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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속에 피어나는  봄
한겨울 속에 피어나는 봄 ⓒ 김강임
겨울이 익어가는 1월은 한해가 시작되는 봄이다. 지나간 것들은 아쉬움 속에 차곡차곡 묻어두고 새것을 꺼내 입는 시간이 바로 1월이다.

비상을 꿈꾸는 한 마리의 새처럼 멀리 그리고 높이 날기 위해 발돋움을 하는 시간, 1월은 겨울이라는 절기를 무너트리고 마음 속에 새봄을 싹트게 한다. 마음 속 찌꺼기를 훌훌 털어버리고 텅 빔으로 한해를 연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늘 설렘이 앞선다. 그 설렘은 간절한 기도와 함께 익어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 밑에서 들끓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송구영신으로 새로운 것을 꿈꾼다.

1월은 처음 세상을 바라보았던 눈으로 달력을 꺼내 놓고 가족의 생일과 기념일 메모하고,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비망록을 정리한다.

눈덮힌 한라수목원
눈덮힌 한라수목원 ⓒ 김강임
을유년 새해 첫날, 제주는 백설기 같은 흰 눈이 온 섬을 뒤덮었다. 꽁꽁 온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서 찾아간 곳은 제주시 노형동 광이오름 자락에 있는 한라수목원이다. 그곳에는 벌써 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눈속에 피어있는 진달래
눈속에 피어있는 진달래 ⓒ 김강임
새것을 준비하고 새것을 맞이하기 위한 꿈틀거림. 그것은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해를 잉태하는 일출처럼 산고의 고통이 따른다. 사람들은 일출의 찬란함과 신비스러움은 기억하지만 그 꿈틀거림의 고통과 아픔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을유년의 한해는 겨울 속에 피어나는 1월의 꽃처럼 아픔과 고통도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진달래가 피어있는 뒷편에는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눈싸움을 하고 있다.
진달래가 피어있는 뒷편에는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눈싸움을 하고 있다. ⓒ 김강임
서설의 풍경을 축복이라도 하듯 깔깔대며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뒤에 수줍은 듯 피어 있는 진달래. 백설에 묻힌 분홍빛 꽃잎은 분명 추위에 떨고 있는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내 마음처럼 간절하다. 세상은 아직 겨울인데 홀로 피어 있는 진달래. 눈 속에 피어 있는 진달래가 기지개를 켠다고 세상이 어디 봄이던가?

눈속에 피어 난 수선화
눈속에 피어 난 수선화 ⓒ 김강임
뽀드득, 뽀드득. 겨울을 밟으며 발자국을 옮기니 청초하게 피어 있는 수선화가 얼굴을 내민다. 고통과 아픔을 참고 견디며 언 땅을 비집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수선화. 이 나이에 인내의 고통이 배우려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무리를 이뤄  피어있는 수선화
무리를 이뤄 피어있는 수선화 ⓒ 김강임
그러나 자연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준다. 꽃 속에 피어난 수선화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던 지난 한해를 돌아본다. 혼자는 힘이 들어 무리를 이뤄 피어나는 눈 속의 수선화의 모습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실감케 한다. 혼자보다 둘이서, 둘보다는 여럿이 모여 힘을 합하면 겨울 꽃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눈 위에 남긴 발자국처럼 힘들었던 삶의 응어리는 표적이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힘들고 바쁘게 뛰어온 지난 한해였는데, 뒤돌아보니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 김강임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는 꽃봉오리는 가지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요지부동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인간의 모습처럼. 세상에 빛과 어둠이 교차하듯,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겨울 속에서 봄을 꿈꾼다. 1월은 1년이 시작되는 봄이다. 그래서 1월에 듣는 여명의 종소리는 훈훈하며 포근하다.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 ⓒ 김강임
삐쭉이 얼굴을 내미는 봄꽃들, 서설 속에 봄을 진통하는 꽃봉오리처럼 봄도 멀지 않으리.

덧붙이는 글 | 을유년 1월2일 다녀온 신춘기행문입니다. 한라수목원 가는길은 제주시 노형동 광이오름자락에 있으며 제주시 노형로타리에서 1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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