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밝은 빛이 내려오자 다사다난했던 2004년은 역사 속에 지고 2005년이 빛과 환호성과 함께 세계인의 가슴 속에 다가왔다.
100년째 새해 알린 '시간의 축제'
2005년 타임스퀘어 신년전야 크리스탈 볼 떨어뜨리기 행사가 열린 타임광장에는 미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75만 인파가 세계 최대 '시간의 축제'를 열었다.
2005년 새해를 알리는 크리스탈 볼이 떨어지고 카운트다운이 끝난 직후, 타임광장은 축포와 오색의 색종이 그리고 참석자들의 희열에 찬 환호성 속에 절정에 달했다.
참석자들은 테러와 전쟁의 악순환 그리고 동·서남아시아 지진과 해일에 따른 대재앙으로 엄청난 희생자와 고통을 낳았지만 올해는 세계에 전쟁과 재난이 사라지는 평화의 신기원이 되기를 하나같이 희망했다.
이날은 크리스탈 볼 떨어뜨리기 100회째를 축하라도 하듯이 예년과는 다르게 영상의 포근한 날씨(화씨 55도; 섭씨 12.8도)를 보였고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도 2005년으로 넘어오면서 맑게 개었다.
지난 1904년부터 시작되어 100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뉴욕타임스> 발행인 아돌프 오크스가 처음 타임스퀘어 원(One Times Square) 옥상에서 불꽃 축제를 벌이면서 시작되었고 이 불꽃 축제가 금지되자 아돌프는 옥상에서 일렉트릭 볼(electric ball)을 떨어뜨리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것이 오늘날 새해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이날 행사는 토크쇼 인기 진행자 레기스 필빈이 그 동안 단골 사회자였으나 뇌졸중으로 입원 중인 ABC TV 딕 클락을 대신해 처음으로 타임광장의 마이크를 잡았다. 레기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5-6시간 이상을 타임광장에 서서 기다리는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인기 팝가수들과 함께 흥겨운 노래와 멘트로 축제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게스트로 참석한 뉴욕 출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불룸버그 뉴욕 시장과 정확히 2004년 오후 11시 59분(미국 현지시간) 타임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크리스탈 볼 하강 버튼을 함께 눌렀다.
파월 장관은 "해마다 이맘때면 세계 각국에서 근무해왔는데 크리스탈 볼이 정확한 시간에 떨어지는 것을 보거나 소식을 듣고서야 새해가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디지털로 하나된 젊은이들
백인과 흑인, 아시아와 히스패닉 등 전세계에서 온 남녀노소 젊은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인종과 연령의 차이를 넘어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하나가 되어갔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다'는 말처럼 세계도시 뉴욕은 온세계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한순간의 시간 앞에 마술처럼 세워놓았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면서 미국을 관광하다 홀로 참석한 나탈리는 "이미 크렘린광장 신년 이브행사장에 있던 부모님과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면서 "테러위험에 불안을 느끼는 부모님께는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타임광장 참관사실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나탈리는 "새해 1월 약혼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밝히고 "새해가 되는 순간 소원을 빌기 위해 왔다"고 말하며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타임광장을 응시했다.
일부 젊은이들은 경찰 몰래 생수병에 담아온 위스키를 주변 사람과 나눠먹으며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추위를 달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답게 손에 손에 들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모르는 상대방과 기념촬영을 함께 하며 스스럼 없이 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되었다. 인종과 종교 그리고 문화적인 벽으로 단절된 세계가 2005년으로 향하는 타임광장의 젊은이들에게는 과거의 일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뉴욕 시경은 "행사 당일 뉴욕시에 구체적인 테러위협은 없다"면서도 만일의 테러공격과 행사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오후 3시 30분경부터 시간대별로 단계적으로 타임광장으로 통하는 진입로를 폐쇄했다.
경찰은 또 바리케이드를 이용해 곳곳에 비상통로를 만들어 행사진행요원과 보도진들의 통행을 도왔고 시민들을 구역별로 묶어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도록 하고 이동을 제한한 채 출입구에서 삼엄한 검색을 실시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 경찰헬기가 타임광장 상공을 선회하는 가운데 거리마다 무장 경찰관과 말을 탄 기병경관 그리고 경찰견 등을 동원해 경계를 펼쳤으나 행사는 별다른 사고 하나 없이 무사히 끝났다.
을씨년스러운 '그라운드 제로'
한편 신년전야 맨해튼 남쪽 사라진 세계무역센터(WTC)에서 바라본 뉴욕의 하늘은 새해맞이로 설레는 타임광장과는 대조적으로 잿빛 하늘에 가려 음산했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공사가 진행 중인 '그라운드 제로'를 살펴봤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은 지난 2001년 9월 11일 붕괴되어 3년이 지났지만 아직 기초 부분의 복구공사도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 마치 어제처럼 그날의 사고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콘크리트와 철책으로 가려진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그라운드 제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같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직도 생생한 현장감을 던져주고 있다. 주변의 피해 빌딩도 복구공사를 위한 검은 차광막을 아직도 둘러쓰고 있어서 을씨년스런 모습을 더하고 있다.
"다른 날과 똑같다. 다만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테러위협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가 떠돌기도 하지만,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폐허로 변한 세계무역센터 남쪽 바로 맞은편 리버티 스트리트에 위치한 소방서 '래더 10' 소방대원 존 모라비토가 테러 당시 순직한 동료 소방관의 동판 옆에서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005년 새해 뉴욕은 어두움과 밝음이 교차하는 두 얼굴을 간직한 채 새해를 맞았다. 타임광장에 함께 한 사람들은 '타임광장의 빛'이 2005년을 살아가는 세계인의 가슴 속에 밝은 세상을 여는 '서광'으로 영원히 빛나기를 빌어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