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샘터,2002)을 읽다. 이 책은 이미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의 '장영희, 문학의 힘', 같은 <한국일보>에 게재된 소설가 이청준씨의 서평 '장영희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 <중앙일보> 정운영 논설위원의 '10월의 크리스마스' 등 여러 지면에 기명 칼럼과 서평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장영희는 거의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서 살아 온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다. 그는 서강대 영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얼마 전까지는.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척추암으로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3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암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이름만을 달리 한, 그러나 여전히 치명적인 두번째 암과 마주하고 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병세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살아내고 한편으로 견뎌가며 보듬고 사랑해 온, 녹록치 않은 삶을 담고 있다. 장영희는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가족, 친지, 동료,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과의 소소한 일상들을 알뜰살뜰 개켜서 책 속에 갈무리해 놨다. 이 안에는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다.
저자는 드문드문,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들이 겪었던 여러 곡절들을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음기까지 머금으면서.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디에 가고 싶었다"(124쪽)라는 문장을 읽자니, 늙은 어머니의 숱 없는 머리 속을 보는 것 마냥 까닭 없이 서러워진다. 눈이 흐려져서 잘 읽혀지지 않는다.
인터넷신문 <대자보>가 꾸준히 전하고 있는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고투와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적의(敵意)는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무참하게 한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한 번 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지만 장애인도 인간이기에 "어디에 가고 싶"은 것이고 그럴 때마다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름 아닌 한국에서는.
저명한 영문학자였던 장왕록 교수의 딸에게도 차별과 멸시는 사정을 두지 않았다. 국내 어느 대학 박사 과정 시험에서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한 날이었다. 장영희는 동생과 함께 영화 <킹콩>을 보며 자신이 킹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전율처럼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바로 그 킹콩이라는 걸.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짓밟고 죽이려고 한다. 기괴하고 흉측한 킹콩이 어떻게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내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 그것은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226쪽)
하지만 장영희는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운명에 항소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한껏 보듬었다. 책의 부제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불꽃처럼" 사랑했다. 그는 자신에게 다정해졌고, 때문에 강해졌다.
실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랑과 감사, 이해와 용서, 인간다운 삶에 대해 밝고 솔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비 갠 후 화단 앞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깨끗하고 따뜻하다. 문장은 물웅덩이를 노란 장화를 신고 걷듯, 금방이라도 참방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이 경쾌하다.
한 일간지의 논설위원의 글을 훔쳐 말하자면, 섣불리 희망을 말하거나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지금 이 세상에선 기만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걸어 나갈 수밖에. 아래 입술에는 새파란 이 자국이, 손바닥에 새빨간 손톱 자국이 여기저기 패일지라도 주어진 길을 걸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거센 독려가 아닌 다정한 위로가 아닐까? 한 겨울 눈물 바람으로 거리를 나서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마음에 따뜻한 군불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사족을 한마디 보태자면 이렇다. 이 책을 읽고서 자칫, 장애인 관련 문제에 대해 장애인 개인의 자질이나 의지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자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정작 자신의 장애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거나 하더라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어 이런 오독을 낳을 수도 있다.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일지 모르나 그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생각했으면 한다.
저자는 암 투병으로 인해 한 신문에 연재하던 <장영희의 문학의 숲>이란 칼럼을 끝내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입원한 지 3주째,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는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장영희 교수님의 쾌유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