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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는 장한본의 옆에 있는 장판수를 보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다부진 체격에 눈빛이 맑아 보였다.

“좋을 대로 하시오.”

정혼과 장한본은 급히 채비를 갖춰 후금군에게서 노획한 말 세 필을 골라 타고서는 새벽에 길을 나섰다. 장판수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한때 군졸로서 말을 돌본 적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장판수는 아버지가 다소의 무리를 하면서도 자신을 데려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 했다.

‘위험한 곳으로부터 날 떼어내려는 뜻이구나!’

이들이 점심 즈음에 곽산에 도착하니 수 백 명의 사람들이 허둥거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어찌된 것인가? 오랑캐들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정혼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당장이라도 말머리를 돌려 다른 길을 알아보려 했다. 장한본은 허둥거리며 도망가는 사람을 막아서고선 사정을 물어보았다.

“오랑캐가 아니라 섬으로 쫓겨 갔던 되놈들이 나와서 노략질을 하고 있습네다! 그 놈들은 살아있는 사람도 잡아먹으니 필시 인두겁을 쓴 짐승임에 틀림없소!”

장한본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섬으로 쫓겨 갔던 되놈들이라면 바로 가도에서 둔전을 하며 후금의 뒤를 노리던 명나라의 장수 모문룡이 이끄는 부대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망치는 조선 백성들의 뒤에는 큰 칼과 창을 든 채 노략질을 벌이는 명나라 군사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이놈들!”

장한본은 눈이 뒤집힌 채 활을 움켜잡았다. 이런 행패를 두고 본다면 지금쯤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장한본의 처와 딸들도 이런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만 두시오! 상대는 명나라 군사가 아니오! 지금은 서둘러 장계를 가지고 가는 일이 급하오!”

정혼의 만류에 장한본은 무슨 소리냐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쳐 날뛰는 명나라 군사가 뭐 대수란 말입네까!”

장한본은 활에 화살을 재어 명나라 군사들에게 연거푸 쏘아 대었다. 두 명의 명나라 군사가 화살에 맞아 꼬꾸라졌다. 명나라 군사들의 시선은 자연히 장한본 쪽으로 향했으나 화살을 막을 방도가 없자 그대로 도주하고 말았다.

“망할 놈들!”

지나는 길에 즐비하게 쓰러진 사람들의 시체를 보며 장한본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장판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대체 얼마나 조선이 만만해 보이면 왜놈이 짓밟고, 오랑캐가 판을 치며 되놈이 욕을 보인단 말입네까! 정진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정혼 또한 한때 겁을 집어먹기는 했으나 명나라 군사들의 행패가 한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장계를 조정에 전하는 한편 이 일 또한 알릴 것이오.”

한스러움을 뒤로 하고 쉴 새 없이 말을 달리던 장한본 일행이 흑참봉이란 곳을 지날 때 마치 땅 밑에서 솟아나듯 말을 탄 병사 두 명과 한 무리의 병사들이 그들의 길을 가로막았다. 바로 명나라 군사들이었다.

“이런! 놈들이 아까 일을 보복할 작정인가 보오!”

명나라 군사들은 알 수 없는 말을 내 뱉으며 창을 휘둘렀다. 장한본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서는 정혼과 장판수에게 길을 둘러 가도록 당부한 뒤 명나라 군사들을 노려보았다.

“아버지, 와 그러십네까? 저와 같이 가는 것이 아닙네까?”

장한본은 장판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 애비가 한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중요한 장계를 조정에 전하는 일을 그르칠 뻔 하고 있다. 일은 저지른 이가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말 탄 놈 둘만 쓰러트리면 저들도 끝까지 뒤쫓지는 못할 것이다.”

장한본은 정혼이 망설이자 품속에서 평소 즐겨 쓰던 편곤(도리깨 모양의 타격 병기)을 꺼내들더니 정혼과 장판수가 탄 말 엉덩이를 손으로 쳐 다른 곳으로 달리게 한 후 자신은 명군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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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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