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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월 24일
조선일보 12월 24일 ⓒ 조선일보
신문도 비슷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등이 ‘기아사로 추정’했을 뿐이다. 사건이 주말에 발생한 관계로 신문은 월요일인 20일 일제히 이 사건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비쩍말라 숨진 네살 아들, 부모가 장롱속 방치'에서 "집안에 먹을 건 쌀 한톨 없었다"고 했다. 또 다음날 사설 '네살짜리가 무슨 죄가 있어 굶어 죽어야 했나'에서는 "네살짜리 장애아가 장롱 속에서 굶어죽었다....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동사무소측은... 관련서류를 갖춰 오도록 대답하는 것으로 그쳤다... 복지담당공무원 7500명이 있다... 자상하게 그 집 사정을 상담해 줬더라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문화일보>는 20일 ‘가난 때문에... 서러운 죽음’에서 “정신지체 영세민 부부의 네살난 아들이 굶어 죽고... 경찰에 따르면 김씨 가족은 관할 행정기관은 물론 수년간 한 동네에서 살아온 이웃들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20일 ‘얼마나 굶주렸기에...5세아이 장롱서 숨져’에서 “어린 것이 얼마나 주렸기에 삐쩍 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었을까...김씨 가족은 관할 관청은 물론 수년 간 같은 마을에서 생활해온 이웃에게서조차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생활해 오다 이 같은 사태를 맞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20일 ‘집안엔 쌀한톨 안보였다’에서 “네살배기 남자 어린이가 집 안방 장롱 안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집안의 냉장고가 텅 비어 있는 등 먹을거리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매일신문(대구)>은 ‘4세아 장롱서 앙상한 모습으로 숨져’에서 “어머니마저 온전치 못했다. 경찰관계자는 ... 부모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자주 굶었지만 주위의 도움은 별로 없었다”고 했다. 또 같은 날 사설 ‘네살 어린이가 굶어서 죽었다면...’에서 “어머니도 정상인이 아니었다... 당해 구청이나 동사무소는 도대체 뭘 했는지 참으로 원망스럽다”고 했다.

<영남일보(대구)>는 ‘누가 이 아이를 굶겨 죽였나?’에서 “경찰은 이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정신지체장애 3급으로 알려진 숨진 김군의 어머니.... 이웃주민 누구도.... 관할 대구 동구청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무지한 부모와 이웃의 무관심 속에서 병원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굶어 죽은 김군”이라고 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언론들의 보도 내용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은 숨진 아이를 3년 6개월 정도 진료했던 소아과 전문의가 12월 21일 “숨진 아이가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 증세를 보였다”고 말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언론의 흥분, 그 속에 제3의 피해자가 있었다

숨진 아이는 3년여 동안 100여차례 진료를 받았으며, 응급실에도 10회 이상 실려갔다. 아이의 부모는 가난한 생활 형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영양제도 사서 먹였고, 아이의 정밀 검사도 받고 싶어했다. 이러는 가운데 김씨 가족은 애초의 전세금 1000만원을 다 소진해 이번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는 보증금 100만원도 내지 못하고 월세도 5개월 치가 밀리는 형편이었다.

또 숨진 아이의 엄마는 ‘정신지체장애 3급’이 아니다. 3년 이상 그를 접했던 담당 의사는 “둘째와 셋째에 대한 애정이 강했고, 다소 산만하기는 했지만 정신질환으로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실 숨진 아이의 엄마는 ‘정신지체장애 3급’으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장롱에 ‘방치(유기)’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숨진 아이의 아버지는 “다른 아이들이 시신을 훼손할까봐 장롱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제례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장롱 앞에 상을 차려놓고 물과 쌀을 떠놓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담당공무원의 ‘무책임ㆍ무관심’에 대해 살펴보자. 숨진 아이가 2004년 3월~11월까지 저소득층 보육료 지원 사업 대상자로 월 7만8600원의 지원을 구청에서 받은 것으로 봐서 행정당국에서 이들 가족의 처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빈곤층이 대략 600만명으로 추산되고 이들을 도울 복지공무원이 7500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담당 공무원이 각 가정마다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2~3배 정도의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선에서의 호소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에 약 1천명 정도를 늘릴 예산을 배정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담당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이 드러난 이후 언론은 자신들의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아니면 말고...' 오보에 과장 보도- 사과 없는 언론

영남일보 12월 21일
영남일보 12월 21일 ⓒ 영남일보
우선 가장 적극적인 보도 태도를 보인 대구의 <영남일보>부터 살펴보면 21일 ‘굶어죽었나? 희귀병인가?’에서 숨진 아이를 3년 이상 진료했던 소아과 전문의의 “진료 당시 김군은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었다”는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22일 ‘장롱 속 주검의 아버지가 털어놓는 사연’에서 “어떤 부모가 자식을 굶겨 죽이겠냐.... 자식들만큼은 굶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제발 막내딸이라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길 바란다”는 숨진 아이 아버지의 심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반면 대구의 <매일신문>은 다른 태도를 보였는데 23일 ‘기자노트-장롱 속 죽음 그 후....’에서 “희귀성 난치병이 사망 원인으로 드러난다면 지금껏 비난을 받았던 사람들은 면죄부를 쥐게 된다.... 안타까움은 부모에게 돌아간다. 제대로 밥도 못먹고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이를 그냥 두었던 부모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며 숨진 아이의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듯한 보도를 했다.

그리고 <연합뉴스> 21일 ‘복지직 공무원 업무 과다ㆍ개선 필요’와 22일 ‘사회안전망 허술’ 그리고 22일 ‘말뿐인 사회안전망’에서 ‘사회복지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만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매일신문 12월 23일
매일신문 12월 23일 ⓒ 매일신문
또 21일치 <연합뉴스>‘영세민 5세兒 사망, 병사 가능성도’와 22일치 <한겨레>‘장롱서 숨진 네 살배기 희귀병 앓았을 수도’와 <중앙일보>22일치 ‘숨진 김군 질환 가능성’ 등의 기사에서, 숨진 아이를 진료했던 소아과 의사의 말을 인용해 “사인(死因)이 희귀 난치병의 하나인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용두사미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을 후속 보도가 많이 미흡했다. 이런 언론의 태도는 본의는 아니겠지만 이번 사건을 감정적ㆍ동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아이를 숨지게 한 부모에 대한 원망, 얼마간의 도움의 손길, 그리고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악순환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근본적 문제 해결은 또다시 미뤄지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된 보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 기자가 '툭 터놓은' 언론의 자화상

우리들의 이 난감한 물음에 답하는 취재기자의 고백이 있어 소개한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화살은 다름 아닌 부모에게로 향했고 ‘굶어 죽인 것 아니냐’ ‘죽도록 방치한 것 아니냐’ 등 엄청난 의혹들까지 끄집어냈다”며 취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는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동생과 오빠를 잃은 누이들에게 가족을 떠나 보낸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 줘버렸다. 큰 뉴스거리라는 그릇된 욕심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성급하게 판단하고 지나치게 확신했다. 진실을 전하기보다는 선정적인 기사 한 꼭지를 만들어 내는 데 급급했다”고 반성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위에서 잘못된 보도의 대부분이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는 데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것은 취재 기자들이 경찰의 조서나 발표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이번 사건에서도 ‘기아사’ 이외의 사망 원인을 의심해볼 만한 단서가 취재 초기에 여럿 보인다. ‘숨진 아이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는 점이나 ‘한 집에서 생활한 큰 딸(7)은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는 점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런 의구심에 주목하기보다는 경찰의 말을 더 믿었다. 이것이 관행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효율적인 측면을 강조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실 보도와는 거리가 먼 태도라고 보았을 때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할 병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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