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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명랑씨, 2호선 홍대입구역 5번 출구 근처 꼬치구이집 '피쉬&그릴'에서
소설가 이명랑씨, 2호선 홍대입구역 5번 출구 근처 꼬치구이집 '피쉬&그릴'에서 ⓒ 김선영
공연예매사이트 티켓링크가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네티즌 20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다시 보고 싶은 2004년 최고의 작품' 연극 부문에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와 <에쿠우스>에 이어 <아름다운 사람들>이 3위에 올랐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원작은 실제 영등포시장에서 성장한 시인 겸 소설가 이명랑의 <삼오식당>. 지난 15일, 이명랑씨를 만났다.

시인 이명랑에서 소설가 이명랑까지

2호선 홍대입구역 5번 출구.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많이 서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을 여성이 무척 많은지라, 내가 찾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휴대전화를 걸었다. 이명랑씨는 "지금 열심히 걷고 있어요"라고 재미있게 말한다. 그녀의 소설처럼 재미있게. 홍대 앞에서 볼 일을 마치고 오는 중. 빗속을 바삐 걷고 있을 생각을 하니, 먼저 와 있는 내가 오히려 미안해진다.

<꽃을 던지고 싶다> 표지
<꽃을 던지고 싶다> 표지 ⓒ 웅진닷컴
부슬비 속에 이렇게 어울리는 미인이 있을까! 거의가 20대 여성이건만, 30대 초입의 그녀가 주위의 많은 여성보다 더 파란 이미지로 나타난다. 결코 영등포시장 같은 느낌은 없다. 왜, 그런 여성 있지 않은가. 청순하면서도 지적인, 지적이면서도 명랑한. 그녀의 첫 인상, 바로 그런 모습이다. 그녀와 함께 비를 피해 들어간 곳은 생맥주도 파는 꼬치구이집.

이명랑씨(32)가 문학인이 된 것은 1997년 문학무크지 <새로운>을 통해서다. 발표작은 <에피스와르의 꽃>. 소설이 아닌 시였다. 시인 이명랑이 탄생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거친 끝에 시인 되기를 꿈꾸었다. 소설보다 매우 압축적이고 상상적인 공간, 그것은 곧 안식처였다.

<행복한 과일가게> 표지
<행복한 과일가게> 표지 ⓒ 샘터
그러나 그녀는 장르의 구분을 두지 않는, 폭넓은 시야를 가진 문인이었다. 서울 토박이지만, 비교적 가난한 동네인 영등포시장통에서 자라온 그녀는 영등포시장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퍽 다행한 일이었다.

"저는 서사를 중시하는 쪽이에요. 어느 날 문득 무언가 말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겼죠. 소설은 절실해서 쓰게 되잖아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시로 출발했지만, 몸 담고 있는 생활 공간의 괴리감을 담아내는 산문적 발상이 따랐던 것이지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소설 습작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삼오식당> 표지
<삼오식당> 표지 ⓒ 시공사
그녀가 직접 시장통에서 성장하면서 겪은 삶의 체험과 관조의 힘이 빚어낸 장편소설 <삼오식당>은 영등포 시장을 무대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펼쳐보인다.

그 이전 영등포 시장을 무대로 성장하여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성장기 소녀가 겪는 성의 정체성 혼란과 극복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낸 그녀의 첫 장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와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을 나온 지식인이면서도 과일가게를 차린 특별한 장사꾼 이명랑과 영등포 재래시장 상인들의 삶을 유쾌하게 담아낸 수필집 <행복한 과일가게>는 그녀가 본격 재래시장통 소설 <삼오식당>을 내놓기 전에 선보인 전주곡이 아니었을까.

유창하고 겁 없는 소설 <나의 이복형제들>과 자유 의지

이어서 1년 반만에 내놓은 그녀의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은 아주 활기찬 추리소설인 듯싶은 프롤로그로 문을 열고서,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의 세태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엔 인도인인 깜뎅이와 조선족 출신 다방 여종업원 머저리 등 이방인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내레이터인 '나'(영원) 역시도 만신의 운명을 타고나 세상을 떠도는 이방인이 아니었던가.

최근작 <나의 이복형제들> 표지
최근작 <나의 이복형제들> 표지 ⓒ 실천문학사
'나'는 지하실에서 날갯짓하는 까치처럼 자유 의지를 향하여 날아가도록 다른 이방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인도인인 깜뎅이와 조선족 출신 다방 여종업원 머저리를 자유와 만나도록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추적의 올가미에 걸려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자유이리라. 불안정한 자유.

그녀의 문체는 유창하고 활기차다. 겁 없이 당당하다. 해야 할 말을 숨기지 않는다. 현장이 눈앞에 선명히 보인다. 게다가 신나는 선율을 타고 있다. 보기에 안쓰러운 장면이더라도 그렇다. 그래서 사실적이고 재미있다. 읽으면서 어깨춤이 난다. 읽는 동안 어느 한 구절도 지루하여 짜증나도록 하는 법이 없다.

어쩌다 장롱 밑이나 화장대 뒤편으로 굴러가 어두컴컴한 그늘 속에서 곰팡이가 슬어가는 귤처럼 깜뎅이 거시기는 시들시들했다. 간당거리다가 그냥 푹 꺼져버릴 것 같은 그 촛불은 성냥 한 갑을 다 쓴다 해도 불을 붙이기는 힘들 것처럼 생겨먹었다.

-<나의 이복형제들> 49쪽에서


이 얼마나 초라하고 서글픈 이방인의 모습인가. 소설 속에는 멍청이 퍼그도 나오지만 꼽추 왕눈이의 경호원 노릇을 하는 진돗개도 나온다. '나'는 진돗개를 몹시 경계한다. 이명랑씨 역시 어려서부터 개 같은 짐승을 두려워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 무서워요. 어렸을 때 마당을 중심으로 사글세방이 빙 둘러 있는 집에 살았죠. 부모님은 일 나가 있고, 학교 갔다 와서 자물통 따고 들어가면 좁은 부엌과 마주치죠. 아버지가 닭을 기르고 개도 길렀어요. 도사견이었죠. 냄새도 나고 얼마나 무섭던지."

"이건 이명랑씨 소설이야"

여성작가 가운데는 장편보다는 단편을 쓰는 이가 더 많다. 문학상도 단편에 치우쳐 있다. 아직 어린 두 아이의 다정한 엄마이면서도, 서사성 짙은 장편 쓰기에 힘을 쏟고 있는 이명랑씨는 우리 문단에서 참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명랑은 흔한 사랑 타령을 쓰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상념에 너무 집착하여, 어느 유명작가를 흉내내듯 작가의 시선이 심장 저 깊은 데까지 갉아먹어가는 소설이 얼마나 많이 유행하였던가. 그 소설이 그 소설 같고 그 작가가 그 작가 같은 감상투의 소설이 얼마나 많이 나왔던가.

그러나 이명랑씨는 다르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분명히 서민의 냄새가 나고 사람의 냄새가 난다. "이건 이명랑씨 소설이야" 느낄 수 있게끔, 분명한 자신만의 획을 굵게 그어 놓았다.

최근에 <현대문학>과 <문학사상>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그녀는, 요즘 <작가세계>에 장편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Kissing faver'. 이 소설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10대 소녀 5명의 이야기다. 그녀가 10대를 보냈던 1980년대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살면서 느꼈던 계급이라는 올가미를 떠올렸어요. 요즘 영등포에서 10대를 만나보면 과거에 만났던 10대와는 많은 부분 달라졌지만, (삶의 질에서)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아요.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 PC방, 원조교제 마인드의 지배를 받고 있죠. 도시 속의 영등포에 사는 10대들의 자유롭지 못한 삶.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요? 내면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희망은 많은데 일시적 욕구충족을 위해서 옷차림 등으로 표현하죠."

도시 속에서 소외받는 계층을 그녀는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표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표지 ⓒ 명예의전당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가 유치원에서 한 시에 끝나는데 하필 비가 와요. 우산을 안 가지고 갔으니까 집에서 작업하는 저는 우산을 들고 마중나가죠. 그런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처한 가구의 아이들도 있어요. 심지어는 매 맞고 사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가슴아픈 일이죠."

이명랑씨는 못 가진 자의 아픈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먹은 밥그릇에 젓가락 놓는 걸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며 당당하게 얘기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환경 자체가 다른 걸, 자기 집 아이들은 시작부터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얘기죠."

'Kissing faver'와 영등포 10대 소녀 정체성 찾기

재래시장통에서의 자신의 성장 체험과 그동안의 주변환경 관찰을 밑거름으로 글을 써오다, 요즘엔 현재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영등포 10대들의 정체성 찾기에 나선 이명랑씨. 그녀는 구도에 짜맞추고 짜깁기하듯 쓰는 방식을 싫어한다고 했다.

"시 쓰기는 어떻습니까? 집필 계획은 자주 세우시나요?"
"매일 세우죠. (웃음) 필력이 생기면 꼭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게 있어요. 역사소설인데, 비장의 카드로 준비해 두었죠. (웃음)"

어떤 소재냐고 물었지만, 아직은 공개할 수 없다며 그녀는 미소지었다.

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실천문학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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