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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버선발로 우리를 반겨주셨습니다. 얼른 방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지민이는 엄청나게 자라 있었습니다. 이제 8개월 좀 넘은 아기가 똑바로 앉아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지민이를 와락 안았습니다.
"지민아, 아빠다. 잘 있었니?"
아빠를 반길 거라는 마음으로 지민이를 안았지만 반응은 영 딴판이었습니다. 얼굴을 한참 쳐다보는 듯하더니 입술을 실룩실룩거립니다. 그리고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음을 터트려 버립니다. 저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한참을 달래고 나니 지민이는 겨우 엄마, 아빠에게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울던 얼굴은 어디 갔는지 연신 우리에게 애교를 떨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예쁘게 자란 지민이가 그저 좋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더욱 문제는 크리스마스인 그 다음날 발생했습니다.
장모님에게 휴식시간도 드리고 어머니에게 지민이를 보여드리기 위해 집으로 향했습니다. 너무나 예쁘게 자란 지민이를 어머니에게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엄마 우리 왔어요?"
"응 그래…… 우리 지민이도 왔나?"
어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지민이를 와락 안고 말았습니다. 사고는 거기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낯선 환경에다 너무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난 지민이가 놀라고 만 것입니다. 지민이는 자지러지듯이 울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달래도 되지 않았습니다. 계속 같이 있던 외할머니도 없고 집도 낯선 곳이라 지민이는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서럽게 우니 아내도 함께 웁니다. 전 너무 당황스러워 지민이를 계속 달랬지만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놀란 눈치입니다. 예쁜 손자를 보고 싶어 날짜를 꼽아 가며 기다렸는데 막상 만나니 손자는 울기만 합니다. 아들이 우니 저까지도 울고 싶어집니다. 온가족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지민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나면 좀 괜찮을까 싶어 좀 더 기다려 보았습니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난 지민이는 또 울기 시작합니다. 두리번거리며 외할머니를 찾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 계십니다.
"아이고, 내가 지민이한테 자주 갔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어머니는 자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너무나 아픕니다. 드디어 지민이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태어나 2개월만 엄마 아빠와 같이 살고 내내 외할머니와 살았던 지민이에게 다른 사람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다시 처가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어머니 댁에 도착해 다섯 시간도 있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한없어 서운한 눈으로 우리에게 얼른 가라고 재촉하십니다. 아들을 자주 보여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민이는 처가댁에 돌아오고 나서야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다시 예전의 모습대로 애교도 떨고 활발하게 돌아다닙니다. 장모님도 외출하셨다 얼른 들어오십니다. 지민이는 할머니 모습에 더욱 생기를 찾습니다.
지민이는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다가도 안경만 벗으면 울고 맙니다. 안경 벗은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자신과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명하게 구분할 정도로 많이 커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가슴 아파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만난 기쁨은 잠깐이고 냉정한 현실에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유가 되지 않아 아들과 따로 사는 대가는 그렇게 혹독하게 다가왔습니다.
2004년은 목표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었지만 2005년의 목표는 지민이와 함께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더욱 더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