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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와 불을 인생의 동반자로 25년간을 대장장이로 생활하고 있는 정지호씨.
쇠와 불을 인생의 동반자로 25년간을 대장장이로 생활하고 있는 정지호씨. ⓒ 류재국
“이천에서 제 손을 거치지 않은 농기구가 거의 없을 겁니다. 공산품에 밀려 찾는 이가 줄었지만 힘닿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겁니다. 그리고 대장장이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기술을 전수할 겁니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안성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다 보면 반월성을 채 지나기 전 오른쪽 나지막한 언덕길 초입에 다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로 지은 집이 보인다.

이 집에는 '쿵쾅 쿵쾅~’힘차게 쇳덩이를 두들기며 이천의 마지막 대장장이라 불리는 정지호(50세, 설성면 제요3리 231-3번지)씨가 살고 있다.

기자가 정씨 삶의 터전이자 일터인 10평 남짓한 대장간을 들어서자 정씨의 얼굴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대장간 안은 온통 녹슨 쇳덩이와 쇠망치들로 가득했다.

25살 때부터 풀무질을 시작한 정씨는 대장간에서 25년째 쇠와 불을 벗 삼아 대장장이의 맥을 잇고 있다.

정씨는 79년 형과 함께 고향인 충남 천안에서 대장간을 하다가 1980년대 초 형이 먼저 이천에 정착해 대장간을 하면서 터를 잡아 이어받았다.

정씨는 1000도가 넘는 불덩이에 땀범벅이 돼, 힘이 부치지만 그의 쇠망치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손놀림이 꼼꼼하기로 유명한 정씨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무리 녹슬고 볼품없는 고철과 농기구라도 금세 정교하고 날카로운 새 것으로 변해 버린다. 호미, 괭이에서부터 낫, 칼, 도끼, 심지어는 문고리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다.

특히 한참을 사용하다 버려지는 농기구를 담금질하는 기술은 수십년간 몸으로 체득한 정씨만이 할 수 있는 기술로, 반나절이면 새 것처럼 바뀌어 버린다.

“70~80년대 새마을 운동과 함께 농기구 수요가 크게 늘던 시절에는 3~4명의 종업원을 둘 정도로 전성기도 있었다"는 정씨는 요즈음은 기계 발달로 수제품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몇몇 농민들은 지금도 그의 대장간을 찾아,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고 말한다.

정씨의 손에서 만들어져 사용되는 농기구는 그 종류와 수를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요즘도 장날이면 어김없이 대장간 문을 열고 농심(農心)을 담금질하는 정씨. 지역 농민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진정한 이 시대의 장인이다.

"손님은 많지 않지만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는 정씨는 "대장기술은 몇 십 년 이상의 꾸준한 노력과 경험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앞으로 지역에서 대장간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며 "우리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대장간 일을 배워 보려는 젊은이를 후계자로 두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 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부인 유영환(43세)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오늘도 부지런히 놀리는 정씨의 망치질 속에서 녹슬었던 쇳덩이는 어느덧 빨갛게 달구어져 곡괭이와 칼 등 각종 생활용품으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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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93년부터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투철한 언론관으로 직업에 대해선 자부심과 긍지를 느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정론직필 통해 바르고 깨끗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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