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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쌀협상안을 4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농촌출신 의원들의 강한 반발도 예상되지만, 결국 비준안이 통과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월 16대 국회 당시 FTA 비준안에 반대하며 단상을 점거한 농촌출신 의원들.
정부가 쌀협상안을 4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농촌출신 의원들의 강한 반발도 예상되지만, 결국 비준안이 통과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월 16대 국회 당시 FTA 비준안에 반대하며 단상을 점거한 농촌출신 의원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해 12월 30일 정부는 쌀에 대한 10년 관세화 유예와 의무수입량 증가(7.96%)를 골자로 하는 9개 주요 쌀수출국들과의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이행계획서를 WTO 사무국에 공식 통보했다. 정부는 오는 4월 WTO 사무국의 이행계획서 검토가 끝나는대로 임시국회에 비준안을 제출, 쌀협상안을 확정짓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협상 결과가 대체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애초 미국 등이 요구한 관세화 유예의 대가(의무수입물량 16%)를 절반 이하로 줄였고, 관세화 유예 기간 중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관세화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라는 것이다.

반면 전농과 한농연 등 농민단체들은 협상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수입쌀이 당장 시장에 방출되면 국내 쌀농업은 벼랑 끝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농민단체의 공통된 시각이다. 농민단체의 반발 탓에, 오는 4월 임시국회는 쌀협상 비준안 통과를 놓고 정부와 여야간 치열한 대립도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비록 겉으로는 '치열한 대립'이 이뤄지더라도, 최종적으로 국회가 정부의 협상안을 부결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무엇보다 지난해 재개된 쌀협상 진행 과정에서 국회가 정부에 시종일관 끌려만 다녔기 때문이다.

언론보다 못한 국회의원들, 휴지조각이 된 '결의안'

지난해 4월 정부가 쌀협상을 재개한 이후 여야 의원들은 모든 정보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다. 국회의원들이 쌀협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언론에 조금씩 흘러나오는 내용뿐이었다. 쌀협상과 관련된 내용을 보고 받아야 할 국회 농림해양위 소속 의원들조차 농림부 국감에서 "우리가 언론보도만 보고 협상 내용을 알아야 하느냐, 우리가 언론보다 못하느냐"는 항의를 해야 할 정도였다.

당시 농림부는 "쌀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만큼 협상 타결 전에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옳지 않다"며 의원들을 무마시켰다.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정보 공개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국익 우선'이라는 농림부의 논리에 말려들었고, 결국 어떤 내용도 얻어낼 수 없었다.

이처럼 무기력했던 국회의 모습은 쌀협상 타결 직전 여야 의원들이 내놓은 재협상촉구결의안 처리 과정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8일, 정부의 쌀협상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거세지자 여야 의원들은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쌀관세화유예연장협상재협상촉구결의안'이라는 긴 명칭의 이 결의안에는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23명을 비롯해 한나라당 29명, 민주노동당 10명, 민주당 7명, 자민련 5명, 무소속 2명 등 총 76명의 의원들이 서명했다. 사실상 원내에 들어와 있는 모든 정당의 의원들이 총망라된 셈이다.

하지만 전체 국회의원 중 4분의 1이 서명한 이 결의안은 내내 처리가 지연되다가 연말을 지나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결의안은 상임위(농해수위)에서조차 논의되지 못했고, 본회의 안건으로는 올라가지도 못했다. 정부의 협상결과가 발표된 현재, 결의안은 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된 상태다.

결의안에 서명한 일부 여당의원들은 벌써 입장을 뒤집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당시 재협상촉구를 결의한 것은 쌀협상이 확정 안된 상황에서 정부가 좀 더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와 함께 절충점을 가지고 농민 입장이 많이 반영되도록 하라는 취지였다"며 "(현재로서는) 정부에서 결정한 것을 여당 의원 입장에서 뒤집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야당 의원들도 입장을 바꾸기는 마찬가지다. 역시 결의안에 동참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야당이기 때문에 정부 협상안에 기본적으로는 비판적"이라면서도 "(이미 협상된) 의무수입량은 어쩔 수 없고, 국내 시판될 수입쌀의 양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점을 가지고 접근해 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선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20일 정부의 쌀협상안에 반대하며 독립문 위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 20일 정부의 쌀협상안에 반대하며 독립문 위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 협박에 밀리는 국회 "너희가 책임질 수 있느냐?"

국회가 결국 정부 협상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연내에 쌀협상을 타결시키지 못하면 관세화 의무가 부과된다는 논리로 협상을 서둘러 왔다. 농림부가 해를 넘기기 직전 협상 결과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4월 비준안을 제출할 정부의 대국회 설득 논리도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협상 시한이 이미 끝났으므로 국회가 비준안을 부결시키면 쌀의 관세화가 이뤄지는데, 그럴 경우 국회가 책임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협상안이 국회에서 부결된다면 정부는 "쌀의 관세화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국회가 비준동의를 거부해 쌀의 관세화를 막을 수 없게 됐다"는 주장을 펼 것이고, 농민들의 비난은 모두 국회가 떠안게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는 올해 관세화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미 WTO에 이행계획서를 냈는데, 국회에서 비준해주지 않으면 곧바로 관세화로 간다는 주장을 펼 것"이라며 "이는 협박성 비준동의안 제출이 아니냐"고 비난했다.

강 의원은 또 "국회 비준이 거부된다면 자연히 관세화가 된다는 것은 정부의 유권해석일 뿐"이라며 "임시국회 전에 의원들을 만나면서 정부의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때만 나타나는 '농민당'

국회가 정부의 쌀협상안에 의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시기 탓도 크다. 지금은 '선거철'도 아니고, 다음 총선까지는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의원들도 농민들의 표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1월 총선을 앞둔 국회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로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농촌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나름대로의 교섭단체를 구성해 FTA 비준안 통과를 결사적으로 막았다. 이규택 한나라당 의원 등이 주도한 이들에게 당시 언론은 '농민당'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물론 이들 '농민당'이 FTA 비준안의 육탄저지도 불사한 것은 다분히 지역구 주민들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총선도 지났고, 다음 총선까지는 시간도 많이 남아 국회의원들이 지난해처럼 당론을 거슬려가면서까지 쌀협상안을 반대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강기갑 의원은 "선거가 1년이나 아니면 몇 개월만 남았다면 국회의원들도 정말 열심히 뛸 것 같은데 지금 행태로 보면 (협상안 반대가) 잘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러가지 이유로 국회가 머뭇거리는 동안, 정부의 협상안은 대세를 굳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4월 대한민국 국회는 과연 농민들이 요구하는 정부의 재협상을 촉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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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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