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4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4대입법'과 관련된 국회 상임위도 실무협의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상임위 전체회의나 법안심사소위에서 협의를 마친 뒤, 합의하지 못한 쟁점법안들을 27일 이전에 4자회담에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야간 갈등이 가장 첨예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밀린 법안 30여개를 심의하며 순조로운 진행을 보였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이 국보법폐지안 상정을 재시도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이를 제청했지만 최연희 위원장의 '지연전술'로 불발에 그쳤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언론관련법안에 대해 합의하고 4개 쟁점사안을 남겨 이를 4자회담에 넘기기로 정리했다. 그러나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과거사법을 다루는 '4대4 실무회담'을 위해 8인기구를 구성했지만 법안처리 절차 등을 두고 초반부터 진통을 겪었다.
23일 열린 각 상임위의 기상도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법사위] 노회찬, 국보법 폐지안 상정 재시도.. 최연희 "일단 다른 법부터"
한나라당의 점거농성 이후 보름만에 정상화된 국회 법사위는 4자회담 결과를 기다리며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연기한 채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법안 30여개를 다루었다.
특히 이날 오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재시도하고 나서 초반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예상외의 상황 전개에 법사위원들이 웅성거리면서 잠시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연희 법사위위원장은 "전체회의에 계류된 채로 두자"며 끝내 상정을 거부했다.
노 의원은 "4자회담에 참석하지도, 참석을 요구받지도 않은 민주노동당은 회담 때문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며 국보법 폐지안을 상정해 달라는 의사일정변경 동의안을 냈다. 또한 노 의원은 최 위원장에게 "4자회담이 법사위 고유권한을 침해한 데 대해 의사표현을 했어야 한다"며 "이러니 법사위 무용론이 나오는 거 아니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노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곧바로 "제청한다"고 호응하며 지난 1일 첫번째 국보법폐지안 상정시도에 이어 다시 한번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예상외의 상황 전개에 법사위원들이 웅성거리면서 잠시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이어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4자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나왔더라도 국회법을 준수해야 하고, 의사일정변경 동의안을 명시한 국회법 71조는 비교섭단체 의원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라며 제청의사를 밝혔다.
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도 "상정 요구를 받아 들이라"고 요구하며 "우리당은 4자회담 결과를 지켜서 동의안을 내지 않지만 국회법에 따라 처리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최연희 위원장은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바쁜 일정에도 이 곳을 방문했으니 일단 시급한 법률을 처리하자"며 "나중에 (국보법폐지안을 상정할) 시간 여유가 있을 것"이라며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날 최 위원장은 국보법폐지안을 '시간 여유'를 내지 않은 채 저녁 8시께 산회를 선포했다. 최 위원장은 노 의원에게 "불만족스럽고 속상하겠지만 위원장에게도 여유를 좀 달라"고 호소하고 "(김원기) 의장님도 국보법 폐지는 법사위 차원을 넘은 것으로 각 당 대표간에 합의 볼 사항이라고 하셨다"며 회의를 애써 마무리했다.
이에 대해 노 의원은 "내일(24일) 회의 첫머리에 다시 (일정변경 동의안을 제출)할테니 상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 의원은 회의를 마친 뒤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제 동의에 제청만 할 뿐, 4자회담에 발이 묶여 국보법폐지안 상정 의지가 없다"고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문광위] 언론피해 및 구제법만 절충합의... 신문법 4개 쟁점사안은 4자회담으로
'4대 입법' 관련 상임위 중 가장 먼저 실무협의를 마친 상임위는 국회 문광위였다.
이날 오후 문광위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신문관련법 제정안, 방송법 개정안, 언론피해구제 및 중재에 관한 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대해 집중논의한 뒤, 끝내 합의하지 못한 신문관련법 중 4개 조항을 4자회담에 넘겨서 처리하기로 했다.
이날 협의에서 열린우리당은 ▲신문 점유율에 따른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안 ▲편집규약 및 편집위원회 의무화 ▲신문 광고비율을 50% 이하 제한 등을 주장했지만, 한나라당이 이를 강하게 반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반면, 한나라당이 주장한 신문방송의 겸업허용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이 반대하고 나서 합의에 실패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언론피해 및 구제법안 등에 대해서는 서로 한 발씩 물러나 합의를 이뤘다.
한나라당은 언론중재위 조정을 반드시 거쳐야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를 빼기로 양보했고, 열린우리당은 언론피해 상담소를 설치하도록 한 조항을 빼기로 양보했다. 두 당은 언론피해자가 구제 절차와 기간을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신문사의 경영자료를 문광부 장관이 아닌 신문발전기금 관리기구에 제출하고 언론사 재무제표를 자료제출목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신고제로 바꿀 경우 아무나 신문발전기금 지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열린우리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현행대로 신문업 등록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양당은 세부적인 문제에서 이견을 보인 '신문발전기금 관리기구 명칭'이나 '신문유통공사 설치·운영방안'에 대해서는 4자회담에 넘기지 않고 추후에 합의하기로 했다. 방송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여야 간 이견이 커 다음 회기에 논의하기로 했다.
열린우리당 문광위 간사인 우상호 의원은 "신문관계법은 처음엔 8∼9가지의 상당한 이론이 있었는데, 회의 결과 4가지 쟁점만을 4자회담으로 넘기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4자회담에서 결론이 나기 전에는 상임위를 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문광위가 스스로 입법권을 내팽개치고 언론개혁 '물타기'에 나섰다"며 "4자회담이라는 '원로원'에서 나올 신문법의 결론은 '단팥 없는 찐빵'이고 '죽 쒀서 개 준 꼴'이 될 게 분명하다"고 비난했다.
[행자위] 열린우리당 "8인 기구 우선", 한나라당 "공청회 우선"
과거사법을 다루는 국회 행자위는 여야에서 4명씩 실무위원들을 선정해 '8인기구' 구성에는 성공했지만, 법안 처리 시기를 두고 첫날부터 갈등을 보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법안은 충분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며 교육위 차원의 공청회를 요구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4자회담의 27일 최종합의 일정에 맞출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 행자위 간사인 이인기 의원은 "여당의 과거사 법안은 행자위에서 일방적으로 공청회까지 진행됐지만, 교육위에 제출한 한나라당 법안은 전혀 진행이 안 됐다"며 "법적 절차에 따라 (한나라당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4자회담 정신의 핵심은 '합의처리'"라며 "준비만 되면 25일에도 공청회를 할 수 있으며, 상임위를 진행하면서 공청회 끝나고 나서 법안을 본격 심의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실무회담에 참여하는 노현송 열린우리당 의원은 "4자회담 정신에 따르면 '연내처리'가 되어야 한다"며 "교육위 일정상 다음 주에야 공청회가 가능한데 결국 연내처리 일정에 맞추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노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는 (합의의) 모양새를 갖추고 실무진은 거부하고 있는 것인데, 이래서 4자회담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냐"며 8인기구 가동을 요구했다. 박기춘 의원 역시 "한나라당은 부모 따로 자식 따로 노는 집안"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한편, '4대4 회담'에서 배제된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9월부터 논의되어온 과거사법안을 4자회담이 하루아침에 원천무효시키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구태정치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열린우리당에 대해 "그동안 합법적으로 논의된 법안을 하루아침에 무력화시키고 한나라당과 야합해 역사적 반역을 저질렀다"고 비판했으며,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4자회담이 국회법을 뛰어넘는 초헌법적 기구'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회 입법권을 부인했다"고 비난했다.
[교육위] 24일 전체회의...여야 처리 방향 엇갈려
한편, 교육위원회는 당초 오늘(23일)로 예정되었던 상임위원회를 열지 못했다.
대신 이날 여야 교육위 간사인 지병문 열린우리당 의원과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접촉을 갖고, 다음날인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한나라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상정하기로 했다.
열린우리당은 전체회의에서 대체토론을 한 후에 개정안을 법안소위에 넘기고, 합의되지 않는 부분은 4자회담에 넘긴다는 방침을 세웠다. 반면, 한나라당은 "사학법안은 신중을 기해야하는 중요한 법안이기에 공청회 등 필요한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