 야단치는 것을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나를 죽일 것 같던 할아버지의 얼굴 표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천사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할아버지가 나에게 "어, 쪼만한 아랍 놈인 줄 알았어. 미안해요"하고 다시 기분 좋게 말했다. 내가 할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어~ 예"했지만 내 앞에 있던 바로 그 사람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완벽한 이중적인 행동에 더 큰 쇼크를 받았다. 나는 스스로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내가 만일 아랍 사람이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일상생활에 음험하고 교활한, 눈에 띄지 않은 그런 인종차별주의가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기서 일상생활 속의 음험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인종차별주의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상대방이 알아채지 않게 떠밀거나 슈퍼에서 계산을 할 때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자기 피부색깔 또는 자기 외국이름 때문에 일자리나 집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행동은 명확하지 않고 암암리에 행해지기 때문에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랑스에서는 전형적인 프랑스인의 신체적 조건을 갖지 않은 사람이 설령 프랑스인이라 해도 대도시는 물론 소도시나 시골 같은 곳에서 사는 것은 가끔 어려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프랑스 극우정당은 평범한 프랑스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외국인들로 인해 생기는 두려움을 악용하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모두 도둑놈이고 거짓말쟁이이고 게으름뱅이이고, 모든 프랑스의 불행(실업난, 사회적 폭력, 사라지는 사회의 도덕적·윤리적 가치관)은 그들 때문이다"라는 그런 논리들은 엉터리이지만 비교적 많은 프랑스인들은 무식하거나, 순진하거나 또는 외국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극우 정당을 지지한다.
요즘은 한 15~18%의 투표율을 차지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프랑스에는 좋은 것도 많지만 이 문제가 큰 사회적 문제 중 하나다.
2002년 봄에는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프랑스 선거 시스템은 먼저 1차 직접투표를 하고 후보인 중 50% 이상의 투표율을 차지하면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항상 많은 후보가 나오기 때문에 (그 당시 16명의 1차 선거 후보자가 나왔다) 사람들은 1차 투표에서 대통령이 결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많은 투표인들이 그냥 '재미 삼아'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후보에 투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극좌파인 혁명공산주의동맹(Ligue Communiste Revolutionnaire)의 후보(5~6%)나 사냥과 낚시질과 관습의 정당(Chasse Peche Traditions) 후보(4~5%)에 투표했다.
문제는 2002년 선거에서 많은 좌익정당의 지지표가 여러 좌익정당 후보들에게로 흩어지게 되었다.
결과는?
1차 선거 결과 :
우익정당후보 (UMP) 시라크(Chirac) 19.88%
극우정당후보(FN) 르펜(Le Pen) 16.86%
사회당후보(PS) 죠스팽(Jospin) 16.18%
그래서 전 프랑스 국민들은 믿을 수가 없었고 절망적이어서 눈물까지 흘렸다. 왜냐하면 1차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두 후보가 2차 선거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부패하고 썩어빠진 우익정당의 시라크와 파시스트인 극우정당의 르펜이 2차 선거 후보자가 되었다.
아니 우리나라가 진짜 이런 나라가 되었을까? 나도 다른 국민들처럼 우울했고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르펜이 이긴다면 어떻게 하지? 내가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없는 데다가 계속 프랑스 사람일 수 없을 거라는 심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주 후에 2차 투표 날이 왔다.
내가 어떻게 부패한 시라크를 투표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파시스트인 르펜에게 더더군다나 표를 줄 수는 없었다.
그 날 밤 몹시 흥분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그 당시 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결과 봤니?"
- 아니오. 어떻게 되었어요?
- 음 글쎄~.
- 빨리 말해주세요.
- 시라크가 르펜에 압승했어.
- 휴우~ 안도의 한숨
구체적으로 결과는 이러했다 :
시라크 82.21%
르펜 17.79%
거의 독재선거 결과 같았다.
거의 모든 투표인들이 시라크를 지지했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숫자만 봐도 그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썩은 나라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82%의 투표인들이 시라크에 투표했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18%의 사람들은 르펜에 투표했다. 이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이런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은 자기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역사 속에서 파시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죽었기 때문에 파시즘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위의 예는 프랑스에서 생긴 일이지만 파시즘에서 보호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의 일을 볼 때마다 파시즘의 그림자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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