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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서 열린 LG카드 사태 관련 채권은행단 회의에 참가한 9개 채권은행 부행장들이 회의 개회 전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서 열린 LG카드 사태 관련 채권은행단 회의에 참가한 9개 채권은행 부행장들이 회의 개회 전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LG카드를 놓고 벌이는 LG그룹과 채권단의 싸움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지를 놓고 시장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채권단이 지난 21일 'LG카드 출자전환 거부'에 대한 반격 카드로 구본무 회장의 LG지분 담보와 금융제재를 꺼내들자, LG그룹이 한발짝 물러나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출자전환 불가 입장을 보였던 LG그룹은 22일 오후 "전체 이해관계자 간의 공평한 분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률 및 회계 관계자들의 전문적이고 법률적인 판단에 기초한 분담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채권단에 전달했다. 채권단이 적당한 분담액을 제시한다면 출자전환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LG그룹 관계자는 "향후에 다시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률적인 부분에 무게를 두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입장을 전달받은 채권단은 LG그룹이 제시하는 조건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반응이다. 어쨌든 오는 29일까지는 채권단과 LG그룹이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다

이번 LG카드 논란은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봉책으로 일관한 정책이 두고두고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차 LG카드 사태는 지난 1월 벌어졌다. LG카드는 보유 현금 부족으로 현금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그때 LG그룹은 LG카드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이미 지난해 11월 대주주들은 주식 매각으로 1조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기 때문에 아쉬울 게 없었다. 운명을 결정할 키를 쥔 채권단은 결국 LG카드를 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됐다.

지난 10월 12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재경부가 2004년 1월 10일 LG카드를 산업은행에 맡기면서 손실보전을 해준다는 내용의 공문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재경부 김진표(현재 열린우리당 의원) 장관 명의로 작성된 문서는 수신인이 산업은행 총재로 돼있었다. 이 문서는 △LG카드사 정상화를 위한 주요 채권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역할 △산업은행이 LG카드사 정상화 과정에서 입을 수 있는 손실에 대한 지원방안 모색 등 두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문서는 산업은행이 LG카드를 책임지고, 그 지원방안을 정부가 약속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LG카드는 채권 2조원 만기연장과 3조5000억원 출자전환을 해주는 정상화 방안에 채권단이 합의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정부의 설득과 협박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처방을 놓고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미봉책으로 사건을 처리할 경우 또 다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걱정했던 일이 6개월이 지난 후 바로 현실화되고 말았다. 7월 5일 산업은행은 LG카드를 살리기 위해 금융기관에 1조5000억원의 신규출자전환을 요구했다. 당시 산업은행이 내세웠던 논리는 "추가 출자전환 없이는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지 못해 적기시정조치를 피할 수 없고, 자본잠식률을 50% 아래로 만들지 못하면 상장폐지될 위험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2005년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카드채 등 7조원 규모의 차입금에 대해서도 2년 만기 연장을 요청했다.

이러한 산업은행의 요구는 1월 LG카드 정상화 방안에서 16개 채권 금융회사와 합의한 "LG카드에 5000억원이 넘는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경우 위탁경영을 맡은 산업은행 이외 채권 금융기관은 추가적 금융지원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약속과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다.

당연히 산업은행 방침에 민간금융기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밑빠진 독에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시중은행들의 반발로 추가지원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시장에서는 1조5000억원 만으로는 LG카드를 살릴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였다. 부실자산을 정리하고,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적게 잡아도 2조원의 추가지원이 필요하다는 전망이었다. 이는 올해가 가기전에 어떤 식으로든 LG카드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를 수 있음을 예고하는 징후였다.

지난 10월 12일 국회 정무위 금감원 국정감사에서는 LG카드 처리가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당시 이정재 금감원장이 나와 의원들의 물음에 답하는 모습.
지난 10월 12일 국회 정무위 금감원 국정감사에서는 LG카드 처리가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당시 이정재 금감원장이 나와 의원들의 물음에 답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성인 교수 "정책 담당자들 모두 잘라라"

"금융계에는 반년에 한 번 꼴로 치르는 정기행사(?)가 있다. 바로 신용카드사 지원문제다. 지난해 3월에 카드사 문제가 불거진 후 거의 반년에 한 번씩 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금융기관들은 관치의 검은 손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곤 한다.

이번 가을에도 서서히 그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산업은행의 국감 보고서에 나타났듯이 11월부터 채권금융기관간에 약 1조 내지 2조 사이의 금액을 LG 카드에 추가출자할지의 여부를 놓고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이다."

인터넷 참여연대 칼럼 <경제 프리즘> 'LG카드 추가지원과 매몰비용'(11월 8일) 중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11월 초 이미 LG카드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을 예견했고,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전 교수는 LG카드 사태와 관련 다음과 같이 해법을 제시했다.

"우선 정책 실패이기 때문에 금감원, 재경부에서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과장급 이상의 관료들은 모두 잘라야 한다. 두번째는 산업은행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의 조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산업은행이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응분의 댓가를 치뤄야 한다. 세번째는 정치적인 편향성을 떠나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관치가 작용했다. 앞으로 운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조사가 필요하다."

전 교수는 마지막으로 "정부와 산업은행은 LG카드 문제에서 손을 떼고 이해 당사자인 순수 채권자와 LG그룹이 LG카드를 살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면서 "LG카드를 살리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 누구 보다도 철저히 계산할 수 있는 이해당사자가 나서면 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정책 실패의 반복과 밑빠진 독에 계속해서 국민의 혈세를 메우는 정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칙 없는 중재는 시장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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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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