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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즉석복권을 이따금 사는 편입니다. 두 장쯤 샀다가 꽝 맞으면 곧 그만두죠. 그런데 어쩌다가 5000원에 당첨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가 문제죠. '두 장 산 것 중에 한 장이 5000원이니 오늘은 확률이 높은 운세구나' '아까 첫 전화가 왔을 때 시각이 내 생일과 같더니 오늘 운세가 좋은가 보다' 이렇게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거금을 털어 복권을 사보는 겁니다.

5000원 당첨 때문에 한 번은 5만원어치를 산 일도 있죠. 이게 100장이나 되더군요. 5000원 바꾼 것도 있으니 110장이나 됩니다. "이렇게 긴 뱀도 없을 것이다. 이거야말로 용이야!"라고 웅얼거리며 복권판매소에 아예 자리잡고 앉아 열심히 동전으로 긁어댑니다. 긁을 동전에 따라 운세가 달라지기라도 할까 싶어, 10원짜리로 긁을까, 50원짜리로 긁을까, 100원짜리로 긁을까, 500원짜리로 긁을까 제법 궁리하다가 500원짜리로 긁기로 합니다.

이게 이상하게 잘 맞아떨어지네요! 1000원 당첨은 자주 있고, 5000원 당첨도 여러 차례. 다 긁어낸 뒤 합산해 보니, 거의 본전에 가깝더군요. 또 다시 복권으로 바꿉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자꾸 당첨금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5만원쯤이 3만원쯤으로 줄고, 3만원쯤이 1만5000원쯤으로 줄고, 1만5000원쯤이 급기야는 5000원쯤으로 줄어듭니다. 결국 5만원은 몽땅 날아가고, 처음 5000원 당첨된 만큼만 남은 셈이죠.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뒤, 5000원쯤 되는 당첨금을 복권으로 바꾸어 이번엔 10원짜리 동전으로 긁어 보지만, 그것마저도 500원으로 줄어들고, 마지막엔 그것 한 장마저도 '꽝'입니다. '별것 아니지'하고 웃으려고 해도 얼굴에 불편한 심기가 내비치는 것을 감출 재주가 없더군요.

이렇게 해서 1주일 써야 할 돈을 날려 버리고 나니, 여기저기 외상 먹고 살아야 할 신세가 가련해집니다. 기껏해야 5만원어치 즉석복권 사는 게 1년 동안에 한 번쯤 있을까 말까 한 '최대한'의 투자이지만, 날이면 날마다 경마오락실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돈을 잃고 살아갈지 물어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겠죠? 어떤 사람이 경마오락실 앞에 앉아 누군가에게 이동통신을 하는데, 거의 죽은 몰골이 되어 "돈 조금만 빌리자"는 투의 말을 하고 있더군요.

제가 사는 곳은 허름한 시장 동네인데, 경마오락실이 요 몇 달 사이 갑자기 늘어났습니다. 문 연 지 얼마 안된 삼합집도 어디론가 떠났고, 그 자리에 경마오락실이 들어섰지요. 비어 있던 옆 공간에는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상품권 교환점이 따라붙었네요. '돈 날리기'를 유혹하는 영업점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거기에 들어가 오로지 한 방으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서민들이 그만큼 적지 않다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이야. 어떤 사람은 부모 잘 만나 처음부터 잘 나가지만, 난 물려 받은 게 없는 데다 사업 자금을 빌릴 데도 없으니 매일 이 모양 아닌가."

이렇게 불평하는 가난한 사람이 세상에는 적지 않죠. 더구나 가난한 사람이 점점 더 많아져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재산이 아주 많다면 모르지만, 중산층 수준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빚 보증을 서주었다가 덩달아 가난해지는 사람, "한번만 더, 한번만 더"하면서 아파트를 담보 잡혀 사업에 투자했다가 연쇄 부도를 당해서 가난해지는 사람….

▲ 구구 <당신은 왜 가난한가?> 표지
ⓒ 북폴리오
마침, 가난한 사람들 '따끔하게' 정신 차리게 하는 책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중국인 구구(古古)의 <당신은 왜 가난한가?>!

<당신은 왜 가난한가?>를 읽다 보면 무릎을 "탁탁" 치게 될 겁니다. 구구는 2003년에 이 책을 펴냈는데, 펴내자마자 화제작으로 세간에 알려지더니 곧 중국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한국어판은 2004년 8월 25일 출간). 잇따라 펴낸 <당신은 왜 부자인가?> 역시 대만, 홍콩 등지에서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구구는 문화·경제 저널리스트로서 기염을 토했습니다. 아마도, 구구만의 독특하고 속시원한 통찰력이 인기를 끈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구구는 시작부터 게으른 노숙자를 비판하고 나섭니다.

어느 겨울 날, 한 노년의 백만장자가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하던 중 담벼락에 기댄 채 햇볕을 쬐고 있는 부랑자(노숙자)를 발견했다. 백만장자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일을 하지 않소?"

부랑자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왜 일을 해야 되는데요?"
"일을 하면 돈을 벌지 않소?"
"돈을 벌어 뭐 하게요?"
"돈을 벌면 집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족과 즐겁게 지낼 수 있지 않소!"
"그 다음에는요?"
"늙어 돈을 벌 수 없는 나이가 되어도 의식주 걱정 없이 나처럼 이렇게 매일 산책을 하며 햇빛을 쬘 수 있죠!"
"지금도 나는 햇빛을 쬐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는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분명히 위로를 얻을 만한 얘기다.

(중략)

그러나 만약 부자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면 어떠했을까?

"햇빛이 생활의 전부는 아니잖소? 그렇다면 해가 지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소?"
- <당신은 왜 가난한가?> 5~6쪽에서


중국인들은 안분지족(安分知足), 즉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정신적인 최고의 경지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만약 정말로 아무 욕심도 없고 마음이 편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람직할 게 없을 테죠. '하지만 만약 갖고 싶은데 얻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구석에 웅크린 채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안분지족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이고 무능함이며 비겁함일 뿐'이라고 꾸짖으며 구구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난함을 직시해야만이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7쪽에서

구구는 이 책을 '당신이 처한 상황' '당신의 생각' '당신의 약점' '당신의 방법' '당신이 나가야 할 길', 이렇게 모두 5장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소제목부터가 그 내용을 한번 보지 않고는 궁금해서 못 견디도록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것은 제목을 잘 뽑는 저자의 각별한 재주 덕분이겠지만, 각 꼭지마다 담겨진 내용 또한 가슴에 쏙쏙 와닿으며 저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었습니다.

사기꾼의 목표 대상은 대부분 노인이거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부자들이 뒷골목의 암달러상들, 야바위꾼들, 골동품 판매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흔치 않다. (중략)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과정 없이 너무 광고만 당연하게 믿고 모든 것을 내놓는다. 그리고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사기꾼들은 도망간 지 오래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31쪽 '가난한 사람은 쉽게 속는다'에서

'몇 년 전, 이탈리아의 한 고급 가죽 브랜드 회사가 중국 진출에 앞서서 소비행태를 조사하러 가기 위해 시장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이런 고급 가죽제품을 사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부류가 유흥업에 종사하는 아가씨들이었다. (중략) 당신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벌고, 또 열심히 쓰며 즐긴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그 다음은? 여전히 돈이 없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51쪽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가난하다'에서


'2장 당신의 생각'을 보아도 무릎을 탁 칠 깨달음이 다가옵니다.

때로는 부자도 자신의 부유함이 지겨워져 가난한 사람의 것을 닮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찢어진 옷이나 기운 옷들 같은 빈티 나는 룩을 입고, 짚신이나 낡아 빠진 물건들로 집을 장식한다. 그러나 이런 일도 부자가 했을 때는 멋있게 보인다. 진짜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것을 절대 멋으로 소화해내지 못한다. (중략)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과 비교해 언제나 한 박자가 늦다. 부자가 금 장신구를 두르고 있을 때, 가난한 사람은 옷에 난 구멍을 메우느라 바쁘다. 부자가 자연주의를 이야기하며 야채를 먹고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온몸에 금빛 장신구를 두르고 상표가 드러나는 양복을 입고 다닌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76쪽 '가난한 사람의 모방심리'에서

▲ <당신은 왜 가난한가?> 77쪽 만평
ⓒ 북폴리오
부자인 경우는 똑똑한 머리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 법으로 대머리를 지혜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가난한 사람이 머리가 빠지면 영양부족이며, 조로의 상징으로 본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82쪽 '가난한 사람의 약점'에서


이밖에도 5장 모두가 모두 뜻깊은 소제목으로 꼭지마다의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유리한 조건을 빼앗긴다' '가난한 사람의 명함은 간단명료하다' '가난한 사람의 습관' '가난한 사람의 인터넷'…. 위에 예를 든 것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본문뿐만 아니라, 식후에 커피 한잔 음미하듯이 디저트처럼 정리해 놓은 '쓴소리'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가령 '가난한 사람은 큰 돈을 한꺼번에 벌고 싶어한다'를 보면 이렇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은 중국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팔렸던 모양입니다. 바로 이 베스트셀러에 대해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역시 한 글자 한 글자씩 써서 완성된 것'이라는, 즉 '노력의 결과'라는 평범하면서도 깊은 교훈을 알려주고는, 가난한 사람들이 꼭 들어 두면 좋을 '쓴소리'를 글 뒤에 이렇게 덧붙여 놓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큰돈을 벌고 싶어한다. 단칼에 수천, 수억을 벌고 싶어하지만 당신에게 그런 날카로운 칼이 있는가? -<당신은 왜 가난한가?> 141쪽에서

이 책에서 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던져주는 '쓴소리'를 몇 가지 더 빌려놓으면 이렇습니다.

부자는 바보가 아니다. 오늘 당신에게 무료로 즐기도록 했다면, 내일은 몇 배로 받아내는 사람이 그들이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171쪽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자본이 없다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그들에게는 자본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243쪽에서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현실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당신은 왜 가난한가?> 264쪽에서


이 '쓴소리'들을 잘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쓴소리'가 아니라 '덕담'이 될 것입니다. 이 밖에도 위에 소개한 만평처럼 경영 처세에 교훈을 주는 재미있는 한컷 만평와 네컷 만화가 곳곳에 담겨 있어서, "그렇지!" 하고 소리내어 무릎을 치도록 만들어 놓았더군요.

새해, 여전히 가난한 사람 코드로 살아가고 있는 저는, 구구의 처세서 <당신은 왜 가난한가?>를 천천히 읽어 나가는 동안에 가난한 나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며,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저 자신의 오랜 타성을 꾸짖을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은 왜 가난한가?> 구구 씀/박지민 옮김/2004년 8월 25일 북폴리오 펴냄/272쪽/값 9500원


당신은 왜 가난한가?

구구 지음, 박지민 옮김, 북폴리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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