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캄보디아 유적 답사에서 나를 가장 감동케 한 것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앙코르왓, 앙코르톰, 타프롬 사원 등 지천으로 널려 있는 수많은 유적군이 아니었다. 바로 유적지 주변에서 진흙 속의 연꽃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며 언뜻 언뜻 이방인들을 탐색하는 한없이 깊고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한변의 길이가 3km인 정사각형의 거대한 사원도시를 형성한 앙코르톰의 중앙사원인 바이욘의 영광을 아는지 모르는지 답사객들을 의식하지 않고 문턱에 걸터 앉아 천연덕스럽게 놀고 있다.
열살 남짓 되어 보이는 수십명의 아이들이 몰려다닌다. 학교는 어떡하고 바푸욘 사원 앞에서 관광객들에게 유적지 그림 엽서를 팔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맑아 보인다.
자연의 파괴력이 인간과 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곳. 자연이 정밀한 유물들을 얼마나 손쉽게 파괴하는지 알려 주려는 듯 사원 곳곳에는 자이언트 팜나무가 유물들을 뱀처럼 휘감고 있다. 그곳 따쁘롬 사원 앞에서 뱀의 진정한 친구를 자처한 형제를 만났다.
따쁘롬 사원 앞에서 답사객들에게 작은 타악기를 연주하며 물건을 팔고 있는 한 소녀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가장의 눈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말 못할 사연이 묻어 난다. 엄마는 어디다 두고 아빠와 두 남매만이 앙코르왓 사원을 찾아, 오가는 관광객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허기를 이기고 있는가?
누구를 위한 기도일까? 무엇을 얻기 위한 갈망일까? 프놈파켕사원의 옆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한 소녀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무언가 간절히 갈망하고 있다.
풍부한 어류자원으로 톤레샵 호수 주변에는 끝없이 이어진 수상촌이 펼쳐져 있다. 눈치없이 한가롭게 관광하는 우리를 먼저 보고 반기는 이는 이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맨발로 뛰어나와 두손을 흔들었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작은 유람선에는 기관사외에 한 두명의 어린 아이들이 조수로 따라 다녔다. 우리가 탄 배의 조수는 아직도 엄마 응석을 받아낼 일곱살배기 아이였지만 행동은 야물차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눈가에 촉촉이 젖어드는 그리움을 웃음으로 덜어내기에는 삶이 너무 버겁다.
웨스트메본사원 가는 길에 만난 이 두아이의 함박웃음. 우리가 진정 닮고자 갈망하는 모습은 아닐까?
아이들은
치자꽃처럼
늘 향기롭다
그 향기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꽃으로 보인다
- <아이들의 향기> 한석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