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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한나라당 의원.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당명 개정과 조직개편 등 당 쇄신방향을 놓고 '반영남보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연말 4대 개혁법안 협상을 거치면서 '보수색'이 강화된 박근혜 대표와의 비판적 거리 유지에 소장파에 이어 온건파 의원들이 가세한 것.

지난 3일 소장파를 대표하는 원희룡, 남경필, 정병국 의원과 수도권 출신 개혁성향의 임태희, 박진, 권영세 의원은 회동을 갖고 "앞으로 당 쇄신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며 의기투합했다. '돌밥회(돌아가면서 밥 사는 모임)'라는 이름의 친목모임으로 출발한 이들은 최근 당의 보수회귀 움직임에 우려를 표시하며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콘텐츠 변화 없는 당명개정은 '도로한나라당'"

이런 가운데 6일 낮 임태희 전 대변인을 만났다. 임 의원은 연초 대변인직을 사퇴한 뒤, 평의원으로 돌아와 모처럼 여유 있는 표정을 보였다. 임 의원은 "대변인으로 있으면서 소신과 다른 입장을 전달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그간 지도부와의 이견이 적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임태희 의원은 '영남보수색'이 강화된 한나라당의 현 상태를 '고장난 배'에 비유하며 당 쇄신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당이 두 개로 쪼개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임 의원은 "항로도 레이다도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며 "배의 수리 가능성이 없을 경우 보트를 내려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같이 말했다.

또한 임 의원은 박 대표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당명개정과 관련, "시기를 재보궐 선거 뒤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며 "콘텐츠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이름만 바꾸면 뭐하나, '도로한나라당'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4자 회담에서 보여진 박근혜 대표의 협상태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임 의원은 "원칙에 대한 지나친 완고함이 '원리주의자'로 비쳐질 수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임 의원은 "친척이나 지지자들 얘기 백날 들어봐야 소용없다, 상대방의 진가를 알려면 적이 누구냐를 봐야 한다"며 "사회의 중심물결에 있는 주류국민이 누구인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7조 찬양고무 조항의 삭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한나라당이 지지층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하는 '돌밥회' 활동과 관련, 임 의원은 지도부를 겨냥 "키를 잡은 사람들이 제대로 못할 경우 의원직을 걸고서라도 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시대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리얼타임'으로 즉각 문제를 공식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임 의원은 영남중진들로부터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김덕룡 원내대표에 대해 "5월 임기까지 마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당의 안팎 상황이 그렇지 않은 쪽으로 가고 있다"며 박근혜-김덕룡 간극에 대해서는 "서로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있다 봤는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당직개편, 박근혜 원톱체제 강화될 것"

임태희 의원 누구?

재선의 임태희(50·경기 성남 분당을) 의원은 재경부, 청와대 등을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전문성과 합리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대선 이회창 후보의 경제브레인으로 활약했고, 2003년에는 최병렬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다.

작년 7월 대변인에 임명돼, 전여옥 대변인과 공동대변인 역을 수행해왔다. 실용, 합리, 전문성을 내세우는 '푸른정책'과 '국민생각' 소속으로, 당내에서는 온건개혁파로 분류된다.

이밖에 작년 11월 이종걸, 임종석, 박진 의원 등과 함께 제6회 백봉신사상 '신사의원 베스트 12'로 뽑히기도 했다.
임태희 의원과의 인터뷰는 6일 낮 의원회관에서 약 2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대변인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뭐였나.
"무엇보다도 내 생각과 다른 (당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건강도 좋지 않다. 16대말 최병렬 대표 비서실장을 하면서 몸이 많이 망가졌다. 공천문제로 하루 6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제 평의원으로 돌아가 당을 위한 생각과 역할을 제대로 펼치고 싶다."

-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한나라당은 국보법과 과거사법에 대해 '원점재검토' 선언했다.
"지난 연말 임시국회와 2월 임시국회는 1회전과 2회전의 차이다. 1회전은 쉬운 것만 처리했다. 어려운 숙제는 2회전에서 처리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태도변화가 있기 전에는 2월 임시국회에서 상당한 정도의 첨예한 대립이 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하지만 해를 넘기면 양당 모두 내부적으로 자성론이 일고 있고,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중도, 합리적인 분들로 바뀌어서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도 숙제다. 그 동안 침묵했던 중도적인 입장의 의원들이 이제 뭔가 행동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사실상 지난 4자회담의 '키'를 박근혜 대표가 쥐고 흔들었다. 김원기 의장도 지적했지만 원내전략에 관한한 원내대표의 법적 권한이 우선하지 않나.
"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라 박 대표가 직접 관장했는데 큰 원칙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원내대표가 타협점을 잘 찾았다고 본다."

- 4자회담 결과를 놓고 박 대표와 김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소장파는 박 대표의 보수회귀를 우려하고, 영남보수측은 원내대표의 인책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나는 원내대표가 유연성을 발휘했다고 본다. 대변인직에서 물어난 마당에 이런 얘기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지만 박 대표는 자기가 세운 원칙을 지키는데 굉장히 확고하다. 하지만 사전에 다양한 얘기를 듣고 균형잡힌 원칙을 세워야 하는데 당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세운 원칙인지 아쉬움은 남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아프리카 의회시찰로 원내대표가 부재한 가운데 박 대표는 당직개편을 내주 초로 앞당겨 발표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박근혜-김덕룡 투톱체제는 끝난 것 아닌가.
"당 차원에서 보자면 원내대표 임기가 5월까지니까 2월 임시국회 대여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당 안팎의 정치상황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유임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박 대표와의 파트너십 문제가 큰 것 같다. 당 외부적으로도 협상 상대가 바뀌었고.

이번 당직개편에서 박근혜 대표 원톱 체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효율적인 정국운영을 위해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원톱으로 갈 경우 일방적인 의사결정의 위험성에 빠질 수 있다.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과 기능을 둬서 대표 스스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원톱 체제가 성공할 수 있다."

- 박근혜-김덕룡 파트너십에 근본적 시대정신의 차이가 드러난 것 아닌가.
"서로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좋은 콤비가 될 거라 봤는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이 안 선다.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공동책임의 입장에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견을 조정했으면…."

"한나라당은 고장난 배, 항로 제대로 못잡고 있어"

- 조직개편, 당명개정 등 대대적인 당 쇄신이 이달 말로 마무리될 예정인데, 국민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것으로 보나.
"당직 개편은 지금 해도 상관없다. 열린우리당도 바뀌었고 우리도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 지난 인선은 그냥 적재적소에 좋은 사람을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박 대표가 나갈 방향에 맞춘 인선이 될 것이다. 당내 이견을 잡아줄 컬러의 인물들이 중용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당명개정은 이르다.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로 미뤄야 한다. 당명개정은 단순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용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새로 임명되는 당직자들이 대표의 방향과 의지에 맞춰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공감대를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쇄신하고 당 전체의 지지를 얻어낸 뒤라야 한다."

- 지난 1년 동안 한나라당의 콘텐츠 변화가 있었다고 보나.
"외양과 형식의 변화는 있었다. 하지만 당이 지향하는 정책의 우선순위, 그리고 남북관계, 사회정책 등에 있어 실질적인 변화가 부족했다. 국민들에게도 좋은 점수 받기 어렵다. 자신 있게 내세울 게 없다."

- 당 쇄신작업과 관련 지도부와 의원들간에 공유가 원활한가.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소장파 의원들과 '돌밥회'에서 나눈 얘기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지 않다는데 공감대가 이뤄졌다.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입장에서 고장난 배를 고치고 항로를 제대로 찾고,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관철되도록 행동할 것이다. 그런 결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내 위치가 당의 '허리' 부분에 있다. 나이도 올해로 50세이고, 재선에, 당직도 두루 거쳤다. 이제는 당 문화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론은 한나라당의 양극단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당이 시대흐름을 반영하는데 있어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리얼타임'으로 제기할 것이다. 당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데 제 역할을 할 자신이 없으면 정치, 더 생각할 의미도 없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온건개혁파에 속하는 이들이 나서는 데에는 당의 정체성과 관련 각별한 위기의식이 있는 건가.
"한나라당이 고장난 배 비슷한 것으로 됐다. 항로도 레이다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마당이다. 배가 항로를 제대로 잡아가는데 있어 중심적인 그룹들이 사실 제역할을 못했다. 키 잡은 사람들이 제대로 못하는 것에 대해 배에 승선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직을 걸어야 한다. 그런 거 못할거면 물러나자는 각오로 해야 한다."

- 이대로 가면 당이 두 개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럴 정도의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여기보다는 저쪽이 좋다는 식의 기회주의적 사고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가능성이 없다면 보트를 내려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 소수의 영남권 보수에 의해 당 전체가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초선의원들로 대폭 물갈이가 되긴 했지만 한나라당 의원의 행동양식 즉 문화가 자신이 소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수도권 출신이라 해도 영남의 정서에 젖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반성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변화의 에너지가 어떤 계기가 되면 분출할 것이다. 그런 문화의 변화가 목전에 와 있다고 본다."

"국가안보, 국보법이 지켜주는 것 아니다"

- 4대법안 협상에서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간의 견해차가 있었다. 박 대표는 7조의 찬양고무 등에 관한 조항에서 '공공연한 찬양'을 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개별 조항들을 얼마나 수정할 것인가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당이 좀더 개혁적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다면 큰 문제가 될 조항은 아니다. 국보법이 나라 안보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건 최소한의 상징적 장치일 뿐이다.

문제는 국가안보를 반공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미 공산주의는 지구상 없다. 북한은 변형된 형태의 가부장제+유교+전체주의 국가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과거와 같이 빨갱이, 좌익분자, 용공이라든가 하는 사고가 틀에서 국가안보를 보면 국보법은 한 발도 못 나간다. 대체법안에서 절충점이 찾아질 수 있다고 본다."

- 한나라당으로선 국보법 존치를 주장하는 지지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내 지역구가 분당이다. 광화문에서 반핵반김대회 열리면 후원금 싸들고 다니는 주민들이 많다. 그런데 그 분들 만나서 개성공단에서 남북경협이 이뤄지고 있는 걸 말씀드리고, 금강산에서 남북 주민들이 농담 따먹기를 하는 얘기, 국가안보를 지켜주는 것은 국보법이 아니라 경제력과 국력이라고 말씀드리면 99% 따라온다. 문제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냐는 것이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 간첩이 활개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박 대표는 국민의 눈으로 보겠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이 사회의 중심물결이 어디에 있고, 주류국민들이 누구인지 봐야 한다.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지만 친구, 친척, 지지자들 이야기 많이 들어봐도 소용없다.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면 친구도 봐야 하지만 적이 누구냐를 보면 그 사람의 진가를 할 수 있다. 비판하는 사람들을 봐야 한다."

- 가장 쉽게 타결될 것으로 보였던 과거사법이 결국 아버지 문제와 관련 박근혜 대표의 사심이 크게 작용한 것 아닌가.
ⓒ 오마이뉴스 이종호
"친일진상규명법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제일 진도가 많이 나갈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당내 분위기도 그랬다. 박 대표는 박정희 전대통령 때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마지막 추인 과정에서 실무협의에 참여했던 의원들조차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한 것처럼 나오는데 당혹스러웠다. 과거사법 문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난상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다."

-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 전여옥 대변인과의 호흡은 잘 맞았나.
"전 대변인이 논평을 보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독특하고 내가 못 보는 부분을 잘 보기 때문에 보완적인 관계라고 봤다. 박 대표가 당직자들과 교감이 많은 분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를 보좌하는 역을 전 대변인이 하고 나는 당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고 활동을 하는데 역할분담이 됐다. 박 대표가 전 대변인을 통해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밖에서는 약간의 오해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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