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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장 오룡번(五龍幡)
오룡번(五龍幡)은 확실히 그럴 만한 물건이었다. 무림인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탐욕의 대상이었다. 누구나 가지고 싶은 물건이고 목숨을 걸고라도 얻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한 오룡번이 바로 이곳에 있는지 여부를 물은 것이다. 통천신복 구효기의 말 한마디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하지만 구효기는 대답을 하지 않고 시선을 창밖으로 두고 있었다.
통천신복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정작 질문을 한 적령추살뿐 아니라 장안루에 있는 모든 인물들은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구효기의 입은 좌중의 누군가가 구효기의 탁자 위로 금덩이 하나를 던지기 시작하여 이쪽저쪽에서 십여개의 금덩이가 그의 탁자 위로 떨어지고 그것들을 주머니에 쓸어 담은 다음에야 비로서 열렸다.
그는 그 정보의 가치만큼 댓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오룡번에 대한 정보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오룡번은 분명 이곳에 있소.”
통천신복 구효기는 한자 한자 강조하듯 말을 뱉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것은 묻지 마시오. 노부는 설사 알아도 절대 대답하지 않겠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적령추살의 얼굴이 쉴 새 없이 울그락 붉으락 변했지만 그는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가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확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만약 통천신복 구효기가 누구라고 지목한다면 그 인물은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흐흐 .... 좋소. 하지만 만약 오룡번이 이 자리에 없으면...?”
“당연히 노부는 당신에게뿐 아니라 복채를 던져 준 사람들에게 백배로 갚아 줄 것이오.”
통천신복 구효기의 다섯번째 원칙. 자신의 말이 틀리면 복채의 백배를 돌려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에게 복채를 백배로 돌려받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적령추살의 다그침도 만만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소? 설사 오룡번이 이 자리에 있다 해도 그것을 가진 자가 내보이지 않고 이 자리를 뜬다면 이 자리에 없는 것과 다름이 없잖소?”
흉맹하기만 한 그의 외모에 맞지 않게 세심한 데가 있었다. 더구나 그의 말은 교묘하기까지 해서 구효기가 오룡번의 소재를 밝히도록 하는 격장지계(激將之計)의 의미도 함축되어 있었다. 구효기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자칫 백배로 물어 주어야 할 판이었다.
대답 하나로 그는 거의 황금 오십여냥을 벌었다. 그러나 그가 이 자리에 오룡번이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는 황금 오천만냥이라는 상상도 못할 액수를 물어 주어야 한다. 통천신복 구효기는 고개를 끄떡이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장안루가 문을 닫기 전에는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
“당신으로 인하여 많은 돈을 벌었으니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운세 하나 가르쳐 줄 수 있소. 하지만 그것을 듣고 나서 노부에게 욕이나 손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말할 것이오.”
통천신복 구효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듣지 않아도 나쁜 소식임에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구효기가 그런 약속을 받아 낼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듣고 싶어지는 것이다. 적령추살 도삼득은 구효기의 혀에 농락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약속하고 말았다.
“좋소. 설사 내가 죽는다는 말을 해도 당신에게 욕하거나 손을 쓰지 않겠소.”
이 자리에는 많은 무림인들이 있다. 이런 자리에서 약속을 한다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지켜야 할 약속이 된다.
“바로 그것이오. 당신은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나 당신이 머물던 감숙으로 간다면 살 수 있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사흘 동안은 살겠지만 오일 이내에 죽소.”
그 말에 적령추살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감숙에서 이 먼곳까지 온 이유는 오룡번 때문이었다. 헌데 돌아가지 않으면 죽는다니...
“이런 미친....”
그는 “놈”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한 약속을 수백개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길 수는 없었다. 그는 흉맹한 눈으로 잠시 통천신복 구효기를 바라보다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쯧.... 살 기회를 놓치고 마는구나.....”
구효기는 혀끝을 차며 입안에서 중얼거리다 아직까지 앞에 있는 회의무복사내를 바라 보았다. 그러자 그 사내는 품속에서 은 몇 덩이를 꺼내 구효기 앞으로 밀었다.
“본인은 돈하고 인연이 없어 이게 가진 것 다요. 물론 신복이 정한 기일은 분명 지키겠소.”
앞의 말은 이해가 되는데 뒤의 말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통천신복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바로 적령추살 도삼득을 삼일 동안은 살려 주겠으며 오일 안에 반드시 죽이겠다는 말임을 이해할 사람은 통천신복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굳이 회의무복사내가 그 말을 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무례한 자를 살려둘 그의 수하들이 아니었다. 아마 주위에 사람이 없었다면 적령추살은 이미 산목숨이 아니었다. 그 말로 인해 적령추살은 지금 즉시 감숙으로 도망간다면 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흘의 목숨을 연명할 것이었다.
통천신복 구효기는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가지보(無價之寶)이자 피를 부르는 마물(魔物) 세 가지가 이곳에 있음을 알고 있구려.”
“확실히 그렇소.”
그 말에 좌중에서 나직한 감탄과 함께 웅성거림이 있었다. 무가지보이자 피를 부르는 마물이 이곳에 세개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분명 오룡번은 무가지보이자 피를 부르는 마물임에 틀림없다. 헌데 그 나머지 두가지는 무엇인가?
“당신은 오룡번을 찾으러 오지 않았소. 오히려 오룡번이 아닌 한가지가 당신에게는 더 절실하게 필요하오.”
오룡번에 버금가는 무가지보가 있을까? 그 말을 듣고 있는 주위 인물들의 얼굴에 의혹이 서리기 시작했다. 오룡번이 나타났다는 사실 하나로도 무림을 경동시킬 정도인데 오룡번을 원하지 않고 다른 것을 위해 왔다니.... 하지만 회의무복사내는 당연한 듯 대답했다.
“물론이오.”
“당신은 이미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전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요.”
구효기의 말에 흑의무복사내의 눈가에 감탄의 빛과 함께 흐릿한 살기가 흘렀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모른다고 했지만 어쩌면 구효기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신복은 알고 있지 말아야 할 일까지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모양이오.”
“그것이 내 일이고 내 팔자요.”
통천신복이오, 만박거사라 불리는 구효기다. 그의 말대로 무림사 모든 일을 알아야 하는 것이 그가 평생 해 온 일이고, 그의 운명이다.
“좋소.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는 이곳에 있소. 하지만 노부도 그를 찾아낼 수 있다고는 자신할 수 없소.”
회의무복사내는 고개를 끄떡였다.
“본인은 신복께서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그와 동시에 그는 옆에 앉아 있는 호면귀를 바라보았다. 호면귀는 탁자에 양 손을 놓은 채로 전신을 의자에 파묻은 듯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호면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여유롭게 보이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있고,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이 멈춰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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