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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잇달아 기소된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왼쪽으로부터 안상수 인천시장, 박혁규 의원, 김용규 광주시장, 김일동 삼척시장, 김종규 창녕군수. 김종규 군수를 제외하고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 오마이뉴스

모든 부패와 비리는 '건설'로 통한다고들 한다. 대다수 부정·부패 사건이 건설업체로부터 비롯된 데서 온 말이다. 각종 인·허가권이나 관급공사 사업권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건설업체간의 '암투', 이를 미끼로 한몫 챙기려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구태'가 끊임없이 건설비리를 키우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금품·향응 제공 민원인 중 절반이 건설업자

지난 4일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가 발표한 '04년도 주요 대민업무 청렴도 측정결과'에 따르면 2004년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민원인 가운데 2명 중 1명(52.4%)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인 것으로 집계됐다.

부방위가 313개 기관의 부패발생 가능성이 높은 1324개 업무 관련 민원인 7만531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약 두달간 부패실태 및 유발요인 등 11개 항목에 대한 전화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 이 조사작업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대행했다.

또한 금품·향응 제공률이 3%(평균 제공률의 2배)를 넘는 업무분야에는 지방교육청 공사계약(3.2%), 기초자치단체 주택·건축인허가(3.0%) 등이 포함돼 건설사업권과 인허가를 둘러싼 부정부패가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방위는 청렴도가 지속적으로 낮은 구조적인 취약분야에 대해 투명성분석(BPR)을 실시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도 부정·부패 사건의 신호탄은 어김없이 건설업체가 쏘아올렸다. 이른바 '정·건 유착형' 비리다. 경기도 광주지역의 중소 건설업체인 LK건설은 2002년 5월부터 2004년 7월 사이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인 광주시 오포읍 일대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넣었다.

이 과정에서 LK건설 관계자는 해당 지역구 의원인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게 5억원에서 8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박 의원은 지난 6일 밤 구속 기소됐다. 박 의원은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첫번째 17대 국회의원이라는 불명예를 쓰게 됐다.

박 의원이 지역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는 같은 당 소속인 김용규 경기도 광주시장의 뒤를 캐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14일 구속된 김용규 경기 광주시장이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 자택에서 5억원 가운데 1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하면서 '공동범죄'의 꼬리가 잡힌 것. 둘 간의 친분은 익히 알려져 있다.

김 시장과 동시에 구속된 최정민 광주 시의원도 건설부패에 가담한 경우다. 그는 아파트 사업승인에 도움을 주겠다며 자신의 땅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넘겨 20여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특가법상 뇌물)를 받고 있다.

2억원 굴비사장도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안상수 시장 불구속 기소

2004년 연말 뇌물 수수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사건도 '정·건 유착형' 건설비리다. 이른바 '2억원 굴비상자' 사건이 그것이다.

호남권 중견건설업체인 보성건설의 대표 이기승씨는 2004년 2월 인수한 (주)한양을 인천시가 잘 돌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안상수 인천시장에게 1억원이 든 굴비상자 두 개를 건넸다. 이 과정에서 안 시장은 자신의 부하직원을 (주)한양의 임원으로 소개시키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현재 안 시장은 이 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이며 돈을 건넨 이기승 대표는 구속된 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난해 12월 23일 구속된 김일동 삼척시장도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98년 새정치국민회의로 삼척시청 입성에 성공한 김 시장은 이후 2002년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입당한 '철새파' 자치단체장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시장은 지난 99년 발주한 128억원 규모의 도계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비롯, 삼척동굴엑스포 전시장, 태풍 '루사'와 '매미' 수해복구 공사 등 관급 공사 발주 과정에서 지역의 건설업체에게 편의를 봐준 대가로 수차례에 걸쳐 수천 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 뇌물을 제공한 건설업체의 구체적 상호는 언론 등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김종규 창녕군수도 건설 관련 업체(골재채취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가 불구속 기소를 당한 케이스다. 김 창녕군수는 지난 2002년 9월 창녕군청 군수집무실에서 골재채취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100만원짜리 수표 5장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유독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이 정·건 유착형 건설부패 명단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선 이후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된 절대다수의 자치단체장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골재채취업체로부터 500만원의 뇌물을 수뢰해 불구속 기소된 김종규 창녕군수만이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소속이지만, 그 또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당적으로 당선된 인물이다. 특히 2004년판 광주시 건설부패는 한나라당 소속 '지방의원-자치단체장-지역구 국회의원' 트리오가 만들어낸 '정·건 유착' 하모니의 결정판이라 불릴만하다.

건설업체에 7200만원 뇌물 받은 김일동 삼척시장도 한나라당 소속

'관·건 유착형' 건설부패는 공기업 고위 간부에 의해 주로 양산돼 왔다. 대략 지난해말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수뢰해 구속된 정부나 공기업 고위급 인사를 꼽으면 김진 전 주공 사장, 고석구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봉태열 전 서울국세청장, 이재오 부산교통공단 건설본부장, 한국토지공사 간부 김아무개씨 등이다.

김진 전 주공 사장은 광고회사와 협력업체들로부터 공사수주 청탁과 함께 1억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고석구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심현영 전 현대건설 사장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11월 8일 구속 기소됐다. 김 전 사장은 참여정부, 고 전 사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 임명됐다.

봉태열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임대아파트 건설업체인 (주)부영(회장 이중근)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건으로 1억3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해 구속된 바 있다. 이 건으로 이중근 부영 회장도 함께 구속돼 현재 항소심까지 마친 상태다.

왜 이처럼 부패 뇌물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건설업체가 거론되는 것일까.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권력을 이용해서 건설사업권을 주거나 인허가를 해준다. 부정부패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또는 전통을 이어받았던 김영삼 정부까지는 청와대가 주도를 했다.

하지만 지난 국민의정부부터는 과반수가 넘는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분할해서 이러한 짓을 해왔다. 지금은 자치단체장과 관료, 국회에서 오랫동안 이러한 행위를 해했던 일부 의원들이 사업권과 인허가권을 둘러싼 부정행위를 나눠서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건설경기 부양 방침 따라 건설부패 더욱 늘어날수도

김 본부장은 이같은 정·건 유착형 부정부패는 2005년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왜냐하면 정부가 경기위축을 이유로 건설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면서 지자체, 공기업 등이 거래할 수 있는 건축관련 사업권이나 인허가권이 더욱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업권의 규모가 과거처럼 아파트 단지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업도시처럼 도시개발권 전체를 거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므로 부정부패에 동원되는 뇌물 규모도 과거 이상일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김 본부장은 "아파트 단지 하나만으로도 수억원이 거래되는데 사업권이 그 몇배에 달하는 도시개발권은 어떠하겠느냐"며 "경제위기를 빌미로 이러한 부정부패가 더욱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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