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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돌이를 하고 계신 아주머니
탑돌이를 하고 계신 아주머니 ⓒ 나영준
작년 12월 31일 집에서 다니는 절에 나갔습니다. 온 가족이 열심히 다니는 곳이지만 혼자만 ‘나이롱 신자’를 자처 했던 곳입니다. 법당에 들어가기 전, 탑돌이를 하고 계신 아주머니가 보였습니다.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다 보니, 문득 새해에 어떤 소원을 빌고 계실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가 108배를 하고 있노라니, 과연 나 자신은 무엇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까 싶어 부끄러워졌습니다.

‘뭐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고 제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니 남들의 수행도 기복(祈福) 행위로 보였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활에서 마음수행이나 잘 해야겠다는 자책을 하고 돌아 섰습니다. 그런데 불과 이틀 만에 간절히 바라는 일이 생겼습니다.

친구 중에 ‘신불자’, 흔히 말하는 신용불량자가 있습니다. 그리 보기 힘든 유형의 사람이 아닌 평범한 친구입니다. 사정이야 들어 보면 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합니다. 어쨌건 본인의 과실이 있으니 그렇게 된 사정까지야 구구 절절히 밝힐 만한 일은 아닐 듯합니다.

아무튼 힘겨워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원래 내성적이고 타인에게 자신의 고충을 쉽게 털어 놓는 사람이 아니라 속속들이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상상 이상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식사도 간신히 버티어 나갈 정도의, 곡기만 끊지 않는 정도였습니다. 작년 한 해 그렇게 비쩍비쩍 마르는 친구를 보며 애타는 마음이 커져 같습니다. 해결해 주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주위 친구 모두 같은 바람이었을 겁니다.

그러던 작년 늦가을, 전화통화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유난히 힘없고 가늘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적으로 ‘혹시 이 친구가 희망을 놓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아마 20여 년 간의 만남으로 느낀 직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젊은 놈이 갤갤 해서는, 정신 좀 차려.”
“모르겠다, 차릴 정신도 없다.”
“××한다. 낼 모레 죽기라도 할 거냐? 기운 좀 내라구.”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던 단어를 그렇게 빽-하고 내 뱉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멈칫하던 친구의 숨소리도 제 느낌을 알아 챈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그 얼마 뒤, 친구는 죽을 힘을 다해서 다시 한 번 살아보겠노라고 술잔을 건네 왔습니다. 자기의 그런 기분을 친구들이 읽어냈다고 덧붙이며 말입니다. 덕분에 주위 사람 모두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분도 그리 길게 가지는 못했나 봅니다. 어찌 됐건 살겠노라고 아등바등 대던 친구가 얼마 전 교통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다행히 사람이 다치진 않았지만 그간 모아놨던 돈을 사고 처리에 물고 나니 친구는 그만 맥이 풀린 듯합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왜 이렇게 세상이…’ 하며 신세한탄에 빠졌을 겁니다. 그래서 다시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아까 다른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를 했는데, 자꾸만 그 친구의 한숨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통화한 친구의 목소리는 그리 어둡지 않았습니다. 술 냄새도 묻어나지 않았고 기어들어 가는 음성도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또 다른 친구에게 별 일이야 있겠냐며 다시 전화기를 들고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합니다. 절망에 빠지는 것 정도야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혹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겁이 납니다.

친구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 고통을 겪는 사람도 본인이고 고통 속에서 자신을 끌고 나올 수 있는 이도 본인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친구들의 위로가 힘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미안합니다. 친구에게 현실적 힘이 되어 주지 못함을. 그래도 또 믿습니다. 친구가 다시 희망을 갖고 일어설 것을.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과연 나는, 새해에 타인에게 얼마나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제가 믿는 종교에 간절히 기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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