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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웅의 조심스런 말에 구양휘는 그들이 자신을 찾아 온 목적을 알았다. 일단이라는 꼬리를 달았지만 화산과 종남의 제자들이 죽은 것은 초혼령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귀파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단언할 수 있소. 초혼령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번 양만화에 대한 초혼령의 행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소. 또한 화산의 제자들의 죽음을 후배와 같이 조사했었소.”
좀 더 단호하게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오해의 소지를 남긴다면 귀찮아질 수 있다. 지금 담천의가 초혼령을 가지고 있음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구파일방에서 자칫 생각을 달리하면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위험해질 수 있다.
“어느 분이시오?”
화웅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선은 담천의에게 가 있었다. 구파일방의 정보력은 빠르고 정확하다. 이미 인상착의나 특징 등을 알고 왔을 것이다.
“소생이오.”
담천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예상했었던 일이다.
“보여줄 수 있겠소?”
화웅의 말에 담천의는 순순히 초혼령을 꺼내 건네주었다. 화웅은 초혼령과 담천의를 번갈아 살펴보다가 물었다.
“어떻게 가지고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소?”
대답하려면 길어진다. 또한 반드시 대답할 이유도 없다.
“개인적인 일이오.”
담천의의 거절에 옆에 있던 창룡신검 유은비의 눈 꼬리가 올라갔다. 무림에서 보면 새카만 후배다. 더구나 초혼령이 어찌 개인적인 일인가? 며칠 전 소림에서 나온 초혼령의 비사는 초혼령이 전 무림과 관계가 있는 일임이 밝혀졌다. 헌데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대답을 하지 않겠다면 초혼령은 잠시 화산과 종남에서 보관하겠네. 다만 그 사건과 자네가 관계없다고 밝혀지면 돌려주겠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할 요량이다. 하지만 유은비의 말에 담천의는 얼굴을 굳혔다.
“얼마 전 초혼령을 보여 달라며 빼앗으려 했던 오독공자란 작자가 있었소. 순순히 돌려주어서 손을 자르지는 않았지만 본인은 남의 물건을 손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오.”
“입이 너무 거칠군.”
담천의의 말에 유은비가 책망하듯 노기 띤 음성을 발했다. 담천의의 말은 그들과 오독공자란 자와 다를 바 무엇이 있겠느냐는 말이었고, 그것은 그들을 모독하는 말이었다. 가져가겠다면 손을 쓰겠다는 의미로 그들을 무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풍운삼절을 꺽은 실력이니 스스로 과신할 수는 있다 해도 말이 너무 심하군.”
화웅의 입에서도 언짢은 어조의 말이 나왔다. 지금 그들이 이만큼 자제하는 것도 구양휘와 그 일행 때문이었다.
“만약 두 분께서는 귀파의 장문영부(掌門令符)나 비전지보(秘傳之寶)를 가지고 가겠다는 자가 있다면 어찌하시겠소?”
담천의의 말에 노기를 애써 참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빛이 변했다. 이 자는 자신들을 도둑쯤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자신들이 누군가? 그들은 구파일방의 한 방파의 수뇌부다.
“그 말은 자네가 초혼령주 임을 확인시켜주는 말인가?”
“본인은 물론 초혼령주는 아니오. 하지만 그 초혼령은 분명 본인의 것이오.”
“지금 말장난 하자는 것인가?”
그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놀린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참고 있던 유은비가 폭발하듯 노기를 터트렸다. 그의 두 눈에 살기가 스쳤다. 이 자에 대해 대충 들은 바는 있지만 너무나 무례하고 건방지다. 화산과 종남의 일이라면 전대고수들도 일단 양보를 해 주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더구나 자신들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들의 부탁을 거절할 자가 얼마나 될까? 헌데 이 자는 무엇을 믿고 이리도 당당한가?
“본인 역시 말장난 할 생각이 없소. 사실을 말한 것뿐이며 추호도 틀림이 없소.”
“꼭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릴 자군.”
말을 하는 유은비의 전신에서 살을 에는 듯한 무형지기(無形之氣)가 발출되었다. 웬만한 인물이라면 내상이라도 입을 정도로 강하다. 그 기세만으로 상대를 살을 벨 것 같은 예기(銳氣)가 느껴졌다.
그와 함께 담천의의 전신에서도 무시 못 할 예기가 폭사되었다. 그는 젊었다. 상대가 누구든 피하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는가? 모든 일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헌데 그때였다.
“구파일방이라 해서 그 위세로 누구에게나 이리 핍박을 할 수 있는가? 구파일방이라면 내 물건을 가져가도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무림의 법도란 말인가?”
담천의가 무어라 하기 전에 광도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 나왔다. 광도는 거리낌이 없다. 그는 매사에 그렇다. 어차피 그는 성(姓)도 이름도 없고, 그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며, 심지어 그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는 과거가 없는 사내다.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났을 때 전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육 개월에 걸쳐 몸을 추스르고 온전하게 되었을 때 그의 머리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몸은 자신이 무인(武人)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위험이 닥쳤을 때 그의 몸은 기억과는 상관없이 반응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칠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구양휘로부터 담천의가 왜 초혼령을 가지고 있게 되었는지 일행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들었다. 그의 가문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할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구파일방이라는 위세로 강요하고 있다.
“…!”
“…!”
화웅과 유은비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다. 언제 그들이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는가? 이쯤 되면 자신들의 위신은 간 곳이 없다. 광도라는 괴걸에 대해 들어 본 바도 있다. 도대체 이 작자들은 호랑이의 간이라도 삶아 먹은 듯 예의도 없고 겁도 없다.
“건방진 작자들 같으니라구….”
유은비의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그것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구양휘가 헛기침과 함께 한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험, 두 분 선배께 후배가 한 말씀드리겠소.”
구양휘가 아는 한 광도나 담천의는 기세를 꺾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라도 그들은 물러설 사람들이 아니다. 상대 역시 구파일방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오, 명예를 중시하는 인물들이다.
“초혼령은 담제에게 무척 귀중한 물건이오. 하지만 사건과는 전혀 무관함을 후배가 보증하겠소. 만약 담제가 이번 귀파의 사건과 연관이 있으면 후배의 목숨을 내놓겠소.”
구양휘의 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가 무림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 역시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의 뜻밖의 말에 화웅과 유은비는 놀람과 동시에 짙은 의혹을 느꼈다. 아무리 일행이라고는 하나 구양휘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친한 사이라면 그들도 재고해 보아야 했다.
“아미타불. 소승은 소림의 혜청이오. 구양시주의 목숨이 부족하다면 소승 역시 목숨을 내놓으면 되겠소이까?”
혜청에 대해서 어찌 그들이 모르랴. 소림에 청년괴승이 있다는 말은 입 밖에 낼 일은 아니로되 구파일방의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림방장까지도 그의 괴행을 못 본 척 해 준다는 광무선사의 유일한 제자. 같은 구파일방에 속한 소림의 제자까지 나서자 그들은 내심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
두 사람은 노기를 애써 가라 앉혔다. 구양휘와 혜청의 태도로 보아 물러설 기세도 아니고, 무뚝뚝한 구양휘가 나선 것은 상대를 감싸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물러날 여지를 주려는 의미임을 짐작 못할 화웅이 아니다. 화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으레 그랬듯이 구파일방의 위세로 너무 안이하게 일을 처리하다보니 이렇게까지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더니….”
그는 말과 함께 초혼령을 담천의에게 건네주었다. 이들과 꼭 다투어야 할 필요는 없다. 계속해서 핍박을 가한다면 피치 못하게 손을 써야 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되던 자신들에게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라도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후배들을 핍박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구양대협의 말을 믿고 돌아가겠소. 하지만 만에 하나 관련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으니 그리 아시오.”
화웅은 말과 함께 담천의와 구양휘를 바라보고는 유은비와 함께 객점을 떠났다. 아마 그들의 마음속에는 앙금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파일방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무림을 은연 중 장악해 온 것이 문제라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역시 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살펴들 가시오.”
떠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포권을 한 일행을 보며 구양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리쳤다.
“잊어들 버려.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즐겁게 가자구.”
그러고 보니 일행들 모두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는 생각에 시장기가 돌기 시작했다.
(22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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